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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우리가 복종의 베델에 이르자”

(창 35:1-15)

<2024년 09월 15일 성령강림 후 제17주 기독교교육진흥주일 설교 / 녹색>

●『빌러비드』(Beloved) by Tonny Morrison

미국의 흑인 작가 중에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 1931-2019)이라는 작가가 있는데, 『빌러비드』(Beloved, 문학동네)라는 작품으로 흑인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된 작품으로도 유명한데, 소설에는 시이드(Sethe)라는 이름의 흑인 여성 노예가 나옵니다. 어느 날 주인공은 남편이 보는 앞에서 백인들에게 겁탈당합니다. 이후로도 신체적, 인격적인 폭력에 시달려야 했는데, 그로 인해 주인공은 씻을 수 없는 수치심과 트라우마를 견디다 못해 농장에서 도망치게 됩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그녀를 잡으려는 노예 사냥꾼이 쫓아 왔고, 사냥꾼들에게 붙잡히기 직전에 주인공은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걸음마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딸을 자기 손으로 죽인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짧은 순간, 주인공은 ‘딸 아이가 자라봤자, 나처럼 끔찍한 인생을 대물림할 것이니, 차라리 내 손으로 아이를 편안한 곳, 안전한 곳으로 보내 줘야겠다’(“그 애는 안전해야만 했고, 난 그 애가 있어야 할 곳으로 보냈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온갖 학대를 받았던 주인공은 어린 딸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할 정도로 삶이 망가져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주 살펴본 창세기 34장에서 우리는 이와 비슷한 끔찍한 사건을 목격했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겁탈당하고 감금당한 사건입니다. 창세기 34장은 성경에서 떼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읽기에 거북합니다. 방금 소개한 소설의 주인공처럼, 한 여성이 겁탈당하는 일은 그에게 신체적, 심리적,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 헤어나기 어려운 심각한 상처를 남깁니다. 그런 일을 겪게 되면 한 인간이 완전히 망가집니다. 그래서 어느 책에서는 성폭력을 일컬어 “죽음보다 끔찍한 범죄”라고도 부를 정도입니다.<크리스티나 램, 『관통당한 몸』 한겨레출판>

●혹독한 시험으로 만들어진 이스라엘

이처럼 몸과 영혼이 처참하게 유린당한 한 소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창세기 34장은 절망이고 비극이기만 한데, 사건 직후에 인간들이 보여주는 행태를 살펴보면, 가히 ‘하나님 없는 시대’, 곧 ‘무신론 시대의 참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저들은 피해자 디나의 안타까운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를 중심으로 문제를 풀고자 했습니다. 가해자는 자신의 죄를 덮을 목적으로 피해자를 앞세워 흥정했고, 피해자는 잔인무도한 피의 복수 사건을 계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무지했고, 잔인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세상’이 보여주는 끔찍한 참상이었습니다. 인간은 제 맘대로, 제멋대로 행동했고, 그런 인간의 일에 하나님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 보였습니다. 더군다나 창세기 34장의 야곱은 딸이 당한 비극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가서야 고작 한다는 소리가 자신의 안위를 염려하는 말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4장은 등장인물 면면이 다 절망적이지만, 하나님 언약 백성의 조상인 야곱의 행태를 지켜볼 때, 우리는 아연실색하며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난주 설교를 이러한 비극으로 끝맺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비극이었지만,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 것을 보고자 했습니다. 거기에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과 맺으신 당신의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고, 그것을 반드시 성취하실 언약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4장에서 만난 못난 야곱의 모습은 날마다 실패하고 실수하고 넘어지는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못나고 야비한 야곱으로 하여 반드시 이스라엘이 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 <머풍금 기도회> 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나라 구약학의 큰 스승인 김이곤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민족이 아니다.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이 하나님의 혹독한 시험을 받으며 비로소 영글어지고 만들어진 민족이다.”라고 말입니다.<『죽음을 극복하는 길』 베리타스>

하나님이 똘똘한 인간들만 모아서 이스라엘을 만드신 게 아닙니다. 오히려 못나고 보잘 것 없고 쓸모없는 인간들만 모아서 그들에게 특별한 훈련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생긴 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이렇게 쓸모없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이 어떻게 이스라엘이 될 수 있는가?’ 기적이라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 흐르는 신앙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언약을 세우시고, 당신이 세우신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멈추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34장에 나오는 야곱이 아무리 엉망진창이라 해도 하나님은 반드시 그를 이스라엘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창세기 34장에 나오는 인간들이 마치 ‘무신론 시대의 비참한 참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해도, 무신론의 깃발이 펄럭이는 그곳에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반드시 나타내 보여주실 것입니다.

