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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의와 공도: 하나님의 레시피”

(창 18:1-25, 32-33)

<2024년 5월 12일 부활절 제7주 승천주일, 어버이주일 설교 / 흰색>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vs 3일의 휴가

<5월 가정의달>을 맞아서 지난주에는 ‘어린이주일’로 교회 곳곳에 아이들이 북적대고 떠들썩했습니다. 아이들도 즐겁고 행복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르신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만발한 것을 보면서 일 년 열두 달이 5월만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교회력에 따라서 우리 주님이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고 하늘로 오르신 것을 기념하는 ‘승천주일’임과 동시에 ‘어버이주일’이기도 합니다. 오후에는 우리 교회 문화부에서 주관하는 “전교인 걷기 및 플로깅대회”로 안산 자락길을 다녀오려고 하는데,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 가운데 시간마다 평온하고 기쁨 가득한 복된 주일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3년 전 2021년 5월에 저는정채봉 시인이 쓴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이라는 시를 여러분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 시는 작가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써 내려간 시인데, 다시 한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오분 / 그래, 오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 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번 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정채봉,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현대문학북스)

작년에 이 시를 소개할 때 몇몇 분들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그러셨는지, 고개를 숙이고 눈시울을 적시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작년에 <3일의 휴가>라는 영화 한 편이 상영되었는데, 마치 이 시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영화처럼 보였습니다.

영화에는 ‘박복자’(김해숙)라는 이름의 엄마가 시골에서 백반집을 운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엄마 복자는 늘 자기 딸이 미국 UCLA 대학교수라면서 자랑하곤 했는데,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에 ‘방진주’(신민아)라는 이름의 딸은 뜬금없이 미국 교수직을 사임하고 엄마 복자가 일하던 시골 백반집에 와서 엄마 대신 식당을 운영합니다. 그러기를 3년이 지난 어느 날, 엄마 박복자는 하늘나라의 모범시민으로 선정되어 포상을 받아서 ‘3일의 휴가’를 얻어 땅에 내려오는데, 영화는 이렇게 땅에 내려온 엄마가 3일 동안 딸과 함께 보낸 일들을 내용으로 합니다.

땅에 내려온 엄마는 미국에서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시골에 내려와 자기가 하던 식당을 운영하는 딸을 보면서 한탄하듯 말합니다. “내처럼 살지 말라고 공부시켜놨더니 촌구석에서 뭐 하고 있나 이 문디야!” 자기처럼 고생하지 말라고 악착같이 벌어서 딸을 가르쳤던 엄마는 억장이 무너질 지경입니다. 하지만 엄마의 말을 딸은 듣지 못합니다. 엄마는 영혼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지는 못하고, 그저 지켜만 볼 수 있습니다.

●엄마의 레시피

영화를 보면 과거에 엄마가 살아계실 때 엄마의 구질구질한 모습에 치를 떨면서 엄마에게 함부로 대하는 딸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엄마는 그처럼 모질게 구는 딸의 모습조차 다른 사람에게 포장해서 좋은 얘기만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자기에게 모질게 구는 딸이 혹여 그 때문에 마음이 아프면 어쩌나, 별걱정을 다하는 엄마의 모습이 나옵니다. 마치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극중 엄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것만 기억하고 사는 게 부모 아이가~”

알고 보니 딸은 미국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엄마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들었고, 그 뒤로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서 한국에 급히 돌아와서 엄마가 운영하던 식당을 맡았던 것입니다. 엄마가 일하던 식당에서, 엄마가 요리하던 주방 기구로, 그리고 엄마의 레시피를 보며 딸은 음식을 만듭니다. 엄마는 딸이 자신의 레시피 대로 음식을 잘 만드는지 아닌지를 지켜보고, 맛도 봅니다. 그러다가, 뭐가 더 들어갔다, 뭐가 덜 들어갔다고 혼잣말로 훈계도 하더니, 드디어 “음, 맛있는데!” 하며 칭찬하는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엄마는 딸을 이해하고 딸도 엄마를 이해하게 되면서, 차츰 과거 서로에게 주었던 상처가 치유됩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딸이 ‘엄마가 일하던 식당에서, 엄마가 요리하던 주방 기구로, 그리고 엄마의 레시피를 보며 음식을 만드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버이주일’인 오늘 이 영화를 여러분에게 소개하면서, 딸이 음식 만드는 과정이 우리의 신앙과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딸이 엄마의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며 그릇을 만지고, 보글보글 찌개를 끓인 것처럼, 우리는 예배당에 나와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엄마가 어떻게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지 레시피를 남겨 놓았던 것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레시피인 성경 말씀을 잘 살아내서 하나님이 ‘음, 맛있는데!’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믿음으로 정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두 가지 요약

지난주 우리는 창세기 17장을 통해서 하나님이 아브람과 사래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으로 나타나셔서 그들의 이름을 ‘아브라함과 사라’로 바꾸시어 축복하시고, 이로써 두 사람을 ‘여러 민족의 아버지요 어머니’로 삼아주시겠다는 언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브라함은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키우던 ‘이스마엘’로 인해 하나님의 언약을 잘 믿지 않습니다. 급기야 아브라함은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며 “엎드려 웃을” 정도로 하나님의 약속을 비웃습니다.(17:17) 이에 하나님은 언약의 아들로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알려주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시는데, 아기의 이름은 ‘이삭’(Isacc)이었습니다.

