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길을 스스로 택하여 가라”

(고전 15:16-19, 창 13:9-13)

<2024년 3월 31일 부활주일 설교 / 흰색>

●죽음은 벽이 아니라 문

2024년, 따뜻한 봄날의 기운과 함께 어김없이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복된 부활주일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 경이로운 계절을 가리키는 우리말 ‘봄’이란 말은 ‘보다’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비록 우리가 어지럽고 혼탁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주님이 허락하시는 소망의 시선, 사랑의 시선, 기쁨의 시선, 그리고 부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봄의 날’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오는 바울의 부활 선포와 창세기 13장이 보여주는 ‘아브라함과 롯의 선택’에 관한 말씀을 통해서 “부활의 길을 스스로 택하여 가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말씀으로 인해 예수 부활의 힘과 능력에 힘입어서, 세상이 헛되이 손짓하는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설교 제목처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부활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여’ 그 길로만 다니고자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정현채 교수는 그가 쓴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정현채 지음, 비아북>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필자는 죽음에 대해 탐구하기 전인 15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정체성은 눈에 보이는 육체에 국한된 것이고 영혼이란 건 존재하지 않으며 뇌가 작동을 멈추면 우리의 의식도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다가 삶의 근원과 죽음 이후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지면서 죽음과 죽어감을 탐구하게 되었다. -- 내가 모르던 다른 세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런 심경의 변화를 통해서 정현채 교수는 말하기를 “죽음이란 ‘벽’이 아니라 ‘문’이며,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은 다른 어떤 세상으로 건너가는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한 사람의 의학 종사자로서 수술실에서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목격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기 때문에, 그의 말을 전부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할지라도, 부활 신앙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조심스럽게나마 인용할 부분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부활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부활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부활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은, 안타깝게도 우리는 부활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부활에 관한 내용도 부활을 완벽하게 설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은 부활을 ‘설명하는’ 책이 아닙니다. 다만 분명하게 부활을 ‘선포하는’ 책입니다. 오늘 새벽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천사가 선포했고, 여인들이 “내가 주를 보았다!”며 선포했습니다. 여인의 선포를 듣고 나서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은 처음엔 의아해했지만, 이내 주님의 부활을 경험한 뒤로, 그들은 두려움과 공포로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있던 이전 모습에서 벗어나 목숨을 걸고 담대하게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 있어서 성경은 우리에게 CCTV를 돌려보며 확인시켜 주듯 충분한 알리바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럴 의도조차 없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확실한’ 부활을 ‘확실히’ 선포하며, 이로써 주님의 부활을 ‘확실히’ 경험한 사람들에게 어떤 ‘확실한’ 변화가 있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부활을 ‘선포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부활을 선포한 ‘사람들’에 관한 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기 이전과 이후에 사람들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들의 놀라운 변화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변화된 삶이야말로 믿기 어렵고 놀랍도록 극적인 변화였기에, 어쩌면 그리스도의 부활만이 아니라, 저들의 변화된 모습이야말로 믿기 어려운 일일지 모릅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부활이란 것을 말과 글로 ‘설명’하는 것은 사실상 무모한 일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라든가, 기계공학적인 결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뜻함’을 글로 배울 수 있습니까? 배울 수 있다한들, 글로 배운 따뜻함을 무엇에 쓰겠습니까? ‘사랑’이 무엇인지 책으로 배울 수 있습니까? 사랑에 ‘공식’이 있습니까? 만약 사랑이 수학 공식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을 어찌 진정한 사랑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중 주님의 부활이 합리적으로나 이성적으로, 혹은 수학적으로 딱 들어맞아서 부활을 믿는다 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다만 주님의 부활은 내가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사건이 되어서, 믿을 수밖에 없는 신비로운 현실로 우리에게 옵니다. 부활 신앙이 2천 년을 이어오는 것은 누군가의 강압에 의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명쾌한 설명 때문도 아닙니다.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의 경이로운 믿음과 담대한 선포에 의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을 뿐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부활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도 바울도 다음과 같이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합니다.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6-19)

