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진 하나님, 육신이 되어 오시다”

<요한복음 1장 1-14절>

●먹방mukbang하는 인간

요즘 TV나 Youtube를 켜면 어김없이 나오는 방송 중에 ‘먹방’이라는 게 있습니다. 말 그대로 ‘먹는 방송’을 의미할 텐데요, 아마 여러분 중에도 좋아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한국의 먹방은 지난 2010년 이후로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컨텐츠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지난 2016년에 미국의 CNN 방송에서 한국의 먹방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방송에서는 ‘먹방’을 영어식으로 표기(‘Social Eating’)하지 않고, 우리말 그대로 ‘Mukbang’이라 표기하면서 “먹방은 무엇인가?”(What is Mukbang?) “이 사람들은 왜 자기가 먹는 걸 찍고 앉았는가?”(Why are these people filming themselves eating?) 하면서 먹방 문화를 아주 흥미롭게 소개하기도 했습니다.<“Do you mukbang? It’s the new form of ‘social eating’” Oct. 20th, 2016, edition.cnn.com>

이처럼 먹방이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 트렌드가 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분명한 이유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먹는 욕구’, 곧 ‘식욕’이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건강식’을 다루는 먹방이 많아지고 있긴 하지만, 사실 처음 시작될 때는 ‘누가 누가 많이 먹나?’, 곧 단순한 식욕을 넘어선 ‘폭식’으로 내기를 하거나, 아니면 아주 매운 음식을 더 맵게 만들어 먹으면서 ‘누가 누가 잘 견디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식욕 경쟁이 대세였던 걸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인간의 ‘식욕’은 가장 원초적인 욕구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에뤼식톤Erysichthon이야기

그리스-로마 신화를 보면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생생하게 그려주는 이야기가 많은데요,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오비디우스’(Ovidius, 43BC-17AD)라는 로마의 작가가 쓴 <『변신이야기』(Metamorphoses)(천병희 옮김, 숲)>라는 책에 그런 내용들이 나옵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 중에는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화시킨다는 ‘마이다스의 손’(미다스의 손, Midas Touch) 이야기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니지요. 마지막에 가서 자기 딸을 손으로 만졌다가 딸이 황금으로 변하는 끔찍한 결과를 맞기 때문입니다.

또한 ‘식욕’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곧 ‘에뤼식톤’(Erysichthon)이라는 인물입니다. 어느 날 그는 ‘케레스’(Ceres)라는 신이 소유하고 있던 숲에 들어가서 거대한 참나무를 도끼로 내리쳤습니다. 그러자 나무를 지키는 요정이 나타나서 ‘멈추라!’고 했지만, 에뤼식톤은 이를 무시하고 도끼질을 계속하더니 드디어 참나무를 쓰러뜨린 것입니다.

그러자 나무의 요정은 이것을 숲의 주인 케레스에게 일러바쳤고요, 분노한 신은 에뤼식톤의 배속에 ‘허기’(fames, hunger, 虛飢)를 집어넣습니다. “허기에 시달려 죽게 하리라!” 하며 저주한 것입니다. 저주받은 에뤼식톤은 닥치는 대로 눈에 보이는 것을 집어 먹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달랠 수 없습니다. 뱃속에 자리 잡은 허기가 그를 걸신들린 것처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뤼식톤은 급기야 하나밖에 없는 자기 딸을 팔아서 먹을 것을 구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끝은 더욱 허망하고 비참합니다. 에뤼식톤의 결말은 이러합니다. “마침내 재앙의 힘이 모든 재고를 다 먹어치우고, 그의 중병이 더 많은 먹을거리를 요구하자, 그 가련한 자는 제 사지를 찢어 그것을 제 입으로 물어뜯기 시작하더니 제 몸을 먹음으로써, 제 몸을 먹였소.”

