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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 앞에 놓인 두 개의 두 떼”

(창 32:1-9, 22-31)

<2024년 8월 25일 성령강림 후 제14주 주일 설교 / 녹색>

●어엿한 족장, 언약 백성의 조상이 되어가는 야곱

지난주 나누었던 창세기 31장에서 야곱은 20년 동안 살았던 밧단아람에서 가족과 가축을 데리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를 뒤늦게 알고 외삼촌이자 육촌형제인 라반이 쫓아 왔지만, 야곱은 그와 조약을 맺으면서 극적인 화해를 이루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야곱이 전과는 달리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을 보았는데, 가나안에서는 ‘속임수’ 하나로 버티며 살았던 그가 밧단아람에 살면서 속임수를 내려놓았고, 이제는 비록 완벽하지는 않아도 정직함과 책임감, 게다가 성실함까지 두루 갖춘 어엿한 족장으로서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난주 본문은 단지 야곱이라는 어느 한 개인이 죽도록 고생하다가 성공했다는 ‘성공신화’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장자가 되려는 욕망에 이끌려 살았던, 그래서 어찌 보면 구제 불능이자 천덕꾸러기로 인생이 끝날 것 같은 야곱이 비로소 위대한 언약 백성의 조상으로 차근차근 거듭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사히 밧단아람에서 나온 야곱은 가족과 가축을 이끌고 고향을 향해 길을 떠납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편치 않고 불안하고 두렵기까지 합니다. 형 에서를 다시 만나는 일이 어쩌면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처럼 불안한 마음으로 길을 떠난 야곱이 그 길에서 어떤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대략 정리해 보면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본문 내용 여덟가지로 요약

첫째로 야곱은 길에서 ‘하나님의 군대’를 만나게 되고, 그곳을 ‘마하나임’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하나님의 군대를 보았으면 마음이 든든할 법도 한데, 안타깝게도 야곱은 여전히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일까 두렵기만 합니다.

이에 둘째로 야곱은 자기가 데리고 가는 가축을 ‘두 개의 떼’로 나누어서, 하나를 앞서게 하고 다른 하나는 뒤에 따라가게 하는 꼼수를 부립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혹여 에서가 화가 나서 야곱의 무리를 알아보고 앞에 선 무리를 죽이면, 뒤따라가는 무리라도 살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한꺼번에 몰살당하지는 않겠다는 뜻입니다.

셋째로 야곱은 하나님께 ‘내 형의 손에서 나를 건져주옵소서’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립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 기도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살려는 우리에게 모범이 되는 실로 위대한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어도 야곱의 두려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고, 이에 넷째로 야곱은 550마리가 넘는 가축을 형에게 줄 선물로 준비하더니, 자기만 빼고 모든 가축과 가족으로 얍복강을 건너게 합니다.

그리고 다섯째로 혼자 남은 야곱에게 느닷없이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씨름을 걸었고, 두 사람은 날이 새도록 씨름을 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만만치 않았고, 야곱을 이길 수 없겠다고 판단한 그 사람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칩니다. 여섯째로 그 사람은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야곱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넨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남깁니다.

일곱 번째로 이에 야곱도 그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라고 물었지만 그는 허락하지 않았고, 거기서 야곱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여덟 번째로 야곱은 그곳 이름을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는 뜻으로 ‘브니엘’이라고 짓고, 야곱은 그제야 얍복강을 건너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겪는 야곱에게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좀 더 촘촘히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마하나임의 의미

오늘 본문 창세기 32장은 “야곱이 길을 간다”(1절)는 말과 함께, 이제 야곱이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 길은 20년 동안 사무치게 그리웠던 고향 땅 가나안을 향한 길이었기에 분명 가슴 벅찬 길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다소 복잡한 마음에 앞으로 나가기를 주저합니다. 라반과도 헤어졌으니 이제 그의 발목 잡을 존재도 없으니 ‘고향을 향해 앞으로!’만 하면 되는데, 막상 형 만날 생각을 하니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래서 ‘형을 만나도 괜찮을까?’ 이런 생각으로 골똘해 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고삐를 돌려 밧단아람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 일은 엎지른 물을 주워 담는 것보다 싫은 일 아니겠습니까? 이런 이유로 야곱의 길은 ‘진퇴양난의 길’입니다.