당시 고린도 교회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리스도와 믿는 자들의 부활을 제멋대로 해석하면서, 그리스도는 몸으로 부활한 게 아니라, 단지 ‘영혼’으로, ‘정신’으로 부활한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주장이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공격받은 게 아니라, 교회 안으로부터 일어난 공격이었습니다. 이런 주장으로 인해 교회가 혼란스럽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에둘러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대답은 칼날처럼 단호합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만일~하다면”이라는 가정법을 사용하면서,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다면”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단지 이 세상의 삶뿐이면”이라 가정하면서, 만일 그러하다면, 첫째, “너희의 믿음이 헛된 것”이며, 둘째, “너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바울의 대답은 단순한 변호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게 아니면, 지금껏 예수 믿은 게 다 헛된 일이니, 그게 아까워서라도 억지로라도 믿으라’고 회유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울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목청 높여 말한 핵심은,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예수의 부활로 확증하여 보여주셨으니, 만일 예수의 부활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부정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불행한 하늘의 왕자’에 불과합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게 아니라면, 그는 제자들에게조차 버림받은 ‘실패한 랍비’에 불과할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예수의 제자들, 베드로, 야고보, 안드레, 요한이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될 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호수로 돌아가 바다에 그물을 던지며 고향에서 생계유지나 하며 인생을 마감해야 마땅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케네스 베일리 지음, 김귀탁 옮김,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새물결플러스>

그러므로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게 아니라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일순간 어그러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조차도 그저 2천 년 전 의협심 많은 어느 유대 청년의 죽음으로만 기억되면 그만일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존재”에 불과할 것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부활절 설교: 편드시는 하나님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1928년 부활절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음의 죽음이십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또한, 그리스도가 살아 계십니다. 죽음은 하나님께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죽음에게 준엄한 명령을 내려 그가 사라지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습니다.”<디트리히 본회퍼 지음, 김순현 옮김, 『디트리히 본회퍼 설교집』 복있는사람>

“하나님은 죽음의 죽음이십니다” 이 말이 믿어지십니까?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또한, 그리스도가 살아 계십니다.” 이 말도 믿어지십니까? “죽음은 하나님께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을 믿으십니까? 제가 본회퍼 목사님의 다음 문장을 읽을 때 믿으신다면, 크게 ‘아멘’으로 화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죽음에게 준엄한 명령을 내려 그가 사라지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습니다.”

본회퍼 목사님은 같은 설교에서 이런 말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십자가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더는 죄 가운데 살지 않는다는 것을,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예수의 편을 들어 주셨고, 예수는 우리의 편을 들어 주셨습니다. --- 부활절은 죄지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긍정(Ya!)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No’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본회퍼 목사님이 말한 것처럼, 주님의 부활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Yes”(Ya!, 긍정)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시커멓게 죄로 물든 구제불능의 인간에게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를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심판을 면치 못합니다. 이미 유죄 판결받은 죄인 옆에 서서 그를 변호한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편 118편이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고 노래한 것처럼, 본회퍼 목사님이 “예수는 우리의 편을 들어 주셨다!”고 선포한 것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께서는 이미 유죄판결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하여, 일방적으로, ‘우리의 편’이 되시어 ‘우리의 손’을 잡아주셨고, 이로써 우리 대신 죽으셨으며,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분연히 일어나 ‘우리의 손’을 높이 들어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스스로 택하여 걸으신 사랑과 용서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부활의 길을 스스로 택하여 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함께 읽은 창세기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은 그의 조카 롯과 결별합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말하기를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말합니다. 이에 롯이 스스로 선택하여 떠난 그 길의 끝에는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다 하는 소돔’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로써 롯은 ‘여호와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스스로 택하여 걸어간 것입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이 택하여 떠난 곳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창 13:18) 그가 선택하여 떠난 곳은 비록 수풀만이 우거진 땅이었지만,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는 ‘여호와께로 나아가는 길’을 스스로 택하여 걸어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4년 부활절을 맞이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축하는 이 시간, 우리가 선택해 걸어야 할 길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롯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만 향했던 아브라함의 길이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교회를 박해하고 믿는 자들을 옥에 가두는, 그야말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롯의 길을 스스로 택하여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으로 인해 그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리라”(고전 15:10a)고 고백합니다. 이로써 그는 값없이 용서받고 구원받은 자로서,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하나님께로 향한 아브라함의 길을 걷고자 스스로 택하며 다짐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잊지 않고 감사하며 예배하는 사람이 부활의 증인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은혜의 사람으로 살고자 말과 행실을 조심하는 사람이 부활의 증인입니다. 자격 없는 우리에게, 유죄판결 받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편이 되어주시고,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며, 끝내 우리의 손을 높이 들어 올리신 부활의 주님을 선포하는 사람이 부활의 증인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길을 스스로 택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로만 다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