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여, 예복은 어디 있는가?”

(마 22:1-14)

<2023년 10월 15일 설교 / 녹색>

●옛 이스라엘 vs 새 이스라엘

요 몇 주간 우리는 예수님의 공생애 중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예루살렘에서의 예수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예수께서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어야 하는데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구나!”(마 21:13) 하시며 성전을 향한 심판의 말씀을 쏟아놓으셨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으로 예루살렘 성전의 미래가 어떠할 것인지를 보여주시기도 했습니다(마 21:18-22).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마태복음 21장에는 이스라엘과 유대교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총출동해서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15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23절),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45절)이 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저들의 공격과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살펴보면, 마치 “옛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자들이 “새 이스라엘”을 세우시려는 예수님과 전면전을 선포한 것 같습니다.

저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하면서 여러 말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 했지만, 예수께서는, 우리가 지난 두 주에 걸쳐 살펴본 것처럼, “두 아들의 비유”(마 21:23-32)와 “포도원 농부의 비유”(마 21:33-46)를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으로 세워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있음을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는 칼날 같은 말씀으로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엄히 꾸짖으셨습니다. 이런 말씀은 옛 이스라엘은 가고, 예수께서 공생애를 통해 구상하셨던 하나님 나라를 위한 새 이스라엘이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오늘 본문도 이런 말씀의 연장 선상에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세 번째 비유입니다. 그런데, 나중에도 다시 나누겠지만, 이 말씀을 더욱 눈여겨봐야 할 것은, 오늘 본문은 옛 이스라엘과 성전의 종언을 고하는 말씀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예수께서 친히 세우신 새 이스라엘과 교회를 향한 경고이기 때문입니다. 구분해서 말씀드리면, 오늘 본문 상반부인 1-8절까지가 옛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말씀이라면, 하반부인 9-14절은 새 이스라엘과 교회를 향한 경고장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심판이 꺼내서 보여주는 단호한 옐로카드를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혼인 잔치에 초대한 왕은 북적대는 하객 중 눈에 띄는 어떤 이를 향해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마 22:12)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이러한 예수님의 물음에서 빌려왔습니다. 곧 “친구여, 예복은 어디 있는가?”입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은 애타는 심정으로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과 한국교회를 향해 무언가 말씀하실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귀담아듣고, 순종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응답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들

오늘 본문 1절은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셨다”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 말씀을 성경 원어로 보면, “예수께서 다시 비유들(parabolai/j)로 대답하셨다”라고, 즉 비유가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되어 있어서 오늘 본문은 하나 이상의 비유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세히 구분해서 보면, 앞서 구분했듯이 1-8절은 왕의 혼인 잔치에 “미리 초대받았던 사람들” 이야기이고, 이어지는 9-14절은 왕의 초대를 거절한 자들 대신 “새롭게 초대받은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두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2절)는 말씀으로 시작하십니다. 일반 귀족도 아니고 왕의 직계 후손인 왕자의 결혼 잔치였으니 얼마나 성대한 잔치였겠습니까? 3절을 보면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청한 사람들”(those who had been invited, keklhme,nouj)이란 표현이 눈에 띄는데, 이들은 왕이 미리 초대한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임금이 종들을 보내서 즉흥적으로 아무나 혼인 잔치에 들어오라고 불렀던 게 아니라, 이미 초대장을 보내서 혼인 잔치에 오기로 예약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종을 보내서 ‘이제 때가 되었으니 잔치에 오십시오’하고 다시 정중하게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왕으로부터 혼인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대장을 받았으니 그 자체로 무한 영광입니다. 고대 사회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는 거의 로또 맞은 기분일 것입니다. 게다가 친절한 왕은 종을 보내서 혼인 잔치에 들어오라고 재차 초대했으니, 왕에게 특별대우를 받는 것 같아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질 만할 일입니다. 저라면 종이 부르기도 전에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이른 아침부터 먼저 가서 문 앞에 서서 기다릴 것만 같습니다.

