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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집에 깃든 마르둑의 그림자”

(창 26:34-27:10, 27:41-28:2)

<2024년 7월 21일 성령강림 후 제9주 주일 설교 / 녹색>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가 쓴 『맥베스』(민음사)라는 작품을 보면, 주인공 맥베스가 권력을 잡고 왕이 되려는 과정에서 온갖 권모술수와 그에 따른 갈등이 작품 전체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원래 주인공 맥베스는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장군이었는데, 작품에 나오는 마녀들이 ‘맥베스, 당신은 왕이 될 운명’이라고 그를 꼬드기면서부터 그의 인생이 달라졌고, 이내 그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욕망의 화신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작품을 보면 세 명의 마녀들이 “고운 건 더럽고, 더러운 건 곱다!”(Fair is foul, foul is fair)라는 알쏭달쏭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말로 입을 모아 합창합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해석해 보면, ‘세상에 곱기만 하고, 더럽기만 한 게 어디 있는가?’라는 뜻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고우면서도 더럽고, 더러우면서 고운 것이니, 너무 올바른 길만 고집하지 말고, 때로는 더러운 길도 적당히 걸을 줄 알아야 목적을 이루고 성공할 수 있다면서 충동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생각해보면, 마녀들의 말이 크게 틀리지 않고, 오히려 적절한 교훈처럼 들립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고 성공하려면, 때로는 옳은 게 아닌 줄 알면서도 해야 하고,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두 눈 질끈 감고 모른 척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녀들의 합창을 다시 한번 들어봅니다. “Fair is foul, foul is fair”(고운 건 더럽고, 더러운 건 곱다!) 여기서 영어 단어 ‘fair, foul’은 야구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입니다. 타자가 공을 쳤는데, 경기장 안에 공이 떨어지면 심판이 fair라고 하고, 경기장 밖으로 벗어나면 foul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런 의미로 보자면, 마녀들의 말은 이렇게도 해석이 됩니다. ‘타자가 공을 치면 어디 페어만 나오나? 파울도 나온다’는 것입니다. ‘파울을 칠 게 두려워서 타석에 서지 않을 거냐!’는 뜻으로도 해석됩니다. 이렇게 적용해보니 마녀들의 말에 안심되면서 은근히 설득당하고 싶을 정도로 달콤하게 들립니다.

마녀들은 맥베스를 이런 식으로 꼬드기고 있었던 것인데, 작품에서 맥베스를 충동질하는 존재는 마녀만이 아닙니다. 맥베스의 부인도 남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을 속이려면 세상처럼 보여야 해요. 순전한 꽃처럼 보이도록 하세요. 하지만 당신은 꽃 아래 숨어 있는 뱀처럼 되어야 합니다!”(Look like th’ innocent flower, but be the serpent under ’t.)<William Shakespeare, The Tragedie of Macbeth, Clover Press>

‘순전한 꽃처럼 보이되, 꽃 아래 숨어 있는 뱀처럼 되어야 한다’ 곱씹어 볼수록 무시무시하고 잔혹한 말입니다. 순전한 꽃처럼 보여서 사람들을 다가오게 해서, 다가오면 뱀처럼 날카로운 이빨로 가차 없이 물어뜯고 독을 내뿜으라는 말 아니겠습니까? 안타깝게도 주인공 맥베스는 이러한 아내의 말처럼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욕망에 이끌려 살다가 살인까지 저지릅니다. 더 나아가 인간성마저 상실하게 되고, 결국 마침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런 이유로 이 작품 『맥베스』의 원제목은 “The Tragedie of Macbeth”(맥베스의 비극)이었던 것입니다.

●불편한 이야기, 그리고 1막

오늘 함께 읽은 창세기 27장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 제2대 시조인 이삭에서 제3대 시조인 야곱으로 언약 백성의 계보가 이어지는 과정을 들려줍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그 과정이 전혀 은혜롭지 않습니다. 본문에는 불법과 편법, 속임수와 반역으로 채워져 있는데, 이 모든 일이 맥베스처럼 왕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이삭의 집에서 벌어지고 있고, 몇 날 며칠에 걸쳐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것이 세속적 권력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러려니 하고 읽겠지만, 하나님 언약 백성의 계보를 잇는 거룩한 이야기의 과정이 전혀 은혜롭지 못하고, 한편으로는 시정잡배만도 못한 권모술수로 채워져 유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욕망에 눈이 먼 또 다른 맥베스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 순전한 꽃처럼 위장했지만, 결국 꽃 아래 숨어 있던 뱀처럼 자신의 형을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 장자권을 빼앗은 이삭의 둘째 아들 ‘야곱’(Jacob)입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27장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전체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어느 날 이삭은 자신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앞을 못 보게 되자 자기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맏아들 에서를 불러서 그에게 장자권을 축복하려 합니다. 이를 위해서 이삭은 에서에게 말하기를 ‘화살통과 활을 매고 들에 나가 짐승을 사냥해서 자기를 위해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합니다. 별미를 만들어 오면 그걸 먹고 나서 축복하겠다는 것입니다.(1-4절) 이 말을 들은 에서는 부랴부랴 사냥하러 나갑니다. 이렇게 1막이 끝납니다.