이런 복잡한 심경으로 가던 길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는데, 그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32:1) 누가 누구를 만난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야곱이 길 가다가 하나님의 사자를 ‘우연히’ 만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들이 거기서 진을 치고 ‘일부러’ 야곱을 기다렸다는 뜻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야곱의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옵니다.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This is the camp of God) 야곱은 이런 의미로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Mahanaim)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마하나임’이란 말은 “군대, 캠프, 진영, 떼, 무리, 회합”(army, camp, band, company)을 나타내는 ‘마하네’(Mahaneh; 이 단어를 기억하시라)란 말에서 온 것인데, 다만 ‘마하나임’(~아임)이라고 하면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한 쌍’(couple)을 의미하기에, 야곱이 바라본 하나님의 군대는 ‘두 개의 진영’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하나임을 다소 투박하더라도 정확히 옮기면 ‘하나님 군대의 두 떼’ 또는 ‘두 무리의 하나님 군대’라고 옮겨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왜 두 떼로 모였을까를 생각해보니, 앞으로 가기 어렵고 뒤로 물러설 길은 없었던 야곱의 상황과 맞물려 있을 것입니다. 쌍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군대가 야곱의 ‘앞길과 뒷길’을 든든히 지켜주겠다는 뜻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아더 핑크(Arthur Walkington Pink, 1886-1952)라는 영국의 개혁주의 신학자는 마하나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마하나임이라는 말이 뜻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군대는 분명 두 개로 나뉘어 야곱이 지나온 길과 야곱이 가야 할 길(before and behind)을 에워싸고 있을 것이다. 하나는 아무런 무력시위 없이 돌려 보내졌지만(라반), 또 하나의 위협(에서)이 그의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 훗날 하나님의 백성이 광야를 걸을 때 낮의 구름 기둥과 밤의 불 기둥으로 보호해 주신 것이 떠오르지 않는가?”<Gleanings in Genesis, internetarchivebooks에서 우리말 옮김>

●하나님의 전방위적 보호와 야곱의 두려움

영국의 거장 신학자가 한 말답게 참으로 깊은 설명입니다. 생각해보니 이미 하나님은 야곱이 두려움과 고통 속에 있을 때 당신의 사자를 시의적절하게 보내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가 사면초가 신세로 밧단아람으로 갈 때, 하나님은 ‘벧엘’에 쓰러져 잠든 야곱에게 당신의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때 야곱의 꿈에 나타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땅 위에 세워져 하늘 꼭대기에 닿은 ‘사닥다리’(ladder)였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때도 하나님의 사자는 ‘올라가는 무리와 내려오는 무리’ 이렇게 두 떼의 무리였습니다.