이 글의 마지막 문장에 소름이 돋습니다. “재앙의 힘”에 눌린 에뤼식톤은 모든 것을 다 먹어치우다 못해 자식까지 팔아 배를 채우려 하더니, 급기야 “자기 몸을 먹음으로써, 자기 몸을 먹였다”라고 하니 말입니다. 이처럼 “마이다스 이야기”, 그리고 “에뤼식톤 이야기”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삶이란 이처럼 모든 것을 잃고 파멸을 맞게 될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부풀린 자아, 하나님을 가리다

그렇습니다. 끝없는 욕망에 이끌려 사는 인간은 결국 불행과 절망으로 끝나버립니다. 야고보서의 경고를 기억하십니까? “욕심(욕망)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 1:15) ‘욕심-죄-사망’ 이 세 가지는 변하지 않는 어떤 수학 공식처럼 인간을 따라다닙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욕심-죄-사망’은 우리를 추적해서 반드시 찾아내고야 맙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이 공식이 적용된 이래로, 단 한 명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금단의 열매를 먹고, 눈을 밝게 함으로 “하나님처럼 되고자”(창 2:5) 했습니다. ‘욕심’이 아담과 하와의 ‘자아’를 부추긴 것입니다.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과 같아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욕심에 귀가 솔깃한 인간의 자아는 그 부질없는 짓을 겁도 없이 시도합니다. 그리하여 아담과 하와는 자아를 풍선처럼 부풀립니다. 마치 바다의 복어가 배를 볼록 부풀리는 것처럼, 인간은 자아를 부풀려 제 몸집을 크게 하려 합니다. 그러더니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그리하면 죽는다”(창 3:3) 하신 하나님을 그 부풀린 못난 자아로 가려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가 말하는 인간 타락 이야기입니다.

이를 모를 리 없었던 하나님은 인간을 찾습니다. “(아담아)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하고 부르십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이 보여준 모습은 얼마나 구차하고 궁색하기만 했던가요? 성경은 말하기를, 저들이 자신의 수치를 가리고자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 몸을 가렸다”(창 3:7)고 합니다. 어찌 무화과나무 잎으로 저들의 수치를 가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게 숨는다고 될 일입니까? “하나님이 나한테 준 여자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이렇게 변명한다고 될 일입니까? 하지만 인간이 하는 짓이란 게 다 그렇습니다. 부질없기만 합니다.

여러분, 죄의 습성이 이렇습니다. 죄를 짓고도 죄인 줄 모릅니다. 자기가 죄를 짓고도 늘 남에게서 원인을 찾습니다. 그리하여 아담과 하와는 스스로 믿은 것입니다. 무화과나무 잎 따위로 엄벙덤벙 가리면, 하나님의 눈을 가릴 수 있겠다고 말입니다. 최초의 인간은 허망하게도 ‘스스로 속이더니, 스스로 속아 넘어갑니다’. 마치 앞서 소개해드린 에뤼식톤이 “제 몸을 먹음으로써, 제 몸을 먹였소”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요한복음, 아버지를 나타낸 아들을 소개하다

오늘 2022년 성탄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요한복음 1장입니다. 요한복음의 시작은 여느 다른 복음서들과 다릅니다. 마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긴박하게 타전하며 시작합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탄생 과정과 그 의미를 전하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시작부터 다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요 1:1)는 위대한 선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창세기와도 같이, 요한복음은 ‘말씀이신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는 것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마크 스트라우스Mark Strauss라는 학자는 요한복음을 일컬어 “아버지를 나타낸 아들을 소개한 복음”이라 말한 바 있습니다.<마크 스트라우스 지음, 박규태 옮김, 『네 편의 초상 한 분의 예수』(성서유니온)> 이 말이 무슨 뜻일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를 나타낸 아들” 이라니요? 질문을 바꿔볼까요? ‘예수님이 아버지를 나타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 아버지의 상태가 어떻길래, 예수님이 아버지를 나타내 보여줘야 한단 말일까요? 혹시, 하나님 아버지께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무언가에 가려서 잘 안 보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모르긴 몰라도 사람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을 보려고 하지만, 하나님이 잘 안 보이거나, 아니면 하나님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말입니다.

●마르틴 부버의 ‘신의 일식’

독일이 일으킨 세계 2차 대전, 당시 사람들을 하나님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믿기 힘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물론이고 많은 그리스도인이 독일 나치의 가스실에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스스로 묻고 답하기를, ‘하나님은 어디 있는가?’ ‘하나님은 없다. 하나님은 가스실에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사실상 그때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있다면, 이처럼 많은 사람이 가스실에서 죽어갈 때, 하나님 당신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는 물음에 그 누구도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대에 유대 사상가 마르틴 부버Martin Buber(1878-1965)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들이 ‘하나님은 없다, 하나님은 죽었다’ 말할 때, 마르틴 부버는 ‘아니다. 하나님은 무언가에 가려져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이 저 유명한 “신의 일식”(Eclipse of God)이란 개념입니다.

