“신앙과 신념의 갈림길에서”

(창 16:1-16)

<2024년 4월 28일 부활절 제5주 설교 / 흰색>

●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

고대 그리스 작가 소포클레스가 쓴 『비극 전집』에 보면 <오이디푸스 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소포클레스 지음, 천병의 옮김,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숲>이 작품은 제목처럼 오이디푸스라는 인물의 비극을 다루고 있는데, 주인공 ‘오디이푸스’는 ‘테베’라는 지역의 왕이 되어서 ‘이오카스테’라는 사랑하는 아내와 네 명의 자식을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태어날 때부터 신의 저주를 받고 태어났는데, 그 저주는 다름 아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다’라는 끔찍한 운명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나누지는 못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운명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자기 아들이 그런 끔찍한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는 것을 듣게 된 아버지 라이오스는 태어난지 사흘도 안 된 아기를 산에 내다 버립니다. 하지만 버림받은 오이디푸스는 천신만고 끝에 생존할 수 있었는데, 성인이 되어서 우연히 어떤 사건에 휘말리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게 됩니다. 물론 그가 아버지인 줄 알고 죽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극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오이디푸스는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삼아 자식 넷을 낳고 행복하고 살았는데, 그 아내가 자신의 어머니였던 것입니다. 물론 그 또한 그가 알고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뒤늦게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아내이자 어머니였던 ‘이오카스테’는 비극적인 운명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녀가 죽게 되자 남편이자 동시에 아들이었던 오이디푸스는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으며 그녀의 옷에서 ‘황금 브로치’를 뽑고는 자신의 두 눈을 찔러서 스스로 앞 못 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오이디푸스는 이렇게 자신의 운명을 향해 절규합니다. “아아, 모든 것이 이루어졌고, 모든 것이 사실이었구나! 오오, 햇빛이여, 내가 너를 보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기를! 나야말로 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에게서 태어나, 결혼해서는 안 될 사람과 결혼하여, 죽여서는 안 될 사람을 죽였구나!”

이처럼 고대 그리스 비극은 비참한 인간 현실을 줄곧 ‘운명’이라는 코드로 풀어냅니다. 삶에 고난이 가득하고, 알 수 없는 비참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날 때부터 주어진 운명이 아니라면 그와 같은 비극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지만 삶 속에 일어나는 일들을 그저 운명으로 치부하는 것은 인간의 삶에 부여된 숭고한 책임을 회피하는 일입니다. 제가 고상한 예로 고대 그리스 비극을 말씀드렸지만, 사실 우리의 언어 습관을 가만히 들어보면, 우리에게도 그런 정서가 깊이 깔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불행한 일을 겪게 되면 ‘내 팔자는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말하거나, 그게 아니면 기껏해야 ‘모르겠습니다. 그냥 팔자려니 하고 삽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삶을 수동적인 패배의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우리는 ‘숙명론’(Fatalism)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사람은 삶에 주어진 문제를 운명이라 핑계 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작가 셰익스피어는 말하기를,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하늘의 별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It is not in the stars to hold our destiny but in ourselves)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운명은 하늘의 별이나 용한 점쟁이라든가 홍대 거리의 타로 점집이 알려 주는 게 아니라 삶을 대하는 개인의 자세와 태도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아브람과 사래, 그리고 하갈의 비극

