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간-에서 영원-에서”

(창 25:19-34)

<2024년 6월 30일 성령강림후 제6주 주일 설교 / 녹색>

●지금 이 순간

오래전 보았던 [슬램덩크]라는 농구 만화가 있습니다. 만화에 나오는 ‘강백호, 서태웅, 채치수’등을 비롯해서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굉장히 매력있는 캐릭터라서 수십 년 지난 지금도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만화입니다. 그중에 빨강 머리 ‘강백호’라는 인물은 많은 팬을 확보한 캐릭터인데, 마지막 장면에서 강백호가 다니는 북산고가 산왕공고와 결승 경기를 벌이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백호는 부상을 당해서 감독이 경기에 나가지 말라고 만류합니다. 그때 강백호가 감독님에게 말하는 명대사가 있습니다. “영감님에게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나요? 국가대표였을 때인가요? 난 지금입니다!”

감독님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은 ‘과거’였을지 모르지만, 비록 큰 부상을 입었어도 나는 비록 큰 부상을 입었지만 ‘지금 이 순간’을 내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겠다는 주인공의 투혼이 담긴 말이었고, 이러한 강백호의 매력에 많은 독자들이 흠뻑 빠졌던 명장면입니다.

이처럼 우리 삶에 있어서 ‘순간’ 그리고 ‘순간의 선택’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래전, 지금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의 카피 중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기억하는 걸 보면 참 잘 만든 카피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순간의 선택은 10년이 아니라 ‘영원’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말입니다.

저는 오늘 “순간-에서 영원-에서”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제목에서 ‘~에서’라는 조사는 조사가 아니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과 리브가의 아들이자 야곱의 형인 ‘에서’(Esau)를 뜻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에서는 순간의 선택으로 ‘영원’을 팔아버린 어리석은 인물입니다. 그는 성경 이야기 중에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방종한 사람은 즐거운 것을 욕구하며 이런 욕구에 이끌려, 다른 것들보다 먼저 그런 것들을 선택한다. … 그는 괴로워한다. 욕구는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니코마쿠스 윤리학』 숲> 본문의 주인공 ‘에서’에게 꼭 필요한 말입니다. 허기에 지친 그가 ‘붉은 죽 한 그릇’을 선택한 순간, 그는 ‘영원한 하나님의 복’을 팔아버렸고, 이로 인해 분노하고 괴로워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갈등의 장인 창세기 25장

오늘 본문이 속해 있는 창세기 25장의 주제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갈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25장 전체에 갈등과 분열의 상황이 녹아있는데 크게 보아서 세 개의 갈등이 드러납니다.

