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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이 아담의 아들로”

(눅 3:38-4:13)

<2024년 12월 29일 성탄 후 제1주 송년주일 설교 / 흰색>

●“그래요. 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

오늘 우리는 2024년 마지막 예배인 [송년 주일]로 모였습니다. 지난 1월 [신년예배]를 드릴 때, 한 해를 예감하기 어려워서 막막했던 기억이 나는데, 일 년 동안 하나님 인도하심으로 우리 교회와 모든 성도가 은혜로 살았던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하게 됩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쉽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시험’도 많았고, ‘환난’이라 불러야 할 만큼 힘들고 어려운 시간도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을 쥐고 흔드는 ‘유혹’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랬어야 했는데’ ‘저랬어야 했는데’ 하면서 후회하는 일도 제법 있었습니다. 저라고 예외는 아닐 텐데, 설교를 준비하다가 목양실에 꽂혀 있는 시집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변윤제 시인의 『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문학동네)라는 시집입니다.

시인은 한해를 돌아보면서 한없이 슬펐던 날을 떠올립니다. 슬픈 일을 당했을 때, ‘망가지지 말고 좀 더 의연하게 대처했더라면’ 하고 후회했던 것인지, 시인은 말하기를 “슬픔이 꼭 훌륭해야 할 필요 없잖아요”<詩 “내일의 신년, 오늘의 베스트” 중에서>라고 반문합니다. 단정한 몸과 마음으로 살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살았던 때가 생각났던 것인지, 시인은 “버려야 될 빗들, 화병에 꽂아놓고 새로운 방식의 꽃다발을 만들어요”라는 말로 멋쩍어합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빗질 한번 제대로 못하고 살았지만, 그 빗들을 화병에 꽂아서 ‘빗으로 된 꽃다발을 만들면 되지 뭐?’ 하는 발칙한 상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요. 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 내년이라고 해서 꼭 좋은 일만 있을 것은 아니고, 내년에도 똑같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할지 모르지만, 그런 삶에 주눅 들거나 우울해질 것을 서둘러 염려하기보다는 차라리 “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라는 다부진 말로 새해를 맞이하려 다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 축복합니다. 지난 2024년 잘사셨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셨고, 그 손길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내년에도 여전할 것이어서, 시인의 다짐처럼, 여러분은 내년에도 모두 사랑스러울 것으로 예정된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한 믿음의 여정 속에 ‘하나님의 아들’이요 ‘아담의 아들’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신뢰하며 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록된 말씀을 직접 인용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 머무실 때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사건을 들려주는데, 마귀는 세 가지 물음으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눅 4:3)는 것이고, 두 번째는 “네가 내게 절하면 만국의 권위와 영광을 네게 주겠다”(눅 4:5-7)는 것이고, 세 번째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라라”(눅 4:9)는 시험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마귀의 도발적인 시험 앞에 신명기에 있는 하나님 말씀으로 응대하셨는데,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4:4),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4:8)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4:12)가 그것입니다.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에 대답하실 때마다 “~이라 하였느니라”라고 대답하신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치 성경을 꺼내서 일점일획의 어긋남 없이 조심스럽게 읽으시기라도 하신 것처럼,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시거나 ‘간접적으로 인용’하신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직접 인용’하심으로 마귀의 입을 틀어막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문자 그대로의 하나님 말씀에 충실하셨고, 그 말씀에 복종함으로 시험을 이기셨던 것입니다.

혹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두고서, 심지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을 두고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 아니냐?’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은 아들이신 것은 맞지만 성육신하신 예수께서는 철저하게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사셨고, 십자가를 지실 때는 물론이고 광야로 가실 때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행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도스토엡스키의 ‘대심문관 이야기’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민음사)에 보면 [대심문관] 이야기 편이 있는데, 거기 보면 15세기 스페인의 어느 마을(‘세비야’)에 예수님이 재림의 주로 오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나타나셨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봤고,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걸핏하면 종교재판을 열어서 많은 사람을 이단으로 몰아 화형에 처하던 때였는데, 이단을 추궁하고 심판하는 ‘대심문관 추기경’ 앞에 예수님이 붙들려 왔습니다.

대심문관은 예수님에게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횃불을 탁자 위에 올려 예수님의 얼굴을 비춰가며 심문하기를 “네가 그자냐? 정말로 그자인 것이냐?”라고 묻습니다. 그 물음에 예수님이 대답하려고 하자, 대심문관은 예수님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다시 사납게 묻습니다. “대답하지 마! 입 다물고 있어.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할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너는 네가 이전에 이미 말한 것에 아무것도 덧붙일 권리가 없어. 도대체 뭣 하러 우리를 방해하러 온 거냐?”