그렇다면 성경은 인간의 비극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요? 오늘 본문 창세기 16장은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비극 이야기를 하나를 들려줍니다. 아브람(Abram)의 부인 사래(Sarai)의 여종이었던 하갈(Hagar)이 이스마엘(Ishmael)을 낳게 된 연유와 과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브람과 사래 사이에 자식이 생기지 않자 사래는 남편 아브람에게 자신의 여종 하갈과 동침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장합니다. 나그네였던 아브람은 언제 여종 하갈을 얻었던 걸까요? 일전에 아브람은 애굽에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아내 사래를 바로에게 상납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릅니다. 그 일로 인해 아브람은 바로에게 큰 보상을 받았는데, 이에 대해 성경은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창 12:16)고 말합니다. 보상 품목 중에 ‘노비’가 있었으니, 분명 거기에 애굽 사람 ‘하갈’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일을 생각해 보니 뭔가 조짐부터 좋지 않습니다. 하갈은 아내 사래를 상납하고 보상으로 받은 여인이지 않습니까? 여하튼 아브람은 아내 사래의 말대로 하갈과 동침하였고, 하갈은 사래가 원한 것처럼 곧바로 임신하게 됩니다. 고대 사회에서 아내가 자식을 낳지 못하면 둘째 부인을 얻어 대를 잇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당시 통념적으로 보면 이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권장될만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시작부터 뭔가 찜찜하고 삐거덕거리는 것 같더니, 아니나 다를까 젊은 여성이었던 하갈은 임신하지 못한 늙은 주인 사래를 “멸시하였다”(4절)고 성경은 말합니다. 나중에 하갈을 만나면 꼭 ‘왜 그랬냐’고 물어보고 싶은 대목입니다. 속으로야 우쭐할 수는 있겠지만, 주인의 아기를 잉태했다고 해서 여주인을 멸시하는 것은 앞뒤 못 가리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그녀의 신분은 ‘종’ ‘노예’ 아닙니까?

이에 가만히 있을 사래가 아닙니다. 몹시 기분 상한 사래는 자신이 당한 일을 아브람에게 일러바치며 신세를 한탄합니다. 그런데 사래의 말이 심상치 않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5절) 그냥 기분이 상한 게 아니라, 이 모든 게 아브람 당신 때문이라는 얘깁니다.

이 소릴 듣고 아브람은 억울했을 것입니다. 하갈과 동침하라고 먼저 부추기며 권면한 것은 사래였지 않습니까? 사래 입장에서 하갈이 자기를 멸시한다고 남편에게 불평하는 거야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내가 받는 모욕을 네가 받아야 옳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억울해하는 것도 잠시, 아브람은 이내 머리가 쭈뼛하고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사래의 눈이 서릿발 같아서 오뉴월에 눈보라가 몰아칠 기세입니다. 아브람은 속으로 ‘대답 잘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사래의 말에 순순히 응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6절) 이 말을 들은 사래는 ‘옳다구나’하며 “하갈을 학대했다”(6절)고 성경은 말합니다.

●멸시받은 사래, 학대로 갚아 비극이 되다

역시 사래는 보통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갈로부터 받은 것은 ‘멸시’였는데, ‘학대’로 갚아주니 말입니다. 성경 원어로 보면 “멸시”(‘칼랄’, ll;q')라는 말은 “가벼이 여기다, 낮추다”는 뜻입니다.<케네스 매튜스 지음, 권대영 옮김, 『창세기 Ⅱ』 부흥과개혁사> 사무엘하 6장을 보면, 하나님의 법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다윗은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하체가 드러나도록 덩실덩실 춤을 췄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내 미갈은 채신사납다고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다윗이 아내 미갈에게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스스로 낮아졌다!(‘칼랄’)”(삼하 6:22)고 대답한 것이 바로 본문의 ‘멸시’라는 단어입니다.

반면에 “학대”(‘아나’, hn'[')라는 말은 “강제하다, 괴롭게 하다”는 뜻인데, 이 말은 출애굽기 1장에서 애굽의 감독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된 노역을 부가하면서 ‘괴롭게 한 일’(출 1:11)을 나타낼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누군가를 가볍게 여기거나 깎아내리는 행위와는 차원이 다른 행위입니다. 아시다시피 그런 괴로운 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탈출하는 ‘출애굽’을 감행했기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오늘 본문에서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자, 곧 ‘괴롭게’ 하자, 애굽 여인이었던 하갈도 도망쳤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뒤로하고 여종 하갈은 ‘이스마엘’(Ishmael)이라는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그에 대해 본문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이스마엘)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이 말씀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이스마엘의 미래가 밝아 보입니까? 아닙니다. 그의 미래에 어둠이 깃든 것처럼 보입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창세기 21장을 보면, 여종 하갈과 아들 이스마엘은 집을 나가 브엘세바 광야에서 유리하는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비극’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갈과 이스마엘만 비극이 아닙니다. 이 일이 아브람의 집에서 일어났으니 이것은 아브람의 비극이요 사래의 비극이기도 합니다.