●등한시한 죄

그런데 3-6절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뜻밖의 일이 일어납니다. 3절을 보니, 왕에게 초대받은 사람들은 “오기 싫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4절에서 왕은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오라!”고 사정하듯 재차 권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5절이 말하는 것처럼 “돌아보지도 않고” 자기 밭으로 가버리거나 자기 사업을 하러 갔다고 합니다.(5절)

이런 대우를 받은 왕의 기분이 어땠겠습니까? 몹시 화가 날 것입니다. 오지 않을 것이라면, 처음 초대장을 보냈을 때 거절했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라도 갈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들이 보여준 행태는 그제서야 “오기 싫어했다”는 것처럼 ‘무책임’했고, 게다가 “돌아보지도 않았다” 하는 것처럼 ‘무례’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돌아보지 않다”는 말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 말은 성경 원어로 “등한시하다, 무관심하다”(avmele,w, neglect)는 뜻입니다.<Horst balz and Gerhard Schneider, EDNT vol-1, William B. Eerdmans> 성경에 딱 네 번만 나오는 단어라서 본문을 찾아보니, 차라리 찾지 말 걸 그랬습니다. 찾고 나니 마음이 참담해집니다. 디모데전서 4장 14절이 “네 속에 있는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등한시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 단어는 하나님의 선물을 가볍게 여기는 모습을 경고하며 사용됩니다. 히브리서 2장 3절에서는 “큰 구원을 등한시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오”라는 말로, 그리고 히브리서 8장 9절에서는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함으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등한시했노라)”는 준엄한 심판의 말씀으로도 사용됩니다.

즉 성경이 말하는 핵심적인 가치인 “하나님의 구원”(히 2:3) “하나님의 언약”(히 8:9) “하나님의 은사”(딤전 4:14)가 무시당하고 거부될 때 사용된 뼈 아픈 단어였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오늘 본문 마태복음에서 저들은 절대자인 “왕의 초대”를 등한시 여깁니다. 이것은 단순한 실수, 단순한 거부가 아닙니다.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실수가 됩니다. 이로써 왕이 느꼈을 불쾌감과 분노를 헤아린다면 말입니다.

미국의 칼빈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코넬리우스(Cornelius Plantinga Jr. 1947~) 교수는 죄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합니다. “죄란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드는 그 어떤 행동, 그 어떤 생각, 욕망, 감정, 단어, 행위를 뜻한다. 죄는 죄를 저지르는 성향the tendency이다.”<Cornelius Plantinga Jr., Not the way it’s supposed to be, Wm. B. Eerdmans Publishing> 본문에서 왕의 초대를 등한시 여긴 초대받은 자들은 기쁨의 혼인 잔치를 배설한 왕의 마음을 불쾌하게 만듭니다. 그것도 결혼식 당일에 말이빈다. 혼인 잔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보여주는 죄의 성향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입니다.

●옛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

그런데, 차라리 이들의 죄가 5절에서 멈췄으면 좋을 뻔했습니다. 6절을 보면, 읽고서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 벌어집니다. 청함을 받은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왕이 보낸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였다”고 합니다. 가기 싫으면 안 가면 될 일이지, 초대하러 보낸 왕의 종들을 잡아 모욕할 것은 무엇이며, 죽이는 것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지난주 본문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서 그 농부들이 보인 가장 끔찍한 행태는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인 일이었습니다. 아들을 죽인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상속자의 유산을 차지하려는” 명백한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혀 죄를 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마 21:38-39) 하지만 오늘 본문의 살인자들은 이유도 명분도 없습니다. 종들을 죽인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절대 권력자인 왕의 후환이 두려울 법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저들은 마치 살육을 즐기는 자들인 것처럼 이러한 끔찍한 일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7절을 보면, 이에 왕은 크게 분노하면서 자신의 군대를 보냅니다. 살인한 자들을 멸하고 그들의 동네까지 불살라버립니다(7절). 아마도 이것은 훗날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마 24:2)) 타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암시하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허탄한 마음으로 왕은 종들에게 말하기를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임금의 탄식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삼았던 이스라엘을 향한 주님의 탄식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모세와 여호수아로 이어지는 장구한 언약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은 숱한 말씀과 선지자들로 하여 저들을 깨우치려 했지만, 저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후벼 파고, 불쾌하게 만드는 죄의 습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비유로 들려주신 이 말씀은 옛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장이신 하나님의 최종 판결이었던 것입니다. “너희는 합당치 않다!”고 말입니다.