●곤고한 야곱

이처럼 비극적인 창세기 34장을 뒤로하고 오늘 본문 창세기 35장에서 하나님은 야곱을 부르시고 다시 그를 축복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의 신앙이 창세기 34장의 야곱처럼 못난 모습이라 해도 우리는 반드시 창세기 35장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창세기 34장에 나타난 야곱의 비극적인 상황 중에 뭐라도 하나 바뀐 게 있어서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신 게 아닙니다. 오히려 창세기 34장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34:31)라는 야곱의 아들들이 외치는 피맺힌 절규로 마감될 뿐입니다. 야곱은 지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세겜에서의 삶이 그가 원하던 삶은 아니었지만, 그는 익숙해진 세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비극으로 점철된 세겜의 삶이었지만, 떠날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354-430)도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참담한 나 자신의 무게에 눌려 다시 이 땅으로 떨어지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와서, 늘 해 오던 일들에 붙잡혀서 살아가게 되는데, 많이 울어도 여전히 많이 붙잡힙니다. ‘습관’의 무게는 나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상태로 살아가고 있지만, 이것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닙니다. 나는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둘 사이에 끼여서 나는 곤고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고백록』 CH북스>

어거스틴의 고백이지만, 마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의 고백을 듣는 듯합니다. 그런데 어디 이것이 야곱의 고백이기만 합니까? 우리 모두의 고백이 아닐까요?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살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둘 사이에 끼여서 나는 곤고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아닐까요? 창세기 34장의 마지막 절에서 35장 1절로, 그 ‘한 장’, 아니 그 ‘한 칸, 한 절’을 넘길 힘이 야곱에겐 없어 보이기만 합니다.

●하나님이 오시는 방식

이처럼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34:31)라고 외치는 자식들의 절규를 멍하니 듣고 있던 야곱에게, 무기력함과 곤고함에 찌들어가던 야곱에게, 하나님이 홀연히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34장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야곱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34장의 야곱이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34장의 야곱을 잊어서도 아닙니다. 이사야 43장이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 43:18-19a)고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34장으로부터 야곱을 강제로 이끄셔서, 더는 34장의 못난 야곱에 머물지 않고 가야 할 길을 계속 걷게 하시고자 야곱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신 방식입니다.

오늘 예배할 때 여러분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껏 우리 삶이 창세기 34장의 못난 몰골을 하고서, 예배하는 이 시간에도 그런 모습으로 앉아있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로 35장으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본문을 가만히 읽어보면, 하나님은 마치 ‘34장이 없기라도 한 것’처럼 ‘34장의 비극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야곱을 대하십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34장을 빼고 33장에서 35장으로 곧바로 연결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고,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렇게 오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렇게 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을 꼬치꼬치 캐묻기 위해 오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그릇된 길과 잘못된 행실이 마치 없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님은 모든 걸 잊으시는 건망증 환자라도 되신 것처럼,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오셔서 새로운 길로 안내해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오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본문 1절에서 야곱에게 엄히 명하시기를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1절)고 말씀하십니다. 어둡고 음습한 세겜에 머물지 말고, 당장 ‘일어나!’ 하나님의 집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으라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창세기 34장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한 궁극적인 해법입니다. 창세기 34장에 일어난 비극의 궁극적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만나러 간 것이 원인입니까? 세겜이 못된 마음을 먹고 디나에게 다가간 것이 원인입니까? 아닙니다. 창세기 34장에서 벌어진 비극의 근본적인 원인은 그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야곱이 세겜에 주저앉으려 했던 것입니다. 야곱이 세겜에 정착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가 은근슬쩍 머물고자 했던 것일지는 몰라도, 그것은 하나님 뜻에 ‘노골적으로 반하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반역하곤 합니까? 하나님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주합니까? 그런 식으로 반역하는 사람은 우리 중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은근슬쩍’, ‘알게 모르게’ 내 맘대로 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노골적으로 반역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반역이 갖고 있는 특징입니다.

