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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 사건의 전말에 대하여”

(창 19:1-11, 22-29)

<2024년 5월 19일 성령강림절, 청년주일 설교 / 적색>

●성령강림절과 소돔 땅

교회력에 따라 오늘은 2024년 <성령강림절>입니다. 이날은 2천 년 전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있던 120명의 문도 위에 성령이 임하셔서 교회가 탄생한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무엇보다 성령 강림의 사건은 ‘변화의 사건’입니다. 성령이 강림하신 뒤에, 마른 뼈처럼 매가리 없고 히마리 없던 제자들에게 영적인 힘줄이 생겼고 근육이 붙었습니다. 저들 영혼에 생명의 피가 흘러 그리스도의 강한 군대인 교회를 탄생시켰습니다. 이로써 죽음 앞에 맥 못 추던 제자들은 이제 사망과 죽음을 이기신 예수의 부활로 살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강림절>을 맞이한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창세기 19장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돔 성의 죄악과 그 멸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소돔 사건의 전말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 하는데, 말씀을 나눌 때 우리 가운데 성령이 강림하셔서, 상한 우리의 마음을 회복시켜주시고, 메마른 우리 영혼이 살아나며, 딱딱하게 굳어버린 우리 삶에 변화의 물결이 요동치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지난주 우리는 창세기 18장을 통해 하나님의 세 천사가 마므레 상수리나무 지역에 살던 아브라함을 찾아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의와 공도를 행하라!’ 말씀하신 뒤에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러 떠나시려는데, 아브라함은 “의인 열 명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라고 말하며,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18:32)고 대답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대화는 끝났고, 이제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서 소돔 땅을 살펴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창세기 19장을 이런 물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과연 소돔 땅에는 의인 열 명이 있을까?” 그리고 이런 질문도 가능합니다. “소돔 땅은 어떤 곳이고, 소돔의 죄악은 무엇인가?”라고 말입니다.

●‘게르’로서의 롯

이런 궁금증을 안고 오늘 본문을 엽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을 만나러 왔던 천사 셋 중에 둘이 소돔 땅에 들어가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천사들이 소돔에 도착했을 때 성경은 말하기를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dos.-r[;v;B. bveyO jAlw>)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했다”(19:1)고 합니다. 롯은 낯선 나그네 두 사람을 보자마자 환대합니다. 롯이 보여준 환대는 아브라함이 보여준 최고의 환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의 환대도 이만하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합니다.

방금 나눈 말씀 중에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는 말씀은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 핵심 구절 중 하나인데, 여기서 ‘앉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샤브”(bv;y")라고 해서, 그냥 ‘앉고 일어서는’ 신체 행동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살다, 거주하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아브람과 롯이 헤어지는 창세기 13장에 여섯 번이나 나오는데, 예를 들면 창세기 13장 12절에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야샤브’)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야샤브’)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창 13:12)고 할 때 사용이 됩니다. 그러니까 아브람도 롯도 각각 땅에 ‘거주하며 앉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에 눌러앉다’ 정도로 되지 싶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나그네’를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일정한 거주지가 없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입니다. 이런 나그네는 오갈 데가 없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나그네는 언제 어디서 화를 당할지 모를, 그야말로 하루하루 사는 신세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나그네를 반기지 않았는데, 어디서 무얼 하던 놈인지 모를 나그네를 환영했다가 자칫 화를 당할 수도 있기에 나그네는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오는 첫 번째 나그네입니다.

