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나, 몇 번이라도 부활의 주님”

(요 21:1-14)

<2025년 4월 20일 부활절 설교 / 흰색>

●첫 번째,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부활절 풍경

오늘 새벽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요한복음 20장의 말씀을 통해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른 새벽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나 주셨고, 그날 저녁에는 두려움에 문을 걸어 잠그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 주셨습니다. 또한, 여드레가 지난 뒤, 주님은 도마가 있는 곳에 다시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못 박힌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만져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로써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믿음의 고백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기뻐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첫 번째 부활절과 이어지는 두 번째 부활절의 풍경이었습니다.

2025년 부활절 연합예배로 드리는 이 시간 나누는 요한복음 21장은 방금 말씀드린 첫 번째, 두 번째 부활절 이야기에 이어서 이제 세 번째 부활절 풍경을 보여줍니다. 그 풍경은 ‘디베랴 호수’(갈릴리 호수, 게네사렛 호수)를 배경으로 합니다. 본문 1-2을 보면, “시몬 베드로와 도마,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 이렇게 총 일곱 명의 제자들이 디베랴 호수에 있었습니다.

여기 나오는 제자들은 앞선 20장에서 ‘집에 숨어 있던 제자들’과는 다른 제자들인 것 같은데, 베드로를 위시한 무려 일곱 명이나 되는 제자들이 이곳 디베랴 호숫가 부근에 와 있었던 것입니다. 먼저 저들의 이름을 보면, “시몬 베드로와 세베대의 아들들”이란 이름이 눈에 띄는데, 원래 이들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어부들이었습니다. 과거 어부였던 사람들이 다시 디베랴 호수에 ‘낙향’(落鄕)한 것입니다.

여기, 이들이 모여 있는 분위기는 어땠을까요? 갈릴리 호숫가에 바캉스 차림으로 파라솔 밑에 앉아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고 있을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앞선 20장에 나왔던 제자들이 두려움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처럼, 이들도 의기소침해져 있고, 두렵긴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마지막 만찬을 베푸시던 그 밤에 예수님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병정들에게 끌려가셨는데, 자기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털 깎이는 양처럼 끌려가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무참히 죽었다는 것을 소문으로 들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제자들은 뭘 해야 할지 몰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처절한 패배감’에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에 대한 불행한 기억과 죄책감, 그리고 자기 자신이 비참하고 수치스럽습니다. 서로 의미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어색함을 달래보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합니다. 이들은 마치 ‘예수님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말자’ ‘그날, 그 악몽 같은 밤을 다시는 떠올리지 말자’라고 약속이나 한 듯이, 그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지만, 저들의 내면은 그 밤에 일어난 사건에 갇혀 있습니다. 비참합니다. 이들은 디베랴 호숫가에 지옥처럼 앉아 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절망: ‘현실 도피’와 ‘퇴행’

무슨 말을 해도, 말이 긴 문장을 이루지 못하고, 내뱉은 말은 시들시들하다가 메말라 주저앉아 버립니다. 하릴없이 일곱 명의 제자들은 그저 멍하니 디베랴 호수를 바라봅니다. 그러던 중 저 멀리 호수에 떠가는 한 척의 배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 배를 바라본 시몬 베드로가 문득 적막을 깨고 말합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3) 우리가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베드로는 악몽 같은 현실을 벗어나는 방법은 차라리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했을까요? 그는 원래 ‘물고기 낚는 사람’이었다가 예수님을 만나 ‘사람 낚는 어부’로 3년을 살았지만, 이제 다시 ‘물고기 낚는 사람’으로 돌아가고자 마음먹은 것입니다.

이처럼 “불편한 상황과 감정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 심리학(프로이트)은 이것을 “현실 회피”(avoidance)라고 합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종종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도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면, 밖에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오면 훨씬 도움이 됩니다. 사실 이것도 일종의 회피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효과 있는 건강한 회피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라고 말한 것은 그런 일시적인 일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말은 현실에 패배해서 과거로 돌아가려는 “퇴행”(regression)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이런 것을 “절망”(desperation)이라고 불렀는데<『죽음에 이르는 병』 치우>, 불안한 자신의 상황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하고, 거기로부터 도망쳐 모면하려고 하는 베드로가 지금 그런 것입니다.