●복종의 과정-1 과거의 청산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세겜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세팅하신 야곱의 여정은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창 28:10) 그리고 다시 “하란에서 브엘세바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야곱아 일어나라! 지금 당장 벧엘로 발길을 옮겨 그곳에 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벧엘’이 최종 종착지는 아닙니다. 창세기 35장에 나오는 야곱의 행적을 보면 야곱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벧엘’(35:1)을 지나고, ‘베들레헴 에브랏’(35:19)을 지나고, 아버지 이삭이 살고 있는 ‘헤브론’(35:27)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창세기 46장에 가면 하나님이 처음 언약하신 것처럼 야곱은 ‘브엘세바’(46:5)로 가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야곱은 하나님의 새로운 명령을 받고 이집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하나님은 ‘내가 언제 너에게 세겜 땅에 머물라고 했더냐! 당장 일어나 벧엘로 가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그리고 다시 “하란에서 브엘세바로”, 이러한 야곱의 최종 목적지를 위해서 하나님은 세겜에 주저앉아 있는 야곱에게 ‘벧엘로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겜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본문에서 야곱은 즉각 복종합니다. 이런 점에서 창세기 34장이 ‘불복종의 장’이었다면, 35장은 ‘복종의 장’입니다. 창세기 34장이 인간이 범하는 ‘불복종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면, 창세기 35장은 ‘복종의 과정’을 촘촘하게 보여줍니다. 가히 창세기 35장은 ‘복종의 백과사전’이요, 마치 ‘복종하려거든 이렇게 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복종의 ABC’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야곱의 복종 행위만 놓고 보면, 야곱은 실로 아브라함과 이삭보다 훌륭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의 신앙이 구태의연한 세겜 땅에 주저앉아 있다면, 본문의 야곱이 보여준 모습처럼, ‘즉각’ 벧엘로 길을 떠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처럼, “오라, 우리가 복종의 벧엘에 이르자!”는 말로 피차 권면하며 함께 복종의 벧엘에 오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야곱이 보여주는 복종의 모습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 시간에 하나씩 살펴봤는데, 오늘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야곱은 과거의 구습을 모조리 버립니다. 2절부터 8절까지 말씀을 보면, 야곱은 세겜을 떠나 벧엘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집요하리만치 구체적으로 이행하는 야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벧엘로 향하는 야곱은 그냥 세겜 땅을 빠져나온 게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세겜에서 머물렀던 모든 ‘생활 양식’을 버립니다. 생각조차도 뜯어내려는 마음이 엿보입니다. 어느 틈엔가 집에 곳곳에 들어온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며”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고 지시합니다.(2절) 이것은 세겜에서의 모든 과거와 단절하고 청산하겠다는 야곱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복종의 과정-2 미래의 사건 대비

둘째로, 야곱은 앞으로 일어날 일까지도 대비합니다. 본문 4절을 보시면 야곱은 이렇게 지시합니다. “그들이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35:4)

여기서 야곱이 ‘귀고리’를 수거해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었다는 것이 눈에 띕니다. 귀고리는 단순한 장식입니다. 그 자체로는 미미한 것이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금으로 된 귀고리를 녹여서 사용할 때는 다른 얘기가 됩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내려오지 않자, 사람들이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다는 유명한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크게 노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출 32:7-8)

“송아지를 부어 만들었다”고 합니다. 무엇을 부어 송아지를 만들었을까요? 출애굽기는 말하기를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출 32:4a)라고 합니다. 곧 귀고리를 녹여서 만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한 것은 그들이 고안해 낸 게 아닙니다. 원조는 이집트입니다. 고대 이집트에는 오래전부터 ‘아피스’(Apis)라는 이름의 황소 신이 있었고, 파리오를 비롯해 모든 이집트 사람들은 황금으로 만든 신을 숭배했습니다.<John D. Currid, Acient Egypt and the Old Testament golden calf, Internet Archive, archive.org>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귀고리를 녹여서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고 싶다’는 불신앙과 불복종을 나타낸 행위였던 것입니다. 저들을 구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다시 저들을 속박하는 이집트로 기어이 돌아가겠다는 불신앙을 나타낸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야곱이 ‘귀고리를 수거해서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었다’는 것은 첫째로 그것을 녹여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방지한 것입니다. 둘째로 다시 세겜으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완전히 꺾으려 했던 일이었습니다.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이러한 복종으로 인해 야곱은 드디어 ‘벧엘’ 땅에 들어갑니다. 이것은 야곱의 인생에 있어서 두 번째로 벧엘에 들어가는 장면입니다. 처음은 언제였습니까? 야곱이 형 에서로부터 도망쳐 하란으로 가던 길에 야곱은 벧엘에서 돌베개를 베고 잤을 때입니다. 외로움과 두려움에 지쳐 돌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을 때, 하나님이 그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지키리라. 내가 나를 반드시 돌아오게 하리라”(창 28:15)고 말씀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언약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야곱은 두 번째로 벧엘에 가서 하나님을 다시 만난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야곱의 하나님은 그에게 이르시기를 “네 이름은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10절)고 축복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 이름은 야곱이지마는”이라 하십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야곱을 잘 아십니다. 그는 한낱 연약한 갈대와 같은 인간에 불과합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비록 야곱이 세겜을 떠날 때 하나님 말씀에 복종해서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었”다 해도, 그리고 “귀고리를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다”해도, ‘못난 야곱, 어디 안 간다’는 걸 하나님은 아십니다. 못난 야곱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치 누구 앞에서 억지를 부리듯이 “네 이름은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내가 준비한 이름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10)고 말씀하십니다.