사실 아브라함과 롯이 처음 하란 땅을 떠날 때 그들의 신세는 이런 나그네였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이 가나안 땅 마므레 상수리나무 지역에 거주하게 된 후로, 롯이 소돔 땅에 거주하게 된 이후로, 두 사람은 떠돌이 나그네가 아니라 ‘특정 지역’에 ‘특정 기간’ 거주하고 있는 나그네로 살게 됩니다. 그들은 현지인이 아니라서 땅도 없고, 민족도 없고, 당연히 나라도 없는 채로 잠시 땅을 빌려 살고 있지만, 분명 떠돌이 나그네와는 다릅니다. 성경은 이런 나그네를 히브리어로 “게르”(rGE)라고 부르는데, 이 사람들은 본토 사람들에 의해서 ‘거주 외국인’(resident alien)이라 불리는 사람들로써, “한 나라에 장기간 거주하면서 특별한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들”을 뜻합니다.<이안 프로반 외 지음, 『이스라엘의 성경적 역사』 CLC> 오늘날로 치자면 마치 ‘영주권’을 받아서 그 나라 사람과 똑같이 사는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소돔에서 롯의 위치

그렇습니다. 롯은 소돔 땅에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비록 현지인은 아니라서 한계는 있지만, 특별한 지위를 인정받았고, 거기서 현지인들과 동화해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눈으로 롯을 생각하면, 오늘 본문에서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오늘 본문에 보면, 롯은 ‘소돔 성문’에 있었습니다(19:1). 고대 사회에서 성문(Castle Gate)은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외부에서 다른 국가나 민족이 쳐들어올 때면 ‘성-안’에 있으냐, ‘성-밖’에 있으냐에 따라 생사가 오갈 수 있기 때문에 성문은 적들의 침입에 대비해서 특별하게 짓고 언제나 군사들이 지켜며 출입을 통제합니다.<조나단 그리어 외 지음, 『고대 근동 문화와 구약의 배경』 CLC> 우리나라 작가 김훈 선생님의 『남한산성』(학고재)에 보면, 병자호란을 겪는 중에 ‘성문을 열어야 한다’는 최명길과 ‘성문을 닫아야 한다’는 김상헌 간의 대립이 극명하게 갈립니다. 성문을 열고/닫음에 따라 나라 전체의 운명이 달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롯이 성문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롯이 보여주는 모습에 따라 소돔의 운명이 달렸을지도 모릅니다.

둘째로 고대 근동 사회에서 성문은 민사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종의 재판이 이루어지던 장소였다는 점입니다. 신명기 17장을 보면, “너는 그 악을행한 남자아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라”(신 17:5)는 말씀이 있고, 역시 신명기 25장을 보면, 백성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그 성문으로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했다”(신 25:7)고 합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법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중앙에서 행하던 일종의 ‘고등법정’이고, 다른 하나는 사사로운 일들을 치리하는 일종의 ‘마을 법정’입니다. 마을 법정이 이루어지던 곳이 어딘가? 바로 ‘성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는 말은 아마도 성문에 앉아서 소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사사로운 문제를 조정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라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케네스 매튜스 지음 『창세기 Ⅱ』 부흥과개혁사>

이와 관련해서 셋째로 롯은 소돔 땅에서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롯은 재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롯이 사회적 지위를 담보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누구 덕분에 그랬을까요? 전적으로 삼촌 아브라함 덕분입니다. 창세기 14장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 땅이 북쪽 메소포타미아 네 개의 연합군에게 대패해서 도시가 불타고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그때 소돔을 구해주고 재산을 되찾아 준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롯의 삼촌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 일 이후에 소돔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얼마나 고마워했겠습니까? 그러므로 소돔 사람들은 아브라함으로 인해 롯을 극진히 대해주려 했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앞서 말씀드린 것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비록 롯은 이방인 나그네였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분쟁을 해결하는 일종의 ‘재판장’으로 그 땅에 거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롯이 성문 앞에 앉아 있었던 이유입니다.

