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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의 사도 복종의 성도”

(행 9:1-21)

<2025년 8월 24일 성령강림 후 제11주 설교 / 녹색>

●『보이지 않는 인간』 by 랄프 엘리슨

미국 소설가 중에 랄프 엘리슨(Ralph Waldo Ellison, 1914~1994)이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1914년에 태어난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이었는데, 어려서부터 인종차별과 가난 속에 살았지만, 갖은 어려움을 다 이기고 1952년에 『보이지 않는 인간』(민음사)이라는 책을 출간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한 흑인 청년이, 마치 작가의 인생과도 같이 갖은 어려움을 딛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인데, 다음 해에는 전미 도서상을 수상할 정도로 화제가 된 책입니다.

작품을 보면, 학창시절 성적이 우수했던 주인공은 좋은 대학에 입학하지만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퇴학을 당하게 되고, 저 악명 높은 뉴욕 ‘할렘가’로 내려가게 됩니다. 거기서 그는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어떤 단체(형제애단)에 가입하게 되는데, 막상 주인공이 겪어보니, 그들이 부르짖는 구호는 거창했지만, 실상이 그렇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소속된 사람들도 그들이 비판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탐욕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인데, 그것을 목격한 주인공은 과감하게 결단하고 그 조직을 탈퇴합니다.

이처럼 주인공은 사회 여러 곳에서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실망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을 돌아봅니다. “나는 순진했다. 나는 나 자신을 찾고 있었던 것이며, 결국 나 자신만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를 남들에게 묻고 다녔다. … 그러나 먼저 나는 자신이 보이지 않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돌이켜보니 주인공은 자신의 삶이 어디서든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마치 ‘보이지 않는 인간’이었다고 쓰라린 심정을 고백하는데, 소설에 보면 이러한 자아 성찰과 더불어서 주인공이 오늘 본문과 관련해서 오래전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들려주었던 말을 떠올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너는 사울로 시작하지만 결국 바울이 될 게다’ 할아버지는 종종 말씀하셨다. ‘네가 젊었을 때는 사울이지만 인생에게 두들겨 맞으면서 바울이 되려고 애쓸 게야. 여전히 한쪽에는 사울과 같은 면이 남아 있기야 하겠지만 말이야’”

(“‘You start Saul, and end up Paul,’ my grandfather had often said. ‘When you're a youngun, you Saul, but let life whup your head a bit and you starts to trying to be Paul – though you still Sauls around on the side.’” Ralph Ellison, Invisible Man, Vintage)

●신념의 사울 vs 신앙의 바울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소설이 말하는 것처럼 인생으로부터 두들겨 맞은 인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주님께 두들겨 맞은 한 인간을 만납니다. 그는 이제껏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대로 살던 <신념의 사울>(Saul of Belief)이었지만, 이제는 그 허탄한 신념을 버리고 하나님이 옳다고 지시하는 대로 사는 <신앙의 바울>(Paul of Faith)로 변화된 인물입니다.

두 주 전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 나누었던 모세의 인생은 어땠습니까? 처음에 그는 ‘나는 뭐든 할 수 있다’(I can do everything) 하는 <자신만만한 모세>로 왕궁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찾아온 삶의 문제로 인해서 그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I can not do anything)는 <무기력한 모세>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삶이 극적으로 바뀐 것이지만, 이때까지 모세의 인생 기준은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성공할 때는 행복했지만, 실패하니 불행한 그러저러한 인생에 불과했습니다. 그저 자기 신념에 따라 살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호렙산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이 신비 속에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는 그 부르심과 명령에 응답하여 전에 없는 경지로 나아가는데, 곧 ‘나는 하나님이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I can do everything if God wants me to do)는 인생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전까지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기 자신인 줄 알았지만, 이제야 비로소 인생의 참 주인을 만난 모세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뜻’을 기준으로 사는 <신앙의 모세>가 된 것입니다.