●불러 모으시는 예수

이후로 예수님의 말씀은 새로운 국면으로 빠르게 접어듭니다. 먼저 초대받았던 자들이 아무도 오지 않고, 왕이 배설한 기쁨의 혼인 잔치를 초상집 분위기로 망가뜨리려 하자, 왕은 계획을 수정합니다. 새 이스라엘을 모으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에 9절에서 종들에게 명령하며 말하기를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고 합니다. 여기서 “네거리”라는 말은 단순히 우리가 아는 ‘사거리’를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는 “도시 안에서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모든 길목”(evpi. ta.j diexo,douj tw/n o`dw/n)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사람을 초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통팔달로 이어진 너른 길목마다 사람을 보내 불러 모았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왕의 명령은 “개방성”과 “보편성”을 의미합니다. ‘누구든 불러 오라!’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어느 학자는 “이것이 예수님이 성전에서 선포한 복음이다. 그 복음은 모으시는 하나님이었다”<티모 에스콜라 지음, 박찬웅 외 옮김, 『신약성서의 내러티브 신학』 새물결플러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28장에서 훨씬 확장된 말씀으로 재선포됩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마 28:19) 말씀하셨고, 이후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만왕의 왕이 배설한 기쁨의 혼인 잔치는 “네거리 길에”, “모든 민족으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에 거하는 사람들”까지 모조리 불러 모으라는 주님의 간절한 부탁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10절은 말하기를, 종들은 길에 나가서 왕이 명령한 대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했다”(10절)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게 맞습니다. 왕이 배설한 혼인 잔치라면 너-나 할 것 없이 가고 싶은 곳입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초대에 응하여 가던 길을 돌아서서 왕궁으로 모였던 것입니다. 왕이 종들에게 “만나는 대로 청하여 오라” 했으니, 거기에 악한 자든 선한 자든 누구라도 들어와 있은들 하등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 곧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다”(마 13:47)는 말씀과 비슷합니다. 그물은 물고기를 골라서 잡지 않습니다. 이사야서가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며 모으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표현한 것처럼, 주님은 선별해서 모으시는 법이 없습니다. 무조건 모으십니다.

●필로스 vs 헤타이로스 그리고 예복

이제 혼인 잔치가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 임금은 어떤 손님들이 왔는지 보러 들어갑니다. 11-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이 구절에서 임금이 손님들을 “본다”(qea,omai, 떼아오마이)는 말은 그냥 보는 게 아니라 “눈을 뜨고 주의 깊게 식별하다, 찾아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극장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 Theater의 어원이 되는 말)<Horst Balz and Gerhard Schneider, EDNT Vol-2,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왕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거기에 악한 자가 있는지 선한 자가 있는지를 보았습니까? 아닙니다. 왕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말하기를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았다고 합니다.

왕은 이 사람을 “친구여!” 하고 부릅니다. 제가 한 달 전에 ‘친구’라는 단어를 설명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성경에는 ‘친구’를 나타내는 두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필로스와 헤타이로스”입니다. “필로스”(fi,loj)는 친밀하게 우정 어린 말로 친구를 부를 때 쓰는 단어입니다. “헤타이로스”(e`tai/roj)는 성경에 딱 세 번 나오는데, 모두 안 좋은 의미로,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포기하고, 추궁하며 부를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마 20:13, 22:12, 26:50). 본문에서 임금이 이 사람을 친구라 부르는 것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것으로 인해 왕은 못마땅하고 몹시 불쾌한 것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예복이란 무엇입니까? 한자로 禮服은 말 그대로 어떤 특별한 목적에 “예를 갖추어 입는 옷”을 의미합니다. 결혼식은 결혼식대로, 장례식은 장례식대로 예식을 치르고 거기에 맞는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예복을 입는 것은 그만큼 특별한 일이고, 그 옷을 입고 있는 장소가 어딘지, 어떤지를 말해줍니다. 예수님 시대에 혼인 예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맞추어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드레스-코드는 간단합니다. 화려하고 값비싼 옷이 아니라, 우물가에 가서 빨아서 말린 옷, 곧 “깨끗한 옷”이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학자들은 이 본문을 연구하면서, “혼인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은 예복을 어디서 구했을까?”를 두고 갑론을박하곤 합니다. 어떤 이들은 “왕이 주는 것이 관례”라 하고,<브루스, 블롬버그> 어떤 이들은 “아니다. 근거가 없다. 초대받은 사람들이 잔치에 어울리는 옷을 갈아입고 갔을 것이다.”<예레미아스, 보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무엇이 맞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크게 중요한 논쟁은 아닙니다. 왕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고, 다른 잔치도 아니고 왕자의 혼인 잔치에서 깨끗한 옷 한 벌 안 주겠습니까? 요즘으로 치자면, 그리 비싸지 않은 ‘단체복’이라는 걸 맞추는 것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본문이 말하는 초대는, 집에 있던 사람들을 초대한 게 아니라, 사방팔방 길목에서 만난 나그네와 같은 사람들도 죄다 초대한 것이라면, 예복 하나 마련해 주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야박한 왕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는가?