●소돔의 정체가 드러나다

이처럼 롯이 성문에 앉아 있을 때, 천사 둘을 만납니다. 물론 롯은 그들을 천사로 알아보지 못했고 나그네로 보았을 것입니다. 롯은 그들을 보자마자 엎드려 절하며 자기 집으로 초대합니다. 천사들은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19:2)고 하면서 롯의 청을 거절합니다. 천사들은 소돔 땅에 온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창세기 18장 20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창 18:20-21)

천사들은 소돔과 고모라로 인해 누가 울부짖고 있고, 그 부르짖음이 무엇으로 인한 것인지를 탐색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러려면 롯의 집에 들어가면 안 되겠기에 천사들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게다가 여기서 “거리”(‘뢰호브’, bxor>)는 히브리어로 “넓은 광장”(Avenue, broad place)을 뜻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광장으로 가려했던 것입니다.<차준희 지음, 『창세기 다시 보기』 대한기독교서회> 하지만 롯은 이에 굽히지 않고, 간청하면서 그들을 반강제로 집으로 데려가서 식탁을 베풀고 음식을 대접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본문 4-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4-5절)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롯이 나그네 두 사람을 집으로 데려간 것엔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소돔은 이런 곳이었습니다. 자기들만의 왕국을 짓고 살던 소돔 땅은 외부에서 들어 온 나그네에게는 치명적인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든 것은 매우 위협적인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천사들이 넓은 광장으로 가거나 집집마다 다니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들이 롯의 집으로 죄다 모여들었다고 말하니 말입니다. 이제 저들이 보이는 행동만 잘 주시하면, 소돔에서 의인 10명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살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왜 탄식으로 부르짖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들이 롯의 집을 에워싸고 그 집에 들어온 나그네를 능멸하고 폭력을 가하는 사건은 소돔 땅 전체의 죄악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의식 없는 몸뚱이, 반성을 모르는 기계들”

그렇다면 소돔 사람들은 어떤 점에서 심판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습니까?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생물인류학을 가르치는 로버트 새폴스키(Robert M. Sapolsky)라는 저명한 학자는 말하기를, 고대 유목 사회에는 소위 ‘명예 문화’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명예 문화는 정중함과 예절과 환대를 규칙으로 삼는다. 특히 지친 여행자에게는 그렇다. 왜 아니겠는가? 목동들은 누구나 종종 지친 여행자가 되는 법 아닌가?”<로버트 새폴스키, 김명남 옮김, 『행동』 문학동네>

오늘날과는 달리 당시 고대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집을 나서면 불안한 나그네가 되기 때문에, 나그네를 보호하고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며 환대하는 것은 기본적인 의무였던 것입니다. 최소한 3일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당시 암묵적인 규칙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신명기는 말하기를,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신 10:19)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소돔 성 사람들이 보이는 모습은 끔찍합니다. 나그네 둘이 외부로부터 들어온 것을 알아내더니, 본문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였다”고 말하는 것처럼,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전체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이것은 ‘광기’입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나그네에게 정중한 예절과 환대는커녕,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능멸하려 합니다.

이 구절을 두고 작가 이승우 선생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의식 없는 몸뚱이, 반성을 모르는 기계들이 되어 버렸다. … 신체의 어느 부위에 대한 폭력보다 혐오스럽고 모멸스러운 것은 뺨에 대한 것이다. 이보다 훨씬 큰 표현이면서 가장 큰 모멸감을 안겨주는 것이 성기에 가해지는 폭력이다.”<이승우 지음, 『사랑이 한 일』 문학동네>

우리는 지금까지 창세기에서 몇몇 폭력적인 인간들을 만나왔습니다. 그중에 ‘가인’이 있었고, 그의 직계 후예였던 “라멕”(창 4:23-24)의 폭력과 살인은 가인을 능가했습니다. 창세기 6장에는 “네피림과 용사들”이라는 존재가 나왔는데, 성경은 그들에 대해 말하기를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창 6:3)고 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하나님의 영이 떠난 저들에 대해서 “걸어 다니는 육체-덩어리”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방금 살펴본 작가 이승우 선생님이 “의식 없는 몸뚱이, 반성을 모르는 기계들”이라고 표현한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저런 자들에게 임재하실 리 없어 보입니다.