이렇게 시작한 대심문관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야기, 곧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실 때 하나님 말씀으로 응대하신 것을 비아냥 대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너는 반박했지만, 알고 있느냐? … 천상의 빵의 이름으로 수천, 수만 명의 인간이 너의 뒤를 따른다고 해도, 지상의 빵을 부정할 힘이 없는 수백만, 수억 명의 인간들은 어떻게 될까? … 너와 같은 자들이 어디 많더냐? 정녕 너는 인간들이 이와 유사한 유혹을 단 일 분이라도 견뎌낼 힘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냐?”<『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민음사)>

대심문관은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이긴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라는 얘깁니다. ‘예수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서, 마귀의 시험쯤이야 너끈히 이길 수 있겠지만, 다른 이들은 네가 말한 대로 사는 게 불가능한 한낱 인간에 불과한데, 그 연약한 인간들을 충동질해서 지키지도 못할 일을 강제하고서, 너만 혼자 훌쩍 떠나버린 거냐!’고 따져 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앞서도 물었지만,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을까요? 아니면 예수님도 그 시험을 견디기가 죽을 만큼 힘들었을까요? 성경은 그것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마태복음 3장 이야기(예수님의 세례와 족보)

이러한 물음에 해답을 찾기 위해서 먼저 누가복음 3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3장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첫째는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건이고, 둘째는 예수님의 족보입니다.

첫째로, 예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데, 이것은 일종의 통과의례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그치고,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릴 것을 알리는 거대한 신호탄과도 같은 사건입니다(‘마태, 마가, 누가’, 공관복음서 모두가 이 사건을 중요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3:22)라는 소리가 들린 것은, 이제 세상을 향해 구원을 선포할 예수님은 사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미리 인증해준 사건’인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세례받으신 사건의 주요한 의미입니다.

둘째로 누가복음 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두 곳에 나오는데, 하나는 마태복음이고 다른 하나는 누가복음입니다. 자세한 설명을 드리지는 못하겠지만,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와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는 많은 점에서 다른데, 그것을 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보시다시피 마태복음에 나오는 족보는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아’라는 것을 ‘유대인’에게 말해주는 게 목적이라면,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위한 구세주’인 것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게 목적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족보는 하나님이 언약을 맺어주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족보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반해 누가복음의 족보는 모든 인류가 최초의 인간 ‘아담’의 후손인 것을 강조합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아담의 후손’으로 한 형제요 자매인데, 예수님도 ‘아담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사, 그리고 ‘에노스’ 그 이름

이러한 의미를 마음에 담고, 누가가 전하는 예수님 족보의 마지막 구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3:38)

에노스는 누구고, 셋은 누구며, 아담은 누구였습니까? 창세기 4장을 나눌 때 이 세 사람에 대해 살펴본 적이 있는데, 먼저 아시다시피 “아담”(Adam)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류 최초의 인간’이자 ‘타락한 인간’의 원형입니다. 아담은 에덴 정원에서 죄를 지어 쫓겨납니다. 이후로 아담은 “가인과 아벨”(Cain and Abel)을 낳았지만, 첫째 아들 가인이 둘째 아들 아벨을 죽이는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은 ‘인류 최초의 살인’이었는데, 그것도 형제간의 살인이란 점에서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 결과 가인도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난 신세가 되었지만(창 4:12), 그는 “에덴 동쪽”에 있는 “놋 땅”(창 4:16)에 허락도 없이 정착합니다. 그 땅에 거주한 가인의 후예들은 창조주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고(창 4:23-24) 선친 가인의 죄를 가볍게 누를 만큼, 더욱 타락의 길로 빠졌던 것입니다. 이처럼 가인의 후예가 타락의 길에 들어섰을 때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은 가인을 대체할 새로운 후손을 갖게 하셨는데, 그가 바로 “셋”(Seth)이었습니다. 성경은 “셋”에 대해 말하기를 하나님이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신 것”(창 4:25)이라고 말합니다. 그 씨에서 태어난 아들이 “에노스”(Enosh vAna/)였던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에노스가 태어났을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6)고 힘찬 구원의 노래를 부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예배했다, 경배했다’는 뜻입니다.즉 아담의 손자요, 셋의 아들인 에노스는 “예배자”였던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예배자가 태어났다고 성경이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에노스”는 사람 이름이기도 하지만, “연약한 인간”이란 뜻이 있습니다.<케네스 매튜스 지음, 권대영 옮김, 『창세기1』 부흥과개혁사>. 인간은 인간인데, ‘약하디약한 의존적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가인의 후예로 인해 망가지고 타락한 인간, 갈대처럼 쉽게 흔들리는 연약한 인간이 살길이 무엇이라 말하는 것입니까? 그리하여 하나님이 ‘아담-셋-에노스’라는 계보를 이어가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창세기는 우리에게 대답합니다. “여호와를 부르는 일”, 곧 “복종의 예배자로 사는 것이 살길”이라는 것, 그것이 창세기가 말하는 구원의 길입니다.