오늘 함께 읽지는 않았지만, 1-11절에 첫 번째 갈등이 나타납니다. 지난주 새벽기도 때 나누었지만, 1-11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그두라’라는 여인을 얻어 열여섯 명의 후손을 얻습니다. 본처인 ‘사라’에게서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고생고생하더니, 사라가 죽고 첩을 얻자 갑자기 후손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 했다고, 후손이 많아지자 집안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는가 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성경은 말하지 않지만, 아브라함은 첩에게서 얻은 후손에게 얼마간의 재산을 떼어주고는 떠나게 하는데, 6절이 말하기를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6절)고 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서로 어머니가 다른 이삭과 후손들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대로 놔두었다가는 저 아이들이 떼를 지어 이삭을 공격할지 모르겠다’ 싶은 어떤 조짐을 보았는지, 아브라함은 후손들을 ‘이삭으로부터’ 떼어 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손은 언약으로 주신 ‘이삭’이었으니 그가 못 할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 갈등은 12-18절에 나옵니다. 여기서는 이스마엘의 후예가 나오는데, 이들도 문제가 있습니다. 18절은 말하기를 이스마엘의 자손들이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 편에 거주하였더라”고 합니다. 여기서 ‘맞은 편에 거주했다’(‘알-페네이’, ynEP.-l[;)는 말은 지리적인 언급이기도 하지만, 일차적으로 ‘~와 얼굴을 마주하다’ ‘~와 적대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창세기 16장이 이스마엘에 대해 예언하기를, 그는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창 16) 했던 것처럼, 이스마엘의 후예들은 다른 형제들과 갈등 속에 살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케네스 매튜스 지음, 『창세기2』 부흥과개혁사>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이러한 두 개의 갈등에 이어서, 오늘 본문은 셋째로 ‘에서와 야곱 쌍둥이 사이의 갈등’을 말합니다. 이 갈등은 앞에 나온 갈등에 비해 훨씬 원초적인 갈등입니다. 이 갈등은 ‘집에서 벌어진 갈등’이고, ‘피를 나눈 형제지간의 갈등’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따뜻해야 하고 화목해야 할 곳에서 치명적인 갈등이 일어난 것입니다. 게다가 그 갈등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본문은 말하기를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22절) 하는 것처럼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닙니다. 26절이 야곱이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다고(26절) 말하는 것처럼, 에서와 야곱은 어머니 ‘뱃속’에서는 물론이고, 배에서 ‘나오는 중’에도 치열한 갈등을 보입니다. 오죽했으면 발꿈치를 잡았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처럼 인간 사회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17세기 영국의 정치철학자인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인간의 ‘갈등과 다툼’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본성 속에서 우리는 다툼의 세 가지 주요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경쟁이며, 두 번째로는 불신, 그리고 세 번째로는 영광이다. 사람들이 침략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득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이를 지키기 위한) 안전 때문이며,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평판 때문이다.”<토마스 홉스 지음, 『리바이어던』 위즈덤커넥트>

‘경쟁, 불신, 영광’, 혹은 ‘이득, 안전, 평판’, 놀랍게도 이 세 가지가 에서와 야곱의 관계에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야곱은 형 에서와의 경쟁에서 이기려고 형을 속여 ‘장자권’을 빼앗으려 하더니(경쟁), 형은 자기를 위협하는 동생 야곱을 향해 분노로 응대합니다(불신). 결국, 형과 동생 사이의 갈등과 다툼은 ‘장자권’이라는 ‘영광’을 뺏고 빼앗기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던 것입니다(영광).

이런 이유로 토마스 홉스는 인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전쟁을 펼친다”(‘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bellum omnium contra omnes, The war of all against all)고 말입니다. 철학자 사르트르도 그의 작품에서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닫힌 방』, 민음사>라고 말했는데, 인간이란 존재는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집이든, 교회든 직장이든 어디서든 누구와도 매일 경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심지어 우리 내면에서도 매일매일 크고 작은 갈등을 경험합니다.

●단일 양막성 쌍둥이, 싸우다

오늘 본문은 40세가 된 이삭이 리브가를 만나 결혼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19절 이하에서 양쪽 집안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더니, 21절에서 다짜고짜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정보를 줍니다. 몇 년 동안 임신하지 못한 걸까요? 뒤에 나오는 26절에서 이삭이 아이를 낳을 때 “육십 세”라고 말하는 걸 보면, 리브가는 결혼 후로 20년 동안 아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하자 이삭은 무얼 합니까? 그가 “여호와께 간구했다(‘아타르’, rt;[')”(21b)고 합니다. 여기서 ‘간구했다’는 말은 ‘중보기도’를 뜻하는 말인데, 하나님은 이삭의 간절한 중보기도에 응답하셔서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라”(21c)고 합니다.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하자 이삭이 기도했고, 이삭이 기도하자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리브가가 임신하게 되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이 21절 한 구절에 다 담겨 있어서, 마치 이삭이 기도하자마자 하나님이 즉각 응답하신 것처럼 읽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삭은 리브가의 임신을 위해서 몇 년 동안 기도한 것입니까? ‘20년 동안’ 기도한 것입니다. 20년 만에 받은 기도 응답이었습니다.