●총체적인 소돔의 타락

이처럼 소돔 사람들의 죄악이 극악무도했다면, 롯은 어떻습니까? 처음에 그는 나그네를 환대함으로 매우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브라함에 비하면 100점은 아니더라도 70점은 받을 만합니다. 하지만 제어할 수 없는 소돔 사람들의 광기 앞에 롯은 그들에게 이렇게 뜻밖의 말을 합니다.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19:8)

이 말에는 여성이라는 약자를 함부로 대하고 멸시하는 롯의 여성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소돔에 20년 넘게 살더니, 소돔 사람에게 물들었던 탓이었을까요? 아니면 원래 롯은 그런 사람이었을까요? 롯이 나그네를 보호하려던 일은 갸륵한 일이었지만, 두 딸을 내주겠으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라”는 것은 소돔 사람들의 폭력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자기 결정권조차 갖지 못한 약하디약한 여성을, 그것도 자기 딸을, 광기로 충혈된 소돔 사람들에게 노리개로 내어주려는 롯의 행동은 약자인 나그네를 능멸하려 했던 소돔 사람과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폭력은 강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소돔 사람들이 롯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 결과 이제는 폭력의 대상이 나그네가 아니라 롯을 향합니다. 9절에서 소돔 사람들은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9a절)고 말합니다. 이에 저들은 롯을 밀치며 그에게 위해를 가하려 합니다. 이러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집 안에 있던 천사들은 롯을 끌어당겨 집 안으로 들이고는 문을 닫아버렸고, 문밖에 있는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만들면서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

소돔 사람들이 롯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롯은 삼촌 아브라함이 소돔을 구해준 일로 인해서 소돔 사람들로부터 호의를 받아 지금껏 무탈하게 지내왔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롯은 성문에 앉아 동네에서 벌어지는 자잘한 일을 치리하는 역할, 곧 ‘작은 판사’ 역할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광분한 소돔 사람의 말은 롯이 잠시 잠깐 까맣게 잊고 지내던 일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롯은 소돔 사람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롯은 소돔 도시에 ‘거주하는 나그네’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평소 롯을 고깝게 보았던 소돔 사람들은 롯은 원래부터가 외부에서 굴러들어온 약자였음을 규정하면서 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은 것입니다. ‘한낱 나그네에 불과한 녀석이 어디 삼촌 아브라함을 등에 업고 감히 나서냐!’는 것입니다. 롯의 신분을 발가벗긴 소돔 사람들은 ‘네놈부터 손을 봐주겠다!’며 그에게 달려들었던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잠자코, 하지만 면밀히 지켜본 천사는 타락한 소돔 사람들의 실체를 파악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천사들이 소돔에 온 것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누군가의 부르짖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이 너무나도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겁기 때문에 천사들을 보내서 그 부르짖음의 실체를 확인코자 하셨던 것입니다.(창 18:20-21) 이제 천사들은 알았을 것입니다. 이런 식이면, 소돔 사람은 힘없고 연약한 사람들을 제물 삼아 무참히 짓밟아왔을 것이고, 짓밟힌 사람들은 어디 하소연할 곳조차 없어 슬픔과 통곡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즉 타락한 소돔 사람들이 저지른 근본적인 죄는 ‘약자를 능멸하는 일’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 무자비한 폭력은 성별을 가리지 않았고 사람에게 수치심을 안겨주고 인간을 능멸하기에 고도로 발달된 것이었습니다.

●떠나라! 당장 도망하라!