야곱은 땅에서 하늘 꼭대기로 세워진 사닥다리를 보았고, 그 위에는 하나님이 계셔서 야곱에게 복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너를 지켜주리라. 너를 이끌어 이 땅에 돌아오게 할 것이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0-15)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한마디로 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곳은 ‘벧엘’(Bethel)이었고, 이로써 야곱은 ‘벧엘의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벧엘의 하나님이 땅에서 하늘로 열린 ‘수직적 하나님’이었다면, ‘마하나임의 하나님’은 ‘전방과 후방’을 에워싼 ‘수평적 하나님’이십니다. 이로써 벧엘의 하나님과 더불어 마하나임의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창 28:10-15)는 야곱을 향한 축복을 더욱 공고히 하신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하나님의 전방위적 도움을 받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마하나임의 하나님을 발견한 야곱은 심기일전합니다. 비록 앞으로 나가기 주저하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본격적으로 형 에서를 만나고자 준비합니다. 이에 야곱은 고향 가나안에 있는 형 에서에게 전령을 보내서 자신의 본심을 전하려고 하는데, 본문 3절에 보니 야곱이 전령을 보낸 곳은 가나안이 아니라 “세일 땅 에돔”이라고 합니다. 아뿔싸! 아버지와 함께 고향 땅에 있을 줄 알았던 형 에서가 수소문을 해보니 일찌감치 아버지를 떠나 “세일 땅 에돔”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가나안에 살던 에서가 세일 땅에 사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 땅에서 ‘나그네’로 살던가 아니면 그 땅을 ‘점령’해서 사는 방법입니다. 에서는 어느 땅에 나그네로 빌붙어 살 위인이 못 됩니다. 에서는 세일 땅 에돔 지역을 점령한 것입니다. 에서는 어린 시절 티격태격하던 형이 아니라, 이제 무시무시한 장군이자 점령자가 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자세히 보면 성경은 우리에게 꼼꼼하게 알려주기를 에서가 “세일 땅 에돔 들(판)”(알차 세이르 세데 에돔, ~Ada/ hdef. ry[ife hc'r>a;, 3절)에 있다고 하면서 장소를 특정합니다. 전쟁을 지휘하는 자가 들판에 나와 있다는 것처럼 무시무시한 말도 없습니다. 사사기 5장에 보면, 사사 드보라는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찬양하며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밋세데 에돔’, ~Ada/ hdeF.mi)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나이다”(삿 5:4)라고 합니다. 친히 에돔 들판에 나와 싸우신 하나님은 승리를 이끄시는 탁월한 전쟁 지휘관이었음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처럼 에서가 에돔 들판에 나와 서 있다는 소식에 야곱은 더욱 기세가 꺾이고 오금이 저립니다. 그리하여 전령들을 보내어 바짝 엎드리는 말을 전하라 하는데, 형 에서와 자기의 관계를 ‘주종관계’로 설정합니다. 곧 에서는 야곱의 “주인”(아돈, !Ada')이요, 야곱은 형 에서의 “종”(에베드, db,[,)이라는 것입니다. 에서를 만나기도 전에 야곱은 마치 호랑이 앞에 앉은 하룻강아지 꼴로 벌벌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 앞에 놓인 두 개의 두 떼(하나님이 예비하신 두 떼 vs 야곱이 생각한 두 떼)

이런 배경에서 야곱은 에돔 들판에 전령을 보냈고, 에돔에 다녀온 전령은 야곱에게 위급한 소식을 전합니다. 전령들이 말하기를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온다”(6절)는 것입니다. 에돔 땅의 점령자 에서가 사백 명을 데려온다는 말을 듣자, 야곱은 불현듯 20년 전 어머니 리브가가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고 한다”(창 27:42) 형은 분명 지금 자기를 죽이러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야곱은 마음에 커다란 동요가 일어납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그가 “심히 두렵고 답답했다”(7절)고 합니다.

그리하여 궁여지책으로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면서 야곱은 시나리오를 그려봅니다. 이에 야곱은 가족들을 모두 모아놓고 소리를 칩니다. “모두 모여 있다가는 몰살당하겠다!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도록 두 떼로(‘리-쉬네 마하노트’) 나눠라!”(7-8절)

야곱이 머리를 굴려 최선이라고 판단해 내놓은 대안이 ‘두 떼’(리-쉬네 마하노트, tAnx]m; ynEv.l)였습니다. 여기서 ‘떼’는 앞서 설명한 ‘마하네’와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두 떼’라는 말을 하고 보니 야곱은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그는 조금 전에도 발음이 다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용은 같은 ‘두 떼’를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마하나임’입니다. ‘하나님 군대의 두 떼’를 뜻합니다.

우리말로 차이를 구분하자면, ‘한 쌍과 두 떼’의 발음 차이라고나 할까요? 발음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말입니다. “마하나임”(하나님 군대의 두 떼!)은 두려움에 떨던 야곱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대안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야곱은 잔머리를 굴려 “리-쉬네 마하노트”(두 떼로!)를 대안으로 여깁니다. 여기서 저는 오늘 설교 제목 “야곱 앞에 놓인 두 개의 두 떼”라는 제목을 붙인 것인데, 여러분이라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예비하신 대안을 택하시렵니까? 아니면 잔머리 끝에 만든 대안을 신뢰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준비하신, 하나님의 대안을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응답받는 자의 기도: 하나님 언약에 근거한 기도

이처럼 “마하나임”을 신뢰하지 못하여 마음이 불안한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새벽기도 때 말씀드렸지만, 이 기도는 야곱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 중 유일하게 성경에 기록된 기도인데, 기도 형식이 너무나도 탁월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 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드린 기도의 특징을 한마디로 하자면, “하나님 언약에 근거한 기도”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형 에서의 손에서부터 살려달라고 기도하지만, 그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하나님 언약에 맞추고 있습니다. 비록 위급한 상황이 닥치자 제 맘대로 대안을 만들었던 야곱이지만, 기도만큼은 정직합니다.