이러한 언약의 말씀에서 이어지는 오늘 본문은 크게 봐서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세 명의 사람 모습’으로 나타나신 사건입니다. 이 일에서 아브라함은 지극정성을 다해 세 명의 나그네를 환대하는데, 아브라함의 환대는 성경에 나오는 그 누구의 환대보다 월등합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으로부터 환대를 받은 나그네들은 그들에게서 아들이 태어날 것을 재확인시켜줍니다. 이것에 본문 전반부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타락한 소돔 땅을 심판하려 하시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류하면서 실랑이를 벌이는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비로소 언약 백성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을 주시는데, 그것이 19절이 말하는 저 유명한 “의와 공도를 행하라!”(Do what is Right and Just)는 말씀입니다.

● 첫째, 아브라함이 마므레 상수리나무 부근에 거주하다

이런 이야기로 구성된 오늘 본문에는 성경 전체로 볼 때, 꼭 이해해야 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예배 생활의 원형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하듯이 아브라함은 헤브론의 마므레 상수리나무 부근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왜, 그리고 언제부터 여기에 살고 있었던가요?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그의 조카 롯과 헤어진 이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사방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셨는데,(13:14)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바라보라’는 쪽을 따라 이곳에 도착해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 그곳이 ‘상수리나무’ 지역이었던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상수리나무’가 자주 등장하는데(사 1:29, 2:13, 6:13 등등), 고대 사회에서 ‘상수리나무’는 영험한 나무로 여겨져서, ‘우상숭배의 장소’ ‘미신의 장소’ ‘음욕의 장소’로 악명 높았기 때문에 이사야와 에스겔을 비롯한 예언자들은 이를 엄히 경고했던 것입니다(대상 10:12, 사 57:5, 겔 6:13). 이처럼 우상숭배의 장소인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지역에 도착했을 때, 아브라함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말하기를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창 13:18)고 합니다. 정리하자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바라보라’ 하신 곳을 따라갔더니, 그곳은 우상과 미신이 가득한 마므레 상수리나무 지역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거기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창 13:18) 이는 마치 우리가 세상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살이는 물댄동산 같지 않습니다. 우리를 우상과 미신처럼 유혹하는 것으로 가득 찬 세상에 삽니다. 그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예배 생활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말입니다.

●둘째,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지극히 환대하다

둘째로 우리는 본문에서 성경이 말하는 환대의 원형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지극히 환대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지만, 이후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아브라함은 자기 앞에 나타난 세 명의 나그네가 하나님인 줄 알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의 환대는 이후로 성경에 나오는 환대의 표본, 환대의 기준이라 될 정도로 성경이 말하는 환대의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성경에서 오늘 아브라함이 보여주는 환대를 넘어서는 것은 오직 단 하나 있습니다. 곧 우리 주님 예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환대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환대의 모습이 오늘 본문에 나타납니다.

어느 햇볕이 뜨거운 날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장막 문에 앉아서 아마도 며칠 전 나누었던 하나님과의 대화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을 법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와 아내의 이름을 바꿔주셨으니, 달라진 자기 이름을 신기해하면서 ‘아브람-아브라함, 사래-사라’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름 하나를 생각해냅니다.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이삭’입니다. 아브라함은 99세인 자기와 89세인 사라를 생각하며, 과연 하나님은 ‘이삭’이라는 아들을 주실까? 그런 일이 정말 생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골똘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문득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알 수 없는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들어온 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브라함이 정확히 알지는 못했겠지만, 아브라함은 즉각 반응합니다. 이후에 적혀 있는 아브라함의 행동을 조밀하게 읽어보면 그의 모습은 기괴할 정도로 민첩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마중하는데, 성경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혔다”(18:2)고 말합니다. 이 한 구절에 담겨 있는 아브라함의 행동이 너무나도 신비롭습니다. 나그네를 보자 그는 1초의 머뭇거림 없이 그들에게로 갑니다. 걸어가지 않고 뭐가 그렇게 급한지 뛰어가서 영접합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그는 나그네들에게 ‘몸을 땅에 굽혔다’고 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누가 누구를 향해 몸을 땅에 대는 행동은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라는 뜻입니다. 대표적으로 누가 이렇게 했던가요?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날 때 만나자마자 보였던 행동이 바로 이것입니다.(창 33:3) 5절에 보니 실제로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5절)라고 말합니다. 오해하지 말 것은 지금 아브라함은 자기 앞에 하나님이 나타나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나그네에게 보여주는 환대입니다.