바울도 그랬습니다. 그는 이제껏 <신념의 사울>로 승승장구하며 살았지만 오늘 본문에서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무기력한 사울이 됩니다. 그 어두운 시기를 지나서 사울은 극적으로 주님을 만나게 되는데, 이후로는 주님이 부탁하시고 명령하는 대로만 사는 <신앙의 바울>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살해 협박으로 숨쉬던 사울

초대교부인 존 크리소스톰은 바울의 삶을 읽을 때마다 “영적인 나팔 소리를 듣는 것 같고, 눈앞에 그가 나타나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고 말한 바 있는데<John Chrysostomus(344-407), Homilies of St. John Chrysostom on the Epistle of St. Paul the Aostles to the Romans>,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회심 사건은 짧은 이야기임에도 <교회사의 분수령>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기독교의 역사는 바울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은 바울이 변화된 사건을 들려주는데, 두 주 전 사도행전 7장에서 본 것처럼, 산헤드린 공회가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뒤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쟁이들을 발본색원하는 최초의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그 박해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할 즈음, 사울은 다메섹의 회당에서 들어온 뜻밖의 첩보를 접하게 되었는데, 내용인즉슨 그곳에서 예수쟁이들이 더욱 설치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이에 격분한 사울은 대제사장에게 다메섹 회당으로 가져갈 공문을 요청하는데, 말하자면 다메섹 회당과 ‘국제 공조 수사’를 벌여서 거기서 예수를 믿는 자들을 “결박해 예루살렘으로 잡아올 수 있는 행정 명령서”(행 9:2)를 얻게 된 것입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이때 사울의 마음을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다”고 하는데, 이 구절을 성경 원문으로 읽으면 “사울이 협박과 살기로 숨을 내쉬었다”(evmpne,wn avpeilh/j kai. fo,nou, 9:1)는 뜻으로 차마 섬뜩합니다(Saul was still breathing out murderous threats against the Lord’s disciples).

사울은 지금 ‘단순 협박’이 아니라 ‘살해 협박’으로 숨을 쉽니다. 단순 협박이 ‘~하기만 해봐라. 내가 가만 놔두나 봐라’하는 것이라면, 살해 협박은 무엇일까요? ‘~하기만 해봐라, 내가 죽여버리겠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다메섹으로 가는 사울이 장거리 여행과 죄수 호송을 위해 여러 사람과 함께 말을 타고 갔을 것으로 추측하는데, ‘푸드덕’거리며 거칠게 뿜어내는 말의 호흡과 쉴 새 없이 ‘따가닥따가닥’ 거리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사울은 목적지인 다메섹을 향해 살인자의 숨을 할딱이며 달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빛, 소리가 떨어지다

사울이 다메섹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그에게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났는데, 첫째로, 사울에게 하늘로부터 ‘빛’이 떨어졌습니다. 신비로운 일입니다. 하늘로부터 형용할 수 없는 밝은 빛이 내려 그를 둘러싼 것인데, 갑작스러운 밝은 빛에 사울도 놀랐지만, 말도 놀라 급정거하는 바람에 사울은 그만 낙마하고 맙니다. 앞서 소개한 소설 『보이지 않는 인간』에 나오는 대사처럼, 사울이 주님에게 두들겨 맞는 순간이 온 것입니다.

둘째로 사울에게 ‘소리’가 떨어졌습니다. 말에서 떨어진 사울이 땅에 엎드러져 있는데 하늘로부터 갑작스럽게 ‘소리’가 들립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9:4)

사울은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어떤 영적 존재를 직감하고서는 엉겁결에 “주여 누구시니이까?”(9:5)라고 말해버립니다. 이에 주님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9:5b-6)고 말씀하십니다.