●아브람이 하나님께 묻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묻게 됩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람의 집에서 일어난 비극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지난주 나누었던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15:5) 말씀하시며 언약을 주셨습니다. 아직 자식이 없던 그를 “이끄시고 밖으로 나가셔서”(15:5) ‘저 하늘의 뭇별보다 네 자손이 많을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은 꿈만 같고 가슴 벅찬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지난주에 나누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횃불 언약을 주심으로 아브람과 맺은 언약을 ‘반드시’ 지키실 것을 확증해 주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살펴본 것처럼 이처럼 위대한 언약 사건에 있어서 놀랍게도 ‘인간 아브람’이 두 번이나 그 일에 끼어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첫 번째는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라는 물음이었고, 두 번째는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지난주 설교 제목은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그의 말에 담겨진 것처럼, 아브람은 하나님과 생각이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브람으로부터 후손이 날 것을 말씀하셨지만, 아브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서,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세우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생각을 기도로 아뢰라

이처럼 하나님과 우리의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아니지요. 틀렸습니다. 인간의 생각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의 생각과 다릅니다. 아닙니다. 이것도 틀렸습니다. 인간의 생각은 ‘대부분’ 하나님의 생각에 미치지 못하고, 하나님의 생각과 다릅니다. 아닙니다. 이것도 틀렸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든, 무엇을 계획하든, ‘내 생각은 하나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합니다. 그 전제로 하나님께 묻는 일이 우리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이 그의 다른(틀린) 생각을 하나님께 물은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묻지 않았다면’ 하고 생각해 보면, 아득하다 못해 아찔한 생각을 감출 수 없습니다.

게다가 아브라함의 물음은 두 번 모두 “주 여호와여!”로 시작되는 것을 보니, 이는 단순한 물음이 아닙니다. 짧은 물음이었어도 그의 물음엔 핵심을 담고 있으면서도 절대자를 향한 정중한 예를 갖추었습니다. 인간이 절대자를 부르며 정중히 묻고 여쭙는 행위를 우리는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기도’입니다. 미국의 에모리 대학교에서 가르쳤던 R.C. 반디(Roberta. C. Bondi, 1941-) 교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에 뿌리를 둡니다. 아니 사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갈망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을 갈망하도록 지어졌기 때문입니다.”(The root of all prayer, and indeed all life itself, is desire for God. All things are made to desire God) <Roberta C. Bondi, To Pray and To Love, Augsburg Fortress>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은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인간이 하나님을 우러러 자신의 목마름과 사랑을 표현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우리는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5장을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횃불 언약은 아브라함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사건이다”라고 말입니다. 이로써 아브람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신앙의 길에 성큼 들어선 것입니다.

●신앙이냐 신념이냐?

이에 반해 오늘 본문 어디를 찾아봐도 아브람과 사래는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언약에 따라 자손을 잇는 중대한 사안을 스스로 결정해버립니다. 본문 2절을 보면 사래는 무지하면서도 섬뜩한 말로 아브람을 다그쳐 채근합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16:2)

하나님이 사래의 출산을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언제 그랬던가요?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사래는 왜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까? 그녀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기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출산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져 가는 자신의 현실에 빠져버린 나머지, 그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속단(hasty conclusion)해버립니다. 속단은 더 빠른 속도로 독단(arbitrary decision)이 됩니다. 생각도 혼자 하고 결정도 혼자 하더니, 자기 생각과 결정을 믿고, 믿는 대로 행동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어리석은 인간의 행위를 ‘신앙’(Faith)과 반대되는 의미로 ‘신념’(Belief)이라고 부릅니다.