게다가 3절에서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주여(아도나이),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소서”(3절) 급기야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향하여 ‘아도나이’(‘내 주여’, yn"doa])라고 부르고 자기를 ‘종’이라 합니다. 히브리어로 이 구절을 읽으면 “내 주여 제발(‘나~’, an"),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제발(‘나~’, an")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소서”라고 해서 ‘제발’이라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 들어 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더 바빠집니다. 6-7절에서 아브라함은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6-7절)고 말합니다. 뭐가 이렇게 급합니까? 행동이 민첩한 것은 마음이 그만큼 분주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서 명령하니 사라도 ‘속히’ 음식을 만들고, 하인도 ‘급히’ 요리했다는 거 아닙니까? 이제는 아브라함만 급한 게 아니라, 온 집안이 들썩이며 바삐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은 자기에게 온 나그네를 대접하기에 온 힘을 다 기울였던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환대는 이런 것입니다. 그저 ‘오십시오. 앉았다 가십시오’ 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온 집안이 나서서 나그네를 극진하게 대접하는 것입니다.

●셋째, 사라는 하나님을 비웃고 속였다.

셋째로,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 앞에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의 원형을 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하나님을 비웃고, 속입니다. 나그네들은 아브라함의 융숭한 대접을 받은 뒤에(8절), 갑자기 아브라함에게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사라는 이름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바뀐 이름을 아는 사람은 집 안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그네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바뀐 이름인 사라를 부르며 그녀를 찾습니다. 깜짝 놀랄만한 일입니다. 그들은 뭔가 범상치가 않습니다. 이윽고 그들은 말합니다.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8:10)

이 말을 들은 사라의 반응은 부창부수라고, 지난번에는 아브라함이 포복절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비웃더니(17:17), 이번에는 사라가 ‘속으로 웃으면서’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18:12) 하면서 그의 몸에서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나그네들의 말을 비웃습니다.

그러자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13절) 지금까지는 아브라함과 사라한데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13절에서 ‘여호와께서’로 화자가 바뀝니다. 비로소 의문에 쌓인 나그네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나그네 셋이 한꺼번에 말한 건지, 아니면 그중 하나가 대표로 말한 건지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본문은 마치 ‘셋이 하나’로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교리에서 말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원형을 보는 듯합니다.

이에 사라는 ‘아뿔싸, 내가 속으로 웃은 것을 하나님이 어찌 아셨지!’ 하며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다급한 나머지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18:15)라고 거짓을 고합니다. 인간이 이렇게 어리석습니다. ‘속으로’ 비웃은 것까지도 아시는 하나님을 ‘겉으로’ 드러난 말로 속이려 하니 말입니다. 인간이 이렇습니다. 사라는 속으로 웃은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두려웠다’고 말하면서도 사라의 입에서는 거짓이 흘러나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이게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아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우리의 말과 행실은 하나님 앞에 거짓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타락한 인간의 원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지금 자기 앞에 거짓을 고하는 사라를 보며 하나님은 누구 생각이 났겠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생각나셨을 겁니다. 인류 최초의 타락은 교만으로 일어났지만, 그 교만을 꾸짖는 하나님에게 아담과 하와는 거짓의 변명을 고하지 않았습니까?(창 3) ‘당신이 내게 준 여자 탓입니다!’ ‘당신이 내게 준 피조물 뱀 탓입니다!’라고 말입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의 영이 쓰이기라도 한 것처럼, 사라는 속으로 하나님을 비웃고, 그 비웃음을 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도 비웃은 게 아니라고 잡아뗍니다.

이에 하나님은 외마디 말로 엄히 사라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니라!”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15절, ‘키 차하크트’, T.q.x'c' yKi) 하나님은 사라의 입에서 거짓이 새 나오는 걸 더는 원치 않으셨는지, 그녀의 입을 강하게 틀어막으셨습니다.

●넷째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의와 공도를 명령하신다.

마지막 넷째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저 위대한 ‘의와 공도’를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라의 말을 막고 ‘아니라!’라고 부정하신 뒤에, 성경은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했다”(16절)고 합니다. 방금까지 ‘하나님’이 말씀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이 ‘사람들’로 바뀝니다. 이제부터는 말하는 이가 수시로 바뀝니다. 사라와 대화하다가 갑자기 분위기가 차가워진 상태에서, 나그네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나가려 하니, 아브라함은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르다가 엉거주춤 일어나 나그네들을 못내 배웅하러 따라 나갑니다.