●퇴행과 절망의 배에 승선하다

본문을 보면, 이런 베드로를 다른 제자들이 말리지 않습니다. 말리기는커녕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나 잡으러 가겠다’고 하자, 오히려 다른 제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3)고 하면서 즉시로 배에 올라 물고기를 잡으러 간 것입니다.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려 준다’ 했다고, 베드로가 용기를 내어 ‘절망의 본’을 보이자, 그곳에 있던 다른 제자들도 앞다투어 그 ‘퇴행과 절망의 배’에 오른 것입니다. ‘절망’은 이처럼 강한 전염성을 지닌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들은 피라미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3). 즉흥적으로 배에 올라탄 제자들이 무슨 ‘만선’씩이나 기대하고 배를 띄운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물고기를 구경도 못해 보고 회항하는 그들의 모습은 더없이 초라하고 비참해 보입니다.

어쩌면 돌아오는 배에서 베드로는 문득 3년 전 어느 날이 떠올랐을지 모릅니다. 그날도 베드로는 밤새 수고했지만, 빈 배로 돌아왔습니다(눅 5:5-6). 그런데 그날, 예수님을 만났던 것 아닙니까? 내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고 말씀하신 예수님, 그리하여 내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5:8)라고 고백했던 예수님, 그러나 자신은 그를 배신했고, 배신에 팔려가신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베드로는 ‘퇴행과 절망의 배’의 선장이 되어 출항했지만, 돌아올 때는 ‘더 깊은 절망의 빈 배’에 송장처럼 실려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 그날, 그 예수님이 다시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물론 본문을 보면 제자들은 바닷가에 서신 분이 예수님인 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4). 알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저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께서는 이전에도 그러셨던 것처럼, 다시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6)고 말씀하셨고, 어김없이 제자들은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홀연히 나타나서 ‘오른 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하는 이 정체 모를 이는 누구인가? 본문 7절은 그분이 바로 ‘주님’이라고 합니다. 다른 제자가 전해 준 ‘주님’이라는 말에 베드로는 허겁지겁 주님이 있다는 곳으로 가려 하는데, 본문은 그 모습을 이렇게 말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리더라”(7) 이제 베드로는 ‘퇴행과 절망의 배’에서 뛰어내린 것입니다. 참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숯불의 배신, 숯불의 용서

지금까지 이야기도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지만, 많은 성도님들이 오늘 본문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 ‘숯불구이 생선 요리’를 해 주시는 장면입니다. 배에서 뛰어 내린 베드로가 헤엄쳐서 육지에 도착했는데, 본문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안트라키아’, avnqrakia,)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9)

성경은 베드로가 ‘두 번’ 숯불 앞에 선 것을 말합니다. 그중 한 번이 지금이고, 다른 한 번은 그가 요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을 배신할 때입니다. 그때도 베드로는 여러 사람과 함께 ‘불’(‘안트라키아’, avnqrakia,)을 쬐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딱 두 번 나오는 ‘숯불’이라는 뜻의 헬라어가 한번은 ‘베드로의 배신’을 위해, 다른 한 번은 ‘주님의 용서’를 위해 사용된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12절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 13절은 이렇게도 말합니다.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예수님이 가만히 앉아서 숟가락을 드신 게 아니라, 직접 숯불도 피우시고, 고기도 구우시고, 떡과 생선을 제자들에게 ‘서빙’까지, 1인3역으로 제자들을 섬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너무나도 아름다운 부활절 풍경이 숯불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우울함에 사로잡혀 퇴행과 절망의 배를 탔던 제자들, 밤이 맞도록 헛되이 수고하여 더 깊은 절망의 빈 배로 돌아와야 했던 제자들. 그러나 주님의 말씀대로 다시 그물을 내려 물고기를 잡았고, 내게 말씀하신 분이 주님이라는 말에 퇴행과 절망의 배에서 바다로 뛰어내린 베드로. 끝내, 이제 배신의 숯불이 아니라 용서의 숯불 앞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극진한 대접을 받는 제자들, 이 일을 일컬어 본문 14절은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번, 두 번에 이은 세 번째 부활절 풍경이 이러했습니다.