신앙과 신념은 어떻게 다릅니까? 서강교회 고등부 임초은 학생한테 물어보았더니 초은이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빠,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신념은 하나님을 믿는 자기를 믿는 것 같아요.” 훌륭한 대답입니다. 한자로 ‘信仰’은 ‘믿을 신, 우러를 앙’ 즉 ‘하나님을 믿고 우러러보는 것’을 뜻합니다. 반면에 ‘信念’은 ‘믿을 신, 생각 념’이어서 ‘생각을 믿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기독교인 중에는 신념을 신앙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고 교회 직분도 받고 봉사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을 믿고 복종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기 생각’을 믿습니다. 그런 게 신념입니다. 종종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나는 내 스타일대로 하나님을 믿습니다.’ 안타깝지만, 그런 게 신념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그 ‘스타일’이라는 걸 버리는 게 신앙입니다.

신앙과 신념의 차이를 우리는 모세의 경우를 통해 명확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인생은 세 단계로 구분이 됩니다. “왕궁 40년—미디안 광야 40년—광야 40년” 왕궁 40년 동안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로서 “I can do everything”, 확신과 신념의 시기를 살았습니다. 미디안 광야 40년 동안 모세는 살인을 저지른 자로서 “I cannot do anything”, 불-확신의 시기를 살았습니다. 마지막 광야 40년 동안 비로소 모세는 “I can do anything if God is with me”, 신앙인의 시기를 살았던 것입니다.

● 신앙의 길을 걷는 탁월한 기도자가 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설교 서두에서 고대 그리스 비극은 인간의 현실을 줄곧 ‘운명’이라는 코드로 설명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는 식의 설명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창세기 16장을 보니, 성경은 비참한 인간의 현실을 ‘운명’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선택이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신앙의 길이냐’ 아니면 ‘자기의 뜻을 고집하는 신념의 길이냐’의 선택이었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아브람은 ‘다메섹 출신 엘리에셀’을 후손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인간은 잘못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위대한 것은 그 ‘다른 생각’을 하나님께 고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기도한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아브람은 말씀을 받았으며 말씀 앞에 자기 생각을 교정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래도 ‘하갈’을 통해 자식을 얻고자 합니다. 이 생각은 틀렸고, 하나님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생각한 것만으로 그녀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사래의 실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래는 하나님의 생각과는 다른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그 생각에 갇혀버리는 ‘신념의 사람’의 전형을 보여준 것입니다. 신념이란 ‘좁다란 인간의 뜻에 광대하신 하나님을 뜻을 구겨 넣는 어리석은 행위’에 불과합니다. 이런 점에서 사래가 보여준 모습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얼마든지 ‘신념’의 사람으로 살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국의 신학자 스텐리 하우어워스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인간의 뜻을 가차 없이 실행한 것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이렇듯 십자가는 우리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궁극적이고 결정적으로 충돌한 곳이다.”<스탠리 하우어워스 지음, 『주여, 기도를 가르쳐주소서』 복있는 사람> 십자가를 믿는 사람은 언제라도 자신의 뜻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영국의 저명한 기독교 사상가인 C.S. 루이스는 친구와 주고받던 편지에서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은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은 큰 시련이 닥칠 때 도움이 될 습관이나 방책을 익히지 못할 것이고, 하나님께 유치한 것들을 구하지 않는 사람은 큰 것도 구하지 못할 걸세.”<C. S. 루이스 지음, 홍종락 옮김, 『개인기도』 홍성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삶에는 언제나 신앙과 신념의 길이 두 갈래로 놓여있습니다. 이 길의 선택은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사소한 문제처럼 보이는 일에도 먼저 하나님께 묻고 결정하는가?”

“내 삶의 문제로 인해 나는 하나님께 얼마만큼 집요하게 기도하는가?”

“내 생각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얼마나 많이, 자주 교정하며 살고 있는가?”

이러한 물음 앞에 정직하게 대답함으로 신념의 길이 아닌 신앙의 길로 다니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삶의 작은 일에도 주께 기도로 아뢰는 거룩한 습관을 지닌 탁월한 기도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