이 모든 것을 파악한 천사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롯에게 알립니다. 그리고 소돔 성을 떠나라고 지시합니다. 천사들은 15절에서 “재촉하여” 말했고, 22절에서는 “속히 도망하라”고 말합니다. 17절에서도 “돌아보거나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17절)고 말하는 것처럼, 지금 당장 지체하지 말고 소돔을 떠나야 롯이 심판과 멸망을 면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재촉하는 천사의 경고에 롯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16절을 보면 롯은 뭐가 미련이 남았는지 “지체”(16절)합니다. 19절에서는 “산에까지 도망하기 힘들다”면서 한심한 소리나 내뱉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도망하기 가까운 저 작은 성읍으로 도망하게 해달라”(20절)면서 깐죽거립니다. 공포영화를 보면, 하지 말라는 걸 꼭 하고, 만지지 말라는 걸 꼭 만져서 화를 자초하는 밉상 캐릭터가 꼭 있지요? 지금 롯이 딱 그 꼴입니다. 급기야 천사는 ‘돌아보지 말라’고 경고했건만, ‘궁금증의 화신’으로 불려도 좋을 법한 롯의 아내는 결국 뒤를 돌아봤고, 이로써 “소금 기둥이 되었다”(26절)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저 악명 높은 타락한 소돔 땅에 일어난 죄악의 실상을 보았습니다. 그 실상은 타인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저들은 약한 자를 표적 삼아 떼거리로 몰려가 힘없는 나그네를 성적으로 짓밟으려 하더니, 그것에 동조하지 않는 또 다른 나그네 롯을 향해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롯이 보여준 모습도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힘없고 연약한 자신의 딸을 광기와 폭력을 달래는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주인공 롯이 타락의 도시 소돔을 떠나지 못하고 아쉬워했다 점입니다. ‘서둘러 도망치라!’는 천사의 재촉에는 아랑곳없이, 롯은 주저합니다. 뒤돌아보고 또 돌아봅니다. 마치 소돔 땅에 영혼을 팔아먹은 사람인 듯 소돔에 홀려 흐느적대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이 악으로부터 떠나기가 이처럼 어렵습니다. 본전 생각도 나고, 미련이 남아 뒤돌아보게 됩니다.

이러한 소돔 사람들에게 유황불로 떨어져야 할 말씀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창세기 6장 3절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창 6:3)는 심판의 말씀입니다. 저들은 “걸어 다니는 육체-덩어리”였습니다. 소설가 이승우 선생님의 표현대로 “의식 없는 몸뚱이, 반성을 모르는 기계들”이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처럼 “소돔 사건의 전말”을 촘촘히 살펴보니, 이와 같은 타락한 인간 실존이 흉물스럽게 남아 있던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내게 채우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강림절>인 오늘, 이러한 창세기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겠습니까? 철학자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인간은 은혜를 통해서가 아니면 뿌리 뽑을 수 없는 태생적인 오류로 가득한 존재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블레즈 파크칼 지음, 『팡세』 두란노>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은 “인간은 외부적인 영향력이 없이는 절대 변할 수 없는 기계와 같은 존재”라고 말했습니다.<마크 트웨인 지음,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가서> 우리의 삶을 생각할 때, 이 두 사람의 지적은 매우 적합하기도 하고, 절실하기도 합니다. 파스칼의 말처럼 ‘태생적 오류로 가득한 인간’이 은혜를 통해 변하고자 한다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성령의 은사’가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성령의 은사가 저 위로부터 내려올 때, 비로소 주님의 사랑을 본받고, 우리 영혼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가 우리 안에 가득 채워질 때, 비로소 더러운 세상 탐욕을 다 태워버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마크 트웨인의 지적처럼 우리가 만약 “기계와 같은 인간”이고, 소설가 이승우 선생님의 표현처럼 “반성을 모르는 기계”와 같은 죄로 물든 인간이라면, 그리하여 반드시 ‘외부로부터 오는 무언가’가 필요한 인간이라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은사’인 줄로 믿습니다. 성령의 은사가 우리 안에 물밀 듯 밀려와 가득 채워질 때, 비로소 정결한 마음으로 주와 동행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주님 나라의 소망으로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4년 <성령강림절>을 맞이한 오늘, 사도 바울이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고 말한 것처럼, 성령의 은사로 인해 우리 안의 소돔을 뿌리 뽑고, 성령의 불로 완전히 태워버리고, 하나님이 거하실 온전한 처소로 새롭게 지어지는 여러분의 삶과 영혼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