드디어 리브가가 임신을 했습니다. 20년 만에 기도로 아이를 잉태했으니 이삭도 그랬겠지만, 당사자인 리브가의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리브가는 이삭의 손을 잡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면서, 이 아이를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잘 키우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감사기도를 올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임신한 리브가의 배가 너무 아픕니다. 단순한 통증이 아니라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나 봅니다. 그런데 22절을 보니 리브가의 뱃속에는 한 아이가 아니라 두 아이가 자라고 있었고, 그 둘이 뱃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22절), 곧 쌈박질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싸웠다’(‘라차츠’, #c;r')는 말은 ‘충돌하다, 압제하다’는 뜻입니다. 무슨 태아의 싸움이 이렇게 잔혹합니까? 이쯤 되니 상황이 심각해 보이고, 리브가가 이해됩니다.

산부인과에서는 에서와 야곱의 경우를 “단일 양막성 쌍둥이”(monoamniotic twins)라고 부릅니다. ‘쌍둥이 임신 중에 1% 정도밖에 안 되는 희귀한 경우’라고 하는데, 이런 경우 탯줄이 얽혀서(cord entanglement) 태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심순섭, “쌍둥이 임신 산전 관리의 진료지침” 제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몇 해 전 뉴스에도 난 적이 있습니다. 엄마 배 속에서 마치 복싱하듯 치고받던 쌍둥이가 무사히 태어났다는 화제의 뉴스였습니다.<권윤희 기자, “자궁 안에서 서로 주먹질하던 희귀 단일양막쌍둥이 극적 출산”, 나우뉴스>(https://imgnn.seoul.co.kr/img/upload/2019/05/09/SSI_20190509153836.gif)

이런 설명을 읽고 보니, ‘리브가는 배가 얼마나 아팠을까?’ 아마도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통으로 인해 당황한 리브가는 22절에서 이렇게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해야 합니까?”(ykinOa' hZ< hM'l' !Ke-~ai) 이 말은 리브가가 하나님께 의견을 묻는 것 같지만, 학자들은 이 말을 “내가 임신한 것이 무슨 선한 것입니까?” 또는 “이런 식이라면, 나는 왜 살아야 합니까?”라는 의미로 엄중하게 해석합니다.<케네스 매튜스 지음, 『창세기2』> 이 말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지금 리브가는 임신한 것을 후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리브가의 배 속에 있는 쌍둥이는 어떤 존재입니까? 이삭과 리브가가 하나님께 20년 동안이나 간절히 기도해서 선물처럼 얻은 아이들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해야 합니까?”(내가 임신한 것이 무슨 선한 것입니까?)라는 리브가의 호소는 자신의 기도를 부정하는 발언이고, 게다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후회하는 위중한 발언이었던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의 이름

그렇게 죽을 것 같은 통증을 앓다가 리브가는 출산합니다. 25절을 보니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다”(25절)고 말합니다.

먼저 에서의 용모에 대해 살펴보면, 첫째로 그는 ‘붉었다’(‘아드모니’, ynIAmd>a;)고 합니다. 사무엘상에 보면 다윗에 대해서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다”(삼상 16:12)고 말합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영웅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일부러라도 얼굴을 붉게 칠하곤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빅터 해밀턴 지음, 『창세기Ⅱ』 부흥과개혁사>, ‘에서가 붉었다’는 것은 그가 용맹스럽고 잘생긴 얼굴이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에서는 “전신이 털옷 같았다”(‘앗데레트 세아르’, r['fe tr,D,a;K.)고 합니다. 고대 사람들은 몸에 털이 많은 것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나실인들’은 아예 머리카락에 손도 대지 않았을 정도입니다(민 6:5). 이런 점에서 갓 태어난 에서가 ‘털옷을 입은 것 같았다’는 말은 그의 외모에 대한 더없는 칭찬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마치 ‘엘리야’와 ‘세례자 요한’이 ‘낙타 털옷을 입었던 것’처럼, 에서를 ‘선지자’에 빗대어 칭찬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케네스 매튜스 지음, 『창세기2』>