●2막 리브가의 등장과 주도권

1막이 끝나고 2막이 오르자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등장하는데, 리브가는 이삭과 에서가 하는 말을 모두 엿듣고 있었습니다(5절). 그래서 리브가는 서둘러 아들 야곱을 부르고는 에서가 오기 전에 염소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고, 염소 새끼 가죽을 야곱의 손과 목에 입혀서 에서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에서의 옷 중에서 좋은 것을 꺼내서 야곱에게 입히면서 남편 이삭을 완벽하게 속이려 합니다(9,15,16). 남편을 속여서 ‘에서’ 대신 둘째 아들 ‘야곱’이 장자권의 복을 받게 하려는 것이 리브가의 선명한 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목적 앞에 리브가는 단호합니다. 8절을 보면 리브가는 야곱에게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하라!”고 절대명령을 내리듯 강력하게 말하더니, ‘그러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어떡하냐?’고 걱정스레 반문하는 야곱에게 말하기를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라!”(13절)고 달래면서 더욱 강경하게 몰아붙입니다.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는 날에는 아들 대신 모든 걸 책임지고 저주를 받겠다는 결의에 찬 엄마의 말이었습니다. 이에 야곱은 찍소리도 못하고 어머니의 말을 따릅니다.

하지만 비록 이삭이 눈이 멀어서 앞을 못 본다 해도, 그를 속이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위태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20절을 보면 이삭은 음식을 가져오는 야곱을 향해 뭔가 수상하다는 듯이 “내 아들아,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20)고 말했고, 이에 야곱은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20절)라고 대담한 거짓말을 합니다. 아버지의 뜻밖의 의심에 야곱은 엉겁결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들먹이는 거짓을 고한 것입니다.

그러자 이삭은 ‘가까이 오라’면서 야곱을 부르고는 그의 손을 만지면서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22절)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지만, 결국 야곱이 가져온 별미와 포도주로 향연을 벌이고 그를 축복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삭이 이르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 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25-27절)

이삭은 원래 에서가 만들어 준 별미를 먹으려 했지만, 결국 아내 리브가가 만들고, 야곱이 가져다준 별미와 포도주를 즐깁니다. 리브가와 야곱이 마련한 향연에 흠뻑 젖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에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받은 복으로 야곱을 축복하기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29절)라고 말합니다. 이로써 언약 백성의 제2대 시조 이삭에서 제3대 시조로 권위가 이양되었으니, 그의 이름은 에서가 아닌 야곱이었습니다.

●3막의 시작, 헷 족속과 결혼한 에서

이렇게 축복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막이 내리고 곧이어 3막이 시작됩니다. 앞서 화살통과 활을 매고 들로 나간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옵니다. 돌아오자마자 에서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 이삭에게 가서 축복을 받으려 하지만(31), 이삭은 이미 에서 대신 야곱에게 장자권의 축복을 빌어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에서는 울면서 아버지 이삭에게 매달려도 보지만(34절),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이에 에서는 분노하면서 41절에서 말하기를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면서 복수를 다짐하는데, 그 소리를 리브가가 다시 듣습니다. 화들짝 놀란 리브가는 은밀히 야곱을 불러 전하기를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피신하여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43-45절)라고 말합니다. 리브가는 아들 야곱이 하란 땅 라반의 집에서 겨우 ‘몇 날’을 머물 것을 예상했지만, 이후로 야곱은 20년을 거의 노예처럼 머물러야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창세기 27장의 전반적인 내용인데,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이삭의 집에 일어난 비극은 무엇이었을까요? 형제간의 다툼이 불행일까요? 남편과 첫째 아들을 속인 아내 리브가의 행태가 비극일까요?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비극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본문 창세기 26장 34절 보면, 에서가 이방 족속인 헷 족속의 딸 유딧과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했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35절은 말하기를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고 합니다. 성경이 에서의 결혼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지만, 이것은 분명히 경솔하고도 무책임한 행동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창세기 24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아내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종 엘리에셀을 800km나 떨어진 나홀 성으로 보낸 적이 있습니다. 종을 보내면서 신신당부하며 말하기를,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창 24:3-4)고 했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다시 드리지는 않겠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 언약 백성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아들 이삭의 아내를 얻는데 있어서 그만큼 신중했던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눈에 보이는 세속적 풍요만을 좇던 가나안 출신은 안 된다고 못 박았던 것입니다. 이에 반해 오늘 본문의 에서는 어떤 과정으로 헷 족속 부인을 둘이나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에서도 경솔했고, 그의 아버지 이삭도 경솔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이로써 이삭과 리브가는 며느리로 맞은 유딧과 바스맛으로 인해 “마음에 근심이 되었던” 것입니다.