그림을 잠시 보시면, 이 그림은 1601년에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가 그린 “다메섹 도상의 회심”(Conversion on the Way to Damascus)이라는 그림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다메섹으로 달려가던 사울에게 하늘로부터 두 가지가 떨어졌는데, 하나는 ‘빛’(fw/j( fwto,j)이고 다른 하나는 ‘소리’(fwnh,)입니다. 카라바조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어두운 배경에 빛이 강렬하게 비치는 모습을 통해 당황하는 바울의 마음 상태를 보여주고, 비록 그림에 오디오가 붙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하늘로부터 들리는 소리를 향해 사울이 손을 뻗어 “주여, 누구시니이까?”라고 다급히 응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설교를 준비하며 묵상하다가 저는 사울의 이 말에 가슴이 저렸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잘만 부르고 기도도 곧잘 하지만, 주님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 앞에 뜬 눈으로 무지합니다. 지금 사울이 그런 것입니다. 사울은 ‘주님’이라고 불렀지만, 그가 부르는 주님이 누군지 몰랐기에, ‘주여, 누구시니이까?’라는 모순된 말을 내뱉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9:8) 사울은 눈을 떴어도 눈이 먼 것입니다. 이사야의 말을 빌리자면, 이제껏 사울의 삶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칠흑 같은 영적 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입니다.

●직가라 하는 좁은 길

이처럼 주님에게 ‘빛과 소리’로 두들겨 맞아 영적인 사경을 헤매는 사울이 비로소 주님을 주님으로 알아보게 된 과정을 본문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모세에게 미디안 광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사울도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9:9)고 합니다. 그 사흘 동안 사울은 <어둔 밤>을 보낸 것입니다. 중세 시대의 영성가인 십자가의 성 요한(Saint John of the Cross, 1542~1591)이 “태양에 가까울수록 더 큰 어둠처럼 느낀다”<『어둔밤』 바오로딸>고 말한 것처럼, 사울은 태양보다 밝은 주님의 빛을 보았기에 사흘간 칠흑 같은 어둔 밤을 지나야 했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훗날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선포할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머물러야 했던 것”(욘 1:17)처럼, 왕을 만나 “죽으면 죽으리다!”는 각오로 단판 지려던 에스더가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금식한 것”(에 4:17)처럼, 사울은 그 사흘 동안 지난날을 돌아보며 깊은 기도에 잠겨 있던 것입니다(9:11). 그리고 주님은 이를 위해 다메섹에 살던 ‘아나니아’(Ananias)라 하는 성도를 부르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다메섹에 살던 성도 “아나니아”, 이름하여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는 뜻의 인물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직가(直街, 곧은길, Straight Street)라 하는 거리(좁은 길)(th.n r`u,mhn th.n kaloume,nhn Euvqei/an)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9:11)고 알려주십니다. 주님은 사울이 머무는 유다의 집을 아주 구체적으로 특정하여 알려주시는데, ‘直街’라고 한자로 번역한 것은 말 그대로 ‘곧은 길’을 뜻합니다. ‘거리’라는 말도 원어로 보면 ‘좁은 길’을 뜻하는 말입니다.

시리아 다메섹의 지도를 보면 오늘날에도 이 길이 존재합니다(via Recta). 이미지로 보시는 것처럼 이 길은 굽은 길이 아니고 곧게 뻗었습니다. 다만 넓지 않고 좁습니다.

이제껏 사울의 인생은 어땠습니까? 사울은 유대인 모두가 부러워할 넓은 길을 다녔지만 그것은 주님이 원치 않는 굽은 길이었습니다. 넓은 길만을 찾아 달리고 달렸던 그의 인생이 다메섹으로 향한 길에서 정점에 달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길에서 주님의 빛을 받은 사울은 본문이 말하는 것처럼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에 머뭅니다. 그러나 이제 비로소 ‘굽은 길’이 아니라 ‘직가라 하는 길’, ‘곧은 길’, 곧 주님을 향한 바른 길에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이런 말씀에 이어서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사울을 찾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아나니아는 손사래를 하며 사울이 얼마나 악명 높은 인물인지 주께 고합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악한 일과, 그것도 모자라 다메섹에 와서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조목조목 주님께 일러바칩니다.

●아나니아, 주의 명령에 복종하다

사울에게 ‘빛’과 ‘소리’가 내려온 것에 이어, 이 장면에서 우리는 사울이 변화하는 것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세 번째 요인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의 명령과 그에 따른 복종”이었습니다.