이런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서, 누가복음이 전하는 예수 족보의 마지막 구절을 다시 한번 함께 읽겠습니다.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3:38) 연약한 인간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이 짧은 족보 한 줄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연약한 아담의 아들 예수의 살길: 성령

예수님이 이러한 족보를 타고 태어나셨다면, 인간 예수님은 강한 예수님입니까? 아니면 연약한 예수님입니까? 주님은 이름 없는 작은 새 한 마리처럼 마음도 여리신 예수님이십니다. 누가복음의 예수 족보는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인성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음을 말합니다. 아담의 후예인 우리가 매 순간 겪는 처절한 갈등과 견디기 어려운 시험과 혼돈을 예수님이라고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이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이야기가 예수님의 족보에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의 아들로 인증을 받으셨지만, 광야에서 시험받으신 예수님은 초자연적 능력을 행사하는 분이 아니라, 먹지 않으면 배고파 죽을 것 같고, 높은 곳에 올라가면 무서워서 다리가 오들오들 떨리고, 세상의 막강한 권세 앞에서는 주눅이 들곤 하는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인간’으로서, 주님은 광야로 나가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광야로 가신 예수님에게 마귀의 시험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본문 5절과 9절에 보면, 마귀는 그토록 연약한 예수님을 우악스럽게 붙잡아 두 번씩이나 “이끌고” 다녔다고 합니다(5, 9절). 그것은 마치 사나운 맹수가 연약한 새끼 사슴 한 마리를 데리고 노는 일보다도 손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러한 마귀의 폭력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 비결이 본문 1절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눅 4:1-2a)

예수께서 마귀의 이끌림을 이기셨던 것은 그에게 비둘기같이 내려오신 성령님, 그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셨고, 이끌림을 받으셨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연약한 에노스가 살길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 외에는 없었던 것처럼, 아담의 후손으로 오신 연약하신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을 이길 방법은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이끄심” 외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담의 아들로,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40일 동안 광야에서 마귀로부터 시험당하신 예수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사이에 누가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세례를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인증받았지만, 족보를 보니 예수님은 ‘아담의 아들’이라고 누가는 전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오늘 설교 제목처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담의 아들로” 광야에 가신 것입니다. 광야에 가신 예수께서는 오직 성령에 충만하셨고, 성령에 이끌려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그것이 연약한 아담의 아들 예수께서 승리하신 비결이었습니다.

마귀의 시험을 성령으로 이기신 예수님에 대해서 어느 영국의 저명한 주석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끊어지지 않을 ‘아버지-아들’의 관계에 든든한 닻을 내리셨습니다. 그 때문에 그분의 인간성은 고유한 것입니다.”<마이클 윌코크, BST시리즈 『누가복음 강해』 Ivp>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든든한 닻을 내리셨다는 것, 저는 그 일을 “성령의 닻”이라 이름을 붙입니다. 아담의 아들 예수께서는 땅에서 이루셔야 할 성육신의 소명을 온전히 이루시기 위해서 성령의 닻을 든든히 내리신 것입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성령에 의해 완벽하게 사는 일이 어쩌면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일 지도 모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충만하고, 우리가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에는 우리 안에 너무나도 완고한 자아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저 깊은 하나님의 바다에 성령의 닻을 내리는 일은 예수님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인정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성령의 닻을 하나님께 내리기에는, 우리가 다른 헛된 일에 많은 관심과 힘을 소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성령은 보이지 않습니다. 만져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실체를 알아채기는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성령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지만, 성령과 동행한다는 것이 우리의 피부에 와닿지 않을까가 많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성령으로 사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이에 대해 앞서 말씀드린 영국의 주석가 마이클 윌코크는 다음과 같이 이어서 말합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예수께 매달려야 합니다. 그래야 웅덩이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따라 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사는 일은 예수께 매달리는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삶으로, 보이지 않는(invisible) 성령을 선명히 볼 수 있게(visible)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성령의 뜻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삶을 살면, 성령의 방향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인격을 닮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오늘 2024년 [송년 예배]로 나오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일 년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많은 고난과 시험 속에서 예수의 이름 붙잡고 일어서려 했던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삶이 무기력하고 우울할 때도 힘을 내어 예배의 자리로 달려와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려 했고, 주님을 간절히 찾았으며, 주님을 찬양하려 했던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아들이시지만, 겪으신 일을 통해 순종을 배워 익히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근거가 되셨습니다.”(히 5:8-9, 새한글성경)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아담의 아들로 광야로 가셨고, 모진 시험을 다 이기시어 구원의 근거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후로도 여러분 삶을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여러분의 발을 날마다 든든한 반석 위에 세우시는 은혜로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