●눈이 어두워진 이삭

둘째로, 본문이 우리에게 이삭이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했다”(27:1)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이삭이 늙고 병들어 그의 육신이 연약해서 앞을 못 볼 정도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영적으로 해석하면 이삭이 ‘분별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여러 번 강조했던 것처럼 창세기는 두 개의 동사가 지배합니다. 하나는 ‘보다’(‘롸아’, ha'r')라는 동사고, 다른 하나는 ‘듣다’(‘샤마’, [m;v')라는 동사입니다. ‘보다’라는 동사는 그냥 눈만 껌뻑거리며 쳐다보는 게 아니라, 무언가 세밀히 쳐다보며 ‘평가하다, 판단하다’는 의미입니다. ‘듣다’라는 동사도 그렇습니다. 그냥 들리는 대로 듣는 게 아니라,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집중하여 듣다’는 뜻입니다. 창세기가 말하는 하나님은 세상과 인간을 이렇게 ‘바라보시는 하나님’이요, ‘들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으로 하여 봐야 할 것을 보게 하시고, 들어야 할 것을 듣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 볼 때, 하나님 언약 백성 제2대 시조의 눈이 어두워졌다고 하니, 큰일입니다. 비록 본문이 ‘이삭의 나이가 많았다’고는 하지만, 모세는 어땠습니까? 신명기 34장을 보면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 34:7)고 했습니다. 이러한 모세에 대한 언급에 비교하면 이삭의 눈이 어두워졌다는 언급은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는 이미 영적 지각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화살통과 활, 마르둑의 그림자

이와 관련해서 셋째로 오늘 본문에서 이삭이 아들 에서에게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사냥해서 별미를 만들어 가져오라’고 요구한 것에 주목하게 됩니다.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3-4절)

영적 분별력을 상실한 이삭은 에서에게 네 가지를 요구하는데, 첫째는 나를 위해 사냥하라는 것, 둘째는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라는 것, 셋째는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라는 것, 그리고 넷째는 내 마음껏 축복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네 가지 모두 ‘나-나-나-나’ 만을 주장합니다. 영적 지각력을 상실한 존재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온통 ‘이삭 자신의-자신에 의한-자신을 위한 요구’입니다. 에서에게 장자권을 축복하려는 것이지만, 먼저 자기 욕구를 채우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 말씀을 다른 관점에서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3-4절) 방금 살펴본 것처럼 이삭은 아들 에서에게 ‘이삭 자신의-자신에 의한-자신을 위한 요구’를 하는데, 이를 위해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사냥하여 별미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가라는 것이 범상치 않습니다.

일전에 고대 바빌론을 비롯해서 고대 사람들이 숭배하던 전쟁 신의 이름을 말씀드렸는데, 기억나십니까? ‘마르둑 신’(Marduk)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바빌론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는 마르둑 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비교하면서 조롱하곤 했습니다.

마르둑에 관한 신화[에누마 엘리쉬]를 보면, 그의 모습이 이렇게 묘사됩니다. “오 마르둑이여! 당신은 위대한 신들 중 가장 영광스럽습니다. … 그는 활과 화살통을 옆에 차고, 그 앞에 번개를 장전하고, 자신의 몸을 불타는 화염으로 채웠노라!”<[에누마 엘리쉬], 제임스 B. 프리처드 편집, 『고대 근동 문학 선집』 CLC>

신화 속에서 이렇게 묘사되는 마르둑 신은 활시위를 당기며 신나게 한판 전쟁을 벌입니다. 전쟁을 마친 뒤에 마르둑은 다른 신들과 함께 앉아 술과 고기를 먹으며 연회를 즐깁니다. 자기 배를 다 채운 뒤에 종교적인 제의를 행합니다.(“위대한 신들이 각자의 보좌를 취했고, 축제의 컵을 들고 연회에 앉았다. 즐겁게 논 후, 제의를 행했다.” -[에누마 엘리쉬]) 이런 마르둑의 모습을 오늘 본문과 비교해보니, 아뿔싸! 에서는 마르둑을 닮았습니다. 활과 화살통을 매고 들판을 뛰어다니는 전문 사냥꾼, 아버지에게 별미를 만들어 연회를 베풀고 장자권의 복을 받으려 했던 에서였으니 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에서는 헷 족속 여인 둘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은 사람만 오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믿는 신까지 데려오는 것을 뜻하곤 했습니다. 솔로몬이 그랬고, 아합왕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방 족속과 결혼할 때는 신중을 기했던 고대 사회의 배경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헷 족속 여인들이 이삭의 집에 들어온 이후로 오늘 설교 제목처럼 하나님 언약 백성 이삭의 집은 점점 마르둑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별미를 탐하지 말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 말씀을 통해 함께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 언약 백성의 제2대 시조인 이삭이 생의 마지막에 보여준 모습은 하나님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맏아들 에서를 위해 헷 족속 며느리를 들이면서 삐거덕거리더니, 결국 영적 지각력마저 상실하여 하나님의 길을 보지 못해 어둠의 길로 인생이 마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 에서로 하여 화살통과 활을 매고 사냥하기를 원했고, 이로써 ‘별미’를 탐하는 마르둑의 길을 선택하고 만 것입니다.