야곱의 기도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9)라고 시작해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12)라는 기도로 마칩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야곱은 ‘주께서 전에 명하시고 말씀하신 언약’을 기억하고, 그것을 근거로 기도합니다. 고집을 부리며 억지를 쓰거나 미사여구로 치장된 기도가 아니라 야곱은 ‘주께서 말씀하신 약속’을 되뇌기만 합니다.

이것이 응답받는 기도의 특징입니다. 자기 말을 앞세우는 게 아니라, ‘주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묵상하고, 붙들고, 끝까지 신뢰하는 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반드시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를 돌아보면, 때때로 우리는 섣부르게 판단하고, 자기 고집에 매몰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수와 실패로 범벅된 인생을 살기도 하지만, ‘주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묵상하고, 붙들고, 끝까지 신뢰하고자 기도하는 사람’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자기 생각을 접고, 고집을 꺾고 “주께서 말씀하신 것”에 복종하게 됩니다. 이제 야곱이 그럴 것입니다.

●얍복 강가의 씨름 사건

그렇다면 이제 야곱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야곱의 변화를 이끈 사건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저 유명한 “얍복 강가의 씨름 사건”입니다. 방금 살펴본 것처럼, 야곱은 하나님께 매우 훌륭한 기도를 드렸음에도 두려운 마음은 가시지 않습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야곱은 형 에서에게 550마리가 넘는 어마어마한 가축을 선물로 보내서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궁리나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두 떼’가 아니라 여전히 ‘자기가 생각해 낸 두 떼’를 고수하는 야곱의 모습이 점입가경입니다. 기도는 했지만, 기도는 기도고 삶은 삶이었습니다. 결국, 야곱은 가축을 비롯하여 두 아내와 두 여종, 그리고 자식들을 모두 얍복강을 건너게 하지만, 정작 자신은 건너지 않습니다(창 32:21-24). 자기만 빼고 모두를 사지로 몰아넣은 격이 아닙니까?

그렇게 다 건너보내고 야곱 홀로 남아 있을 때, 난데없이 어떤 사람이 나타나 야곱의 샅바를 잡고 그를 쓰러뜨리려 합니다. 성경은 “어떤 사람”(24절)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호세아서는 이 본문을 “천사와 겨루어 이겼다”(호 12:4)고 합니다. 씨름을 다 마친 뒤에 야곱은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30)라고 말하는 걸 보면, 야곱은 자기와 씨름한 존재를 하나님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여하튼 이때부터 야곱과 사람인지, 천사인지 하나님인지, 둘 사이에 밤이 새는 사투가 벌어집니다. 엎치락뒤치락하기를 반복해도 승부가 나지 않더니, 결국,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하였다”(25a)고 시인합니다.

이 말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지난 새벽기도 시간에도 여쭤봤지만, 하나님과 여러분이 씨름하면 누가 이길까요? 지금껏 하나님 앞에 바짝 고꾸라진 적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이기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자아를 깨뜨리는 일이란 여간해선 불가능합니다. 우리 안에 완고한 자아는 설사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쉽게 깨뜨리지 못할 만큼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과 야곱의 씨름을 영적인 눈으로 보면, 그것은 야곱의 자아를 깨뜨리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야곱 앞에 놓인 두 개의 두 떼 중에, ‘그가 만들어낸 두 떼’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두 떼’ 곧 ‘마하나임’을 신뢰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설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깨뜨리려 해도 깨지지 않는 야곱으로 인해 하나님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았고, 이로써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그를 절룩거리게 만들어 버립니다. 야곱을 이기는 방법은 결국 이런 방법 외에는 없었던 것일까요?