그러면 야곱은 어떻습니까? 야곱은 형 에서의 “발꿈치”(‘아케브’, bqe[')를 잡고 태어난 이유로 이름을 ‘야곱’(야-아코브, bqo[]y:)이라고 했답니다. 야곱에 대한 설명은 그게 전부입니다. 특징 잡을 게 얼마나 없으면 이런 걸 특징으로 잡았겠습니까? 김동인 선생님의 소설에 보면, 갓 태어난 아기가 자기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자, 주인공이 남들 들으란 듯이, 보란 듯이 우기며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이놈의 발가락 보게. 꼭 내 발가락 아닌가. 닮았거든.....”<김동인 지음, “발가락이 닮았다”, 『한국단편문학선 1』 민음사> 마찬가지로 야곱의 외모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로서 부족한 이삭과 리브가

이렇게 이삭과 리브가는 쌍둥이를 얻었고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성경은 그때 이삭의 나이가 ‘60세’였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100세에 얻은 것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얼마나 귀한 자식들이었겠습니까?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뱃속부터 쌈박질하던 사이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을 키울 때 무엇에 주의해야겠습니까? 일반적으로도 그렇지만, 에서와 야곱을 비교해서도 안 되고, 누구를 편애하면 큰일 납니다.

그런데 이삭과 리브가는 어땠습니까?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27절)

일본의 오카다 다카시(岡田 尊司)라는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는 다음과 같이 뼈 있는 말을 했습니다. “자신의 이상상에 맞는 아이에게만 관심을 쏟는 변덕스러운 자기애가 아이들을 깊은 감정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다.”<아카다 다카시, 『나는 왜 형제가 불편할까?』 더난출판사> 마치 이삭과 리브가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그다지 훌륭한 부모는 아니었습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에서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한다니요! ‘편애’의 표본입니다. 가뜩이나 태중에서부터 하나가 다른 하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자식들인데 그걸 아는 부모가 훈육해서 조정하기는커녕 부추기는 꼴이니, 저들의 미래가 암담해 보입니다.

●에서, 장자의 명분을 팔다

이제 오늘 본문의 결말 부분입니다. 이처럼 이삭과 리브가의 삐뚤어진 애정 때문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에서와 야곱, 둘 사이의 골은 더욱 깊어집니다. 어느 날 야곱이 집에서 죽을 쑤었는데, 때마침 형 에서가 사냥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사냥의 명수였던 에서가 그날따라 허탕을 쳤는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에서의 표정이 어둡고, 매우 지쳐 보입니다. 이에 에서는 30절에서 야곱에게 말하기를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아돔’, ~doa')을 내가 먹게 하라”(30절)고 요청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여기서 ‘먹다’는 ‘게걸스럽게 먹다’(‘라-앗’, j[;l')는 뜻이라서, 피곤에 지칠 대로 지친 에서가 동생 야곱에게 정중하게 말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이에 야곱은 31절에서 형에게 뜬금없는 요구를 합니다.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31절)고 말입니다. ‘형이 가진 장자의 권리를 지금 당장 나한테 양도하라’는 뜻입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형이고, 형이 동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장자권’(‘베코라’, hr'koB..)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가족의 대표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다른 형제에 비해서 두 배나 많은 재산을 물려받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얘기고, 창세기 12장 이후로 읽은 것처럼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이어지는 ‘하나님 언약 백성’의 눈으로 보자면 야곱이 말하는 장자권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절대적인 “복”(‘바라크’, %rB)을 의미합니다. 그 복을 형이 아니라 내가 받도록 넘기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오늘”(‘카욤’, ~AYk;), 지금 당장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에서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너무나도 쉽게 야곱의 꼬임에 넘어갑니다. 32절에서 에서가 말합니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32절) 앞에서는 ‘피곤하니까 먹게 하라’고 말하더니 이제는 ‘내가 죽으면 장자권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말합니다. 과장도 무슨 이런 과장이며, 엄살은 또 무슨 엄살입니까? 어리석게도 에서는 장자권을 포기할 명분을 스스로 만들어서 야곱에게 고이 바친 격입니다.