떠나는 길목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주시는데, 이때 하나님은 오늘 설교 제목처럼 아브라함에게 ‘의와 공도’를 말씀하십니다. 19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19절)

여기서 말하는 ‘의’란 “정의”(‘체다카’, hq'd'c.)이고 ‘공도’는 “공의”(‘미쉬팟’, jP'v.mi)를 뜻합니다. 작년 대림절 이후로 여러분에게 여러 번 강조하며 말씀드린 ‘하나님의 정의’ ‘하나님의 공의’를 뜻하는 바로 이 말입니다. 이사야와 아모스를 비롯하여 예언자들이 피를 토하면서 외쳤던 그 하나님의 정의, 하나님의 공의가 성경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엄한 장면입니다.

유대 사상가인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정의는 그냥 하나의 덕목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내기를 건 하나님의 밑천이다.”<아브라함 J. 헤셸 지음, 이현주 옮김, 『예언자들』 삼인> 누군가와 자기 이득을 위해 ‘거래’할 때 자신의 밑천을 다 드러내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밑천은 본디 숨기는 법입니다. 밑천을 드러내기는커녕 자기를 포장하는 것이 거래의 원리입니다. 오랜 맛집으로 유명한 음식점에 가면 그런 집들은 아무에게도 가르쳐주지 않는, 며느리한테도 안 가르쳐 준다는 자기만에 특별한 레시피, ‘요리 비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장사 밑천이니까요.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이 오랜 시간 연구해서 만든 특별한 첨단 기술이 있다면 그것을 다른 경쟁 기업에게 알려줄 기업은 없습니다. 절대 외부로 유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창세기 12장 이후로 누차 확인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인간을 향해 거래하는 분이 아닙니다. 자신의 이득을 얻고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거래가 아니라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인간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밑천을 드러내시고야 만 것입니다. 그것이 ‘의와 공도’, ‘정의와 공의’입니다.

●정의와 공의: 하나님의 레시피를 행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마므레 상수리나무 지역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기다리던 아브라함이 그를 찾아온 나그네들을 지극히 환대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우상숭배 지역에서 훌륭하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을 보았고 이에 하나님은 ‘의와 공도’ 곧 ‘정의와 공의’를 처음으로 인간에게,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설교 전반부에서 저는 영화 <3일의 휴가>에서 딸이 ‘엄마가 일하던 식당에서, 엄마가 요리하던 주방 기구로, 엄마의 레시피’를 따라 음식을 만들면서 엄마와 딸의 관계가 회복되었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런 눈으로 “의와 공도를 행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 보면, 이것이야말로 언약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밑천’이자 ‘하나님의 레시피’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그럴싸한 레시피가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맛을 내기 위해서라면 뭐든 넣는 별의별 자극적인 퓨전 레시피가 난무합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안되는 줄 알면서도 그럴싸해 보이는 세상의 레시피를 따라 듬뿍 넣게 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레시피가 아닌 건방지게도 ‘자기 레시피’에 빠집니다. 사실 이게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소돔 땅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께 ‘의인과 악인을 함께 죽이려는 겁니까?’ ‘그건 불공정한 판결이 아닙니까?’라고 자기 레시피를 내세우며 항변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급기야 ‘의인 50명을 죽게 할 것입니까?’라는 말로 시작해서 ‘의인 10명이 남아 있으면 어찌 할겁니까?’까지, 마치 내기를 걸듯 하나님과 흥정을 벌이려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나 언약 백성들은 하나님의 밑천, 하나님의 레시피,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에 복종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그것은 어려운 길이어서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도 당황하며 여실히 실패합니다.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영화 <3일의 휴가>에 나오는 엄마 복자가 딸이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뭐가 덜 들어갔다, 뭐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고 처음에는 타박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드디어 “음, 맛있는데!”라고 딸을 칭찬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우리 신앙도 마찬가집니다. 지금 당장은 하나님의 레시피를 따라 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세상의 레시피, 어떤 때는 나의 레시피를 따라 살기도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많이 부족하고 모자라고, 어떤 때는 뭐가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며, 끊임없이 하나님의 레시피를 내미십니다. 그 하나님의 레시피를 붙좇아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삶에 ‘음, 맛있는데!’ 하나님이 여러분 인생을 향해, 여러분의 가정의 향해, 서강 교회와 한국 교회를 향해서 ‘음, 바로 이거지! 그렇지! 내가 이것을 위해 너희에게 레시피를 줬지!’라고 말씀하시는 그런 날을 맞이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