●버려야 할 이름 ‘야곱’

그런데 허벅지 관절이 골절되어 절룩거리면서도 놀랍게도 야곱은 샅바를 놓지 않습니다. 당황한 천사는 떠나려 하지만, 야곱은 오히려 더욱 샅바를 강하게 움켜잡으면서 간구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25)

이 말씀을 읽으니, 문득 20년 전, 야곱이 아버지 이삭에게 억지를 써가며 장자권 축복을 받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날.도 야곱은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사생결단하며 축복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날.도 이삭은 야곱에게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창 27:18)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야곱은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창 27:19)라고 말하며 거짓으로 속였지만, 오늘 본문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물음 앞에 “나는 야곱입니다!”라고 정직하게 자기의 이름을 밝힙니다.

그러고 보니 누가 묻지도 않았지만, 성경에서 야곱이 자기의 이름을 스스로 밝히는 것은 여기가 처음입니다. 20년 전처럼 야곱은 사생결단으로 축복을 받기 원했지만, 그때와는 달리, ‘네가 누구냐?’는 하나님의 물음 앞에 이제 야곱은 속이지 않습니다. 그저 기진맥진하여 통곡하며 말하기를 ‘하나님, 나는 야곱입니다. 나는 발꿈치는 잡고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속이는 자입니다.’라고 이실직고합니다.

이러한 야곱을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28) 야곱은 이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애써 ‘에서’라고 속이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친히 지어주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이름하여,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라는 뜻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가르쳤던 배철현 교수는 이러한 야곱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 바 있습니다. “거북이가 산란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처럼, 야곱 역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야 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를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만드는 괴물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형 에서인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의 가슴 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자기 자신 ‘야곱’이라는 괴물이다.”<『신의 위대한 질문』 21세기북스>

●하나님과 사람들과 겨루어 이겨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마하나임이라는 ‘두 떼’를 보여주었지만, 스스로 가축 무리를 ‘두 떼’로 만들어 자기만의 방식으로 상황을 이겨보려고 했던 야곱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을 붙잡고 밤새 씨름했지만, 그 이름 ‘야곱’ 안에 무엇이 그토록 딱딱하게 굳어있는지, 결국 “내가 야곱을 도저히 이길 수 없노라”고 말할 정도로 야곱은 완고했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 이름은 야곱이 그토록 비교하며 갈망했던 장자의 이름 ‘에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라는 뜻입니다. 생각해보니 야곱은 그의 인생에서 두 사람과 겨뤘습니다. 처음엔 에서였고, 다음엔 라반이었습니다. 처음에 야곱이 에서를 이길 때는 그의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속임수’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라반을 만나서는 ‘속임수’를 버릴 때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에서와의 재회를 앞두고, ‘두 떼로 나누고 550마리 선물로 보내서 눈 가리고 아웅이나 하는 이 속임수를 또 쓰려고 하는 그 이름 야곱은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 야곱으로는 안 된다! 그 야곱으로는 네가 절대 에서를 이길 수 없다!’ 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기에, ‘이제 너의 이름을 야곱이라 하지 말아라, 이스라엘이라 하라! 그것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뜻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과 씨름한 야곱, 아니 ‘이스라엘’은 그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생명이 보전된 것으로 인해 그 땅을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의 “브니엘”(Peniel, Panim + El)이라고 짓습니다. 그리하여 야곱, 아니 ‘이스라엘’은 이제 다리를 절룩이며 그토록 두려워던 얍복강을 건넙니다. 본문 마지막 절인 31절은 그가 얍복강을 건너는 모습을 이렇게 감동적으로 말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삶에도 언제나 두 개의 두 떼가 놓여 있습니다. 매 순간 우리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두 떼’와 ‘내가 고집하는 두 떼’ 사이에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본문의 야곱처럼 끝끝내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하여서, 마하나임의 하나님으로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씨름하는 자들에게 시편 24편은 이렇게 축복합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시 24:3, 6) 비록 야곱처럼 절룩거린다 해도, 우리 삶을 움츠리게 만드는 두려움의 얍복강을 건너, 하나님의 얼굴과 함께 동터오는 삶을 일구어 나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