이에 가만히 있을 야곱이 아닙니다. 야곱은 자기에게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독수리 발톱을 세워 움켜잡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33절) 마치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에브론에게서 구입한 것처럼, 본문은 우리에게 판결문처럼 말합니다. ‘에서는 야곱에게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았다.’고 말입니다. 야곱은 피곤과 굶주림에 지친 형의 약점을 자신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처음에도 ‘오늘 내게 팔라’고 하더니, 재차 ‘오늘 내게 맹세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로써 야곱은 ‘바로 그 순간’ ‘영원한 장자권’을 손에 넣었고, 에서도 ‘바로 그 순간’ ‘영원한 장자권’을 상실합니다. 순간과 영원의 운명이 이렇게 뒤바뀌고 만 것입니다.

●순간-에서, 영원-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모태로부터 갈등을 빚어 온 쌍둥이 형제 ‘에서와 야곱’, ‘야곱과 에서’의 욕망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순간의 선택으로 인해 야곱은 ‘영원’을 얻었고, 에서는 ‘영원’을 상실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 거래에 사용된 매개물은 무엇이었습니까? “죽”(‘아다쉼’, ~yvid'[], 34절)이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본문에 나오는 죽은 ‘렌틸 스프’(렌즈콩, Letil Soup)라 해서 오늘날 유대인들도 즐겨 먹는 죽입니다. 성경에서는 허기진 군인들이 먹는 음식으로도 종종 나오곤 했는데(삼하 17:28; 23:11), 특별히 우리나라가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먹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장례 때 이 음식을 즐겨 먹습니다. 그래서 유대 랍비들은 야곱이 장막에서 죽을 만든 이유가 돌아가신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추모하면서 먹으려고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Rabbi Tuly Weisz, Nov 5, 2021, “The Truth About Jacob’s Lentil Stew”, The Israel Bible>

날때부터 영원을 보장받았던 에서는 죽 한 그릇으로 인해 ‘순간’으로 주저앉았고, 반면에 야곱은 죽 한 그릇으로 ‘영원’을 획득했습니다. 이에 본문 마지막 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34절) 죽 한 그릇으로 시작된 거래였는데, 야곱은 어리석은 형 에서에게 ‘옜다 받아라’ 거래에도 없는 떡을 하나 얹어주었고, 이에 에서는 게눈 감추듯 받아먹습니다. 문득 하와가 선악과를 ‘주자’ 말없이 받아 ‘먹었던’ 아담이 떠오릅니다.(“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 3:6) 아담에게 선악과가 그랬던 것처럼, 에서에게 죽 한 그릇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금단의 열매와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죽을 받아먹는 에서의 행동을 ‘먹고 / 마시고 / 일어나 / 갔다’는 네 개의 동사로 간편하게 묘사합니다. 영원한 복을 상실한 인간의 모습이 이처럼 가벼워도 되는 것입니까? 그러나 문득 ‘그는 어디로 갔을까?’ 생각해보니, 에덴 정원을 떠나 추방된 아담처럼, 에서는 먹고, 마신 포만감에 조용히 일어나서, ‘언약의 선조 아브라함과 이삭의 장막’을 제 발로 떠나가는 허망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로써 그는 ‘영원한 장자권’에 접근할 수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서가 영원한 복을 상실한 것은 ‘순간의 욕망’으로 벌어졌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서가 아니라 그가 사냥하던 ‘평범한 일상’에서 벌어진 일이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에서는 그가 하는 짓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도 모른 채 그저 ‘먹고, 마시고, 일어나, 떠났’지만, 결과는 너무나도 참담했던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의 시인 구상 선생님이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하루” 중에서, 구상 지음, 『나는 혼자서 알아낸다』 시인생각>고 말한 것처럼, 지금부터, 오늘서부터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