그렇다면 이 사람은 왜 예복을 입지 않은 것입니까? 게을러서 그랬을까요? 귀찮아서 그랬을까요?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 사람이 냄새나고 더러운 걸인이었다면, 그런데도 입구에서 나눠주는 예복을 갈아입지 않았다면, 입구를 지키는 호위병이나 사환들에 의해서, 그는 출입 자체가 차단당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그리고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어떤 옷이었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그는 매우 값비싼 옷을 입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회적 지위도 높았을 것입니다. 왕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았을 때, 그는 아마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 정도는 돼야 초대받지!”라고 말입니다. 그는 왕의 초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 나머지, 정말이지 우스꽝스럽게도 자기 자신을 스스로 특별 대우합니다. 입구에서 나눠주는 단체-티 따위를 받아 입을 게 아닙니다. 화려한 옷과 장신구로 멋을 부리고 왔으니, 단체-티를 입으면 모양 빠지는 거지요. 자신을 드러내지 못할 거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입구에 서서 “예복을 갈아입으십시오”라고 정중하게 말하는 사환의 권고를 무시한 채, 들어온 것입니다. 들어와서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러기를 좋아했듯이, ‘상석’에 앉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을 것입니다(마 23:1-7).

이에 왕은 눈에 불을 켜고서 그런 자들을 찾아 걸러내고자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준엄한 어투로 말했습니다. “이 정신 나간 친구야,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어찌하여 사환의 권고를 깔아뭉개고 예복을 거부하느냐!” “어찌하여 너는 혼인 잔치에 들어오기 전의 모습과 잔치에 참여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똑같기만 하느냐!”라고 말입니다.

이에 13절에서 왕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일을 시켰던 종들(dou,loij)이 아니라, 혼인 잔치의 관리를 맡은 사환들(diako,noij)을 부르시며 혹독하게 명하십니다.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그리고 주님은 이러한 비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14절에서 결론으로 말씀하십니다. “청함(초대)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초대받은 자라고 해서 저절로 혼인 잔치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준엄한 말씀이었습니다. 교회 다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저절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초대받은 자는 주인이 명한 대로 이에 합당한 예복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왕으로부터 먼저 초대받은 사람들이 왕의 초대를 끝끝내 거부한 일과, 이로 인해 네거리 길에서 뒤늦게 초대받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왕이 친히 배설한 혼인 잔치가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할 것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가 옛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성전을 향한 주님의 칼 같은 심판의 말씀이었다면, 그래서 “너희는 합당치 아니하다” 말씀하신 것이라면, 두 번째 이야기는 새 이스라엘이 될 교회와 우리 모두를 포함한 그리스도인을 향한 주님의 준엄한 경고였습니다.

그 경고는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라는 물음 안에 담겨 있으며, 이는 오늘 이 말씀을 받들어 예배하는 우리를 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말씀하신 예복은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오늘날 한국 교회를 두고 생각한다면, 이 예복은 “삶의 변화”를 의미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는 우리가 반드시 입어야 할 “그리스도의 옷”을 뜻합니다. 이에 로마서 13장은 그리스도의 옷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다함께 읽겠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2,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허울만 걸쳐 쓰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의 인격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 죄악된 습관을 버리고 그리스도로 인한 거룩한 습관을 하나씩 만들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우리 안의 허영심과 무례함, 여전히 뽑히지 않는 채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쓴 뿌리를 거두어 내고, 오직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은 그리스도의 꽃이 자라게 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오늘 예배하는 우리가 이러한 예복, 그리스도의 옷을 갖추어서, 왕이 배설한 혼인 잔치의 기쁨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서, 하루하루 벅찬 은혜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