‘일식’(Solar Eclipse)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돕니다. 지구를 중심으로 달이 공전합니다. 그런데 일정 기간이 되면 ‘태양-달-지구’가 순차적으로 일직선에 섭니다. 그래서 태양에 비하면 좁쌀만도 못한 달이 우리가 보기에 태양을 가려버립니다. 이런 현상을 ‘일식’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달이 해를 가린다고 해가 빛을 잃을까요? 달이 태양을 가린다고 태양이 없는 겁니까? 없어집니까? 달이 태양에게 티끌만큼이라도 손상을 가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이처럼 마르틴 부버는 세상에 ‘신의 일식이 일어났다’고 말한 것입니다. 무언가에, 누군가에 하나님이 가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의 일식은 하나님이 인간의 시야로부터 멀리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사상이나 이념이나 우상 따위가 인간의 시야를 흐리게 만들어, 하나님을 똑바로 보고자 하는 인간의 능력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Martin Buber, Eclipse of God: Studies in the Relation between Religion and Philosophy, Princeton University Press>

헛된 인간의 욕망이 자아를 부풀리고, 그렇게 부풀어진 자아는 여타의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을 가려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선명히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가려진 채로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하며 하나님을 더듬어 찾고 계십니까? 혹여 여러분의 자아가 하나님을 가려버린 것은 아닙니까? 마치 ‘신의 일식’ 현상처럼 말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섬뜩하고, 가장 무서운 우상은 무엇입니까? 그 우상은 어디 있습니까? 인간 자신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우상이 되어 하나님을 가리고, ‘신의 일식’을 일으키는 주범이 됩니다. 그러면서도 알지 못하고 무지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인간이 벌이고 있는 하나님 앞에서의 범죄는 아담과 하와가 보여준 모습을 그저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축복과 엄중한 물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2년 성탄절을 맞이한 오늘,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과 더불어 엄중한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첫째로 요한복음은 우리를 축복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임의로 우리에게 오신 것이 아니며, 그분은 아버지 하나님이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실 때로부터 ‘말씀으로 계셨던 분’(요 1:1)이라 말해줍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참 빛으로 오셔서, 각 사람을 비춰주셨다’(요 1:9)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의 늪에 빠질 우리의 운명을 생명으로 바꿔주셨으며, 죽음에서 부활로 이끄시는 주님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이 거룩한 성탄을 축하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이 감격스럽게 말하는 것처럼, 태초로부터 계셨던 ‘그 말씀’이 드디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합니다.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요 1:14b)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에 의해 가려진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이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발생한 ‘하나님의 일식’을 뚫고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역사 속으로, 그리고 여러분의 삶으로 내려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분 예수께서 오늘, 이 시간, 여러분 마음에 새롭게 태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둘째로,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엄중히 묻고 있습니다. 5절에서 “빛이 왔으나 어둠이 깨닫지 못했다” 하는 것처럼, 10절에서 “그가 세상에 왔으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했다” 하는 것처럼, 그리고 11절이 말하듯이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도 않았다”하는 것처럼, 이 거룩한 성탄절에 요한복음은 오늘 우리에게도 물을 것입니다. ‘당신은 주님의 빛을 받아 그 빛을 세상에 비추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빛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말입니다. 이 물음 앞에 겸손히 응답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사는 서울 밤하늘에서 별빛을 보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별빛을 꺼놨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별빛이 사라진 것은 사람이 켜놓은 네온사인 때문입니다. 하늘의 별빛은 여전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를 밝히는 네온사인으로 하늘의 별을 가려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동방의 박사들은 별빛을 등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별빛을 향했고, 그 별빛을 따라 베들레헴 마구간으로 걸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2022년 성탄절로 이 자리에 모인 것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하여, 우리는 함께 기도합니다.

“주님, 하나님을 가리는 우리의 못난 자아를 구원하소서”

“주님, 우리 시대에 일어난 하나님의 일식을 거두소서.”

“주님,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케 하소서”

오늘 우리 마음 속에 태어나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