본문에는 ‘별미’(‘마트-암’ delicacy, ~[;j.m;)라는 말이 여섯 번이나 나오지만(4, 7, 9, 14, 17, 31절), 사실 이 단어는 본문 외에 잠언 23장 3절과 6절에서만 나오는 특이한 단어입니다. 잠언서 23장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맛있는 음식(별미, ‘마트-암’)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의 맛있는 음식(별미, ‘마트-암’)을 탐하지 말지어다.”

어떻습니까? 이 말이 긍정적인 단어인가요? 아니면 부정적인 단어인가요? 부정적인 단어입니다. 먹지 말아야 하고 탐하지 말아야 할 음식이 곧 별미(마트-암)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야기에 비추어 보자면, 절대로 따먹지 말아야 할 ‘선악과’야말로 별미 아니겠습니까?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선악과’가 오늘 창세기 27장에서는 ‘별미’인 것입니다. 먹지 말아야 하고 탐하지 말아야 할 것, 육신의 정욕이요 안목의 정욕이며 이생의 자랑에 불과했던 별미를 요구한 이삭이나, 그것을 준비하려고 활과 활통을 매고 들판에 나가 사냥했던 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길에서 많이 벗어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언약 백성의 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눈으로 오늘 본문을 보자면, 이 가정에 드리워진 비극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이삭과 에서를 속인 리브가와 야곱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보이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이삭과 에서에게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탐했던 것처럼, 그들은 ‘별미를 탐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마르둑의 그림자가 그 집을 온통 뒤덮었고, 그 결과 이삭의 가족 구성원 모두는 저마다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보고’ ‘들었고’, 결국 서로 속고 속아 넘어가는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머나먼 북방 메소포타미아의 하란 땅으로 도망쳐 노예 아닌 노예 생활을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본문 말씀을 읽게되니 훗날 이스라엘 백성이 겪어야 했던 ‘바빌론 포로’라는 치욕스러운 역사를 떠오르게 합니다. 에서가 북-이스라엘이라면, 야곱은 남-유다처럼 보입니다. 헷 족속과 결혼해서 이미 여호와의 길에서 벗어난 에서는 하나님 언약 백성의 길에서 벗어나 앗수르에게 멸망한 북이스라엘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어떻습니까?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빼앗았다고 해서 야곱이 저절로 하나님 언약 백성의 시조가 되는 걸까요? 아닙니다. 남-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바빌론 포로기라는 혹독한 시간을 보낸 뒤에라야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 새롭게 언약 백성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 본문 마지막에서 이제 야곱은 이제 머나먼 땅으로 쫓겨 도망칩니다. 혹독한 하란 땅의 시간을 보내야 그는 비로소 하나님 언약백성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문 45절에서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고 하는 리브가의 탄식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자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탄식으로 들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일이 있은 뒤에 오늘 본문 27장 마지막에 보면 리브가가 이삭에게 말하기를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다”(27:46)고 합니다. 그러자 28장 1절에서 이삭은 야곱을 불러 그를 축복하며 이르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말합니다. 누구처럼 말입니까? 아버지 이삭처럼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이방 여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예수 안 믿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말라’는 뜻으로 성급히 해석할 일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 언약 백성의 길에 들어선 자로서 여호와의 길을 버리고 이방 신의 길을 택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칼날 같은 하나님의 경고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간이 흘러 여러분 삶이 이삭처럼 주름지고, 시간이 흘러 여러분의 삶에 금이 가는 시기가 오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는 영적 분별력만큼은 절대로 놓지 않고 잃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죽을 때에도 눈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신 34:7)는 모세처럼, 삶이 허락된 날까지 생생한 영적 지각력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시편 1편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1-2)라고 말하는 것처럼, 마르둑의 그림자 아래 앉아서 별미나 탐하는 삶이 아닌,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아가, 하나님 주시는 말씀의 은혜를 받고, 이로써 여러분 안에 숨겨진 연약함과 상처를 벗고, 독수리 날개치듯 올라서 주님과 함께 다니는 하나님 언약 백성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