언약 백성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강한 의지입니다. 세상천지가 야곱을 ‘못난 야곱, 속이는 야곱, 야비한 겁쟁이 야곱’이라고 불러도 ‘나는 절대로 야곱 너를 그렇게 부르지 않겠다’는 애틋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로써 누가 뭐래도 야곱은 분명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것에는 이처럼 조건 없는 하나님의 사랑, 고집스러운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오라 우리가 복종의 벧엘에 오르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세겜을 떠나 벧엘로 달려간 야곱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앞서 나눈 것처럼 야곱이 벧엘에 올라간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처음 벧엘에 갔을 때, 꿈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잠에서 깬 뒤에 두려움에 떨며 다음의 세 가지를 고백했습니다.

첫째로, 야곱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마콤’, ~Aqm')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노라”(28:16)라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늘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미처 깨닫지 못한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한 것입니다.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은 그가 ‘여기’ 계심을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이어서 둘째로 야곱은 “이곳(‘마콤’, ~Aqm')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28:17)라고 고백했습니다. 벧엘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야곱의 입에서 터져 나온 탄성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지막 셋째로 야곱은 돌베개를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마콤’, ~Aqm')의 이름을 벧엘이라”(28:19a)고 정했습니다. 야곱은 그가 벧엘의 하나님을 만난 곳은 ‘바로 이곳’(3번의 ‘마콤’)인 것을 세 번이나 강조하며 그 땅 벧엘을 잊지 않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야곱이 벧엘의 하나님을 두 번째로 만난 뒤에는 어떻습니까? 본문 마지막 부분인 13-15절을 함께 읽습니다. “13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마콤’, ~Aqm')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14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마콤’, ~Aqm')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5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마콤’, ~Aqm')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처음 벧엘의 하나님을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에서 두 번째로 벧엘의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바로 이곳’(마콤)이 하나님을 만난 장소인 것을 강조하는데,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냐? “자기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으로 기억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벧엘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요, 그 길을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자리’입니다. 이사야 2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사 2:2-3)

이 말씀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세겜을 떠나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의 심정으로 이 찬양을 잠시 부르면 좋겠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주님의 도를 배우고, 주님의 길로 행하리,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주의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새옷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은 세겜에 머물러 있습니까? 아니면 벧엘의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겜에 있든, 벧엘에 있든, 우리가 어디에 있어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겜에 눌러앉아 있는 언약 백성’과 ‘벧엘에 당도한 언약 백성’은 분명 다릅니다. 세겜에 주저앉은 신앙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것을 망각하고, 신앙의 작은 진보도 없고, 삶의 작은 변화도 없이, 점점 굳어지고 완고해지는 신앙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언약 백성이 아닌 건 아니지만, 하나님 언약을 신뢰하며 사는 신앙에는 실패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우리 삶이, 우리 신앙이 아직도 세겜에 머물러 떠나기를 주저하고 있다면, 오늘 본문에서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말씀하시는 주의 말씀에 복종하고,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라는 이사야의 선포에 복종하여서, 복종의 벧엘에 오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종의 벧엘에 올라서서, 이전 구태의연한 우리의 모습일랑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그리하여 야곱의 헌 옷을 벗어 이스라엘의 새 옷을 갈아입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