●언제나, 몇 번이라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이 세 번째 나타나셔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가슴 뭉클하고도 의미심장한 부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말씀을 마치기 전에 베드로의 이야기와 더불어 제자들 이름을 다시 한번 들춰보겠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도마,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 이름 중 ‘도마’의 이름이 여기 있는 것이 다소 의문스럽습니다. ‘도마’는 이미 이전 장인 요한복음 20장에 나오는 ‘두 번째 부활절’에 주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부활의 주님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나이다”(28)라는 범상치 않은 믿음의 고백을 남긴 제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도마에게 물어야 합니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고 말입니다.

본문에서 도마는 아직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한 여느 다른 제자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만약 이야기를 극적으로 각색한다면, 의기소침하고 침울해 앉아 있는 다른 제자들에게, 이번에는 도마가 나서서 ‘내가 주를 보았노라’고 증언했다면, 참 보기 좋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도마의 말을 듣건 아니건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에서 도마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도마조차도 베드로와 함께 그 배, 곧 ‘퇴행과 절망의 배’에 함께 승선했을 것입니다. 이전 장에서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그토록 위대한 고백을 남겼지만, 그건 그저 말의 잔치에 불과했던 걸까요? 그의 삶에 아직 부활의 열매가 맺혀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언제나, 몇 번이라도 부활의 주님”이라 정했는데, 이것은 오래된 어느 일본 애니메이션(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주제곡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노랫말이 이렇습니다. “마음 두근거리는 꿈을 꾸고 싶다. 슬픔은 다 셀 수 없지만, 그 너머에서 꼭 당신을 만날 수 있겠지요. 언제나, 몇 번이라도 꿈을 그리자”

이 노래는, 비록 작고 연약하여 실패와 상처투성이인 영혼이더라도 ‘언제나, 몇 번이라도 멈추지 말고 계속 꿈을 그려 가자’라는 아름다운 노래인데, 노래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비록 도마가 부활하신 주님의 손과 옆구리를 만지는 강렬한 부활 체험을 했다 하더라도, 아직 그는 미숙한 영혼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한 번 경험한 것으로는 모자라서 다시 주님의 부활을 경험해야 했던가 봅니다. 그리고 만약 오늘 본문의 경험으로도 모자란다면, 부활의 주님을, ‘언제나, 몇 번이더라도’ 다시 만나야 할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부활 신앙으로 삽니다. 그러나 한 번 주님의 부활을 경험하고 믿은 것으로 나머지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부활’은 한 번이었지만, 교회는 2천 번의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매 주일을 ‘작은 부활절’로 드리는 것처럼, ‘언제나, 몇 번이더라도’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계속해서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삶에 위기가 다가올 때,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하여 믿음이 흔들릴 때, 예전에는 제법 믿는다고 믿었는데, 지금 내 모습을 돌아보니 뜨뜨미지근하다 느껴질 때, 수십 년 예수를 믿고, 수십 번의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부활의 열매 없이 아직도 ‘퇴행과 절망의 배’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다면, ‘언제나, 몇 번이라도’ 부활의 주님을 새롭게 만나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퇴행과 절망의 배’에서 하선하여, 육지에 올라 부활의 주님이 차려주시는 따뜻한 숯불 밥상 앞에 나와 앉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로써, 훗날 베드로와 도마가 보여준 사도로서의 위대한 명성처럼, 부활의 능력으로 더없는 위대한 신앙의 길을 닦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