앞서 “주여 누구시니이까?”라고 묻는 사울에게 주님은 시시콜콜하게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하신 뒤에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9:6)고 명령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아나니아의 항변을 다 들으셨지만, 그 항변에 일일이 대꾸하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준엄하게 명령하십니다. 15절을 함께 읽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9:15, Go! This man is my chosen instrument to proclaim my name)

주님의 명령이 실로 놀랍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악하고 위험한 인간 사울을 성토했지만, 주님은 그에게 “가라!” 명령하시면서 사울은 “내가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나니아의 생각과 주님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던 것입니다.

이러한 명령에 아나니아가 보여준 모습은 무엇이고, 우리는 그것을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15절에서 주님이 아나니아에게 “가라!”고 말씀하시자, 17절은 아나니아의 마음을 네 가지 동사로 바삐 묘사합니다. “아나니아가 떠났고, 집에 들어갔고, 안수했고, 말했다”(9:17)는 것입니다. 자기 앞에 떨어진 명령 앞에 일말의 주저함이 없던 아나니아의 이러한 행동을 우리는 “복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나니아가 복종한 결과 사울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서 본문 17절 이하는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 사울이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라”(행 9:17b-20)

아나니아의 복종으로 인해 사울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성령으로 충만’해진 일입니다. 이제껏 자기 안에 신념만 꾸역꾸역 넣고 살다 보니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의 영이 그의 안에 충만해짐으로 사울 안의 못난 자아가 밀려나가고 그는 신앙의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신념의 사울과 신앙의 바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신념과 신앙’은 구분하기 쉽지 않습니다. 다만 애써 구분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념은 내가 나를 지키는 것이고, 신앙은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신념이 깊으면 고집이 세지만, 신앙이 깊으면 고집은 쇠합니다. 신념은 남을 바꾸려 하는 아둔한 습관이지만, 신앙은 자신의 변화를 위해 겸손히 기도합니다.

신념은 좁다랗고 일천한 내 생각과 경험에 하나님을 가두고 껴맞추는 것이라면, 신앙은 높고도 넓은 하나님께 자신을 내던지는 것입니다. 신념은 ‘하나님을 내 형상대로’ 만드는 것이라면, 신앙은 ‘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인 것을 깨닫고자 부단히 애쓰는 일입니다. 그래서 신념은 ‘내 안에 내가 있음을 찾는 일’로 만족하는 일이라면, 신앙은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고백한 것처럼,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시는 것”(갈 2:20)이라는 더 깊은 경지로 나아가고자 용기를 내는 일입니다.

지금 사울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껏 눈을 떴어도 눈을 가리고 있던 교만과 위선, 독선과 아집의 비늘이 복종으로 인해 벗겨지고, 그는 비로소 주님을 주님으로 알아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전에는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는 자들을 색출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가려 했던 신념의 사울’이었더니, 이제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는 신앙의 사울’이 된 것입니다.

이로써 그는 히브리말로 된 ‘사울’(Saul, lWav')이라는 이름 대신, 헬라어로 된 ‘바울’(Paul, Pau/loj)이라는 이름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복종의 사도로 살게 된 것입니다.

●복종의 사도 복종의 성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복종의 사도, 복종의 성도”라는 제목으로 기독교 역사상 분수령이 된 복종의 사도인 바울이 태어나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복종의 사도 바울이 있기 위해서, 하나님은 복종의 성도 아나니아를 사용하셨습니다. 비록 주님이 바울을 향해 “그는 나의 택한 그릇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분명 복종의 성도 아나니아 또한 주님이 귀하게 사용하기 위해 택하신 참 좋은 그릇인 것을 보았습니다.

독일의 신학자이신 헬무트 틸리케 목사님은 “태도가 바른 사람만이 그리스도를 바로 볼 수 있다. 그분께 복종하는 자만이 그분을 바로 볼 수 있다”<『하나님의 침묵』 두란노>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오늘 우리가 만난 바울과 아나니아에게 본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복종이 태도가 되고, 이로써 주님을 바로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종이 태도가 되고, 복종이 습관이 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려 주님을 똑바로 바라보며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우리가 사도 바울처럼 위대한 복종의 사도가 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아나니아가 보여준 모습처럼 위대한 복종의 성도의 삶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내가 아니라 주님을 높이고, 주님의 부르심을 잘 받들어서 주님의 몸된 교회와 형제 자매를 정성으로 섬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