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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 입은 자들의 미래”

(누가복음 1:18-23, 57-66)

<2024년 12월 15일 대림절 셋째 주 설교 / 보라색>

●기다림을 삶으로

오늘 우리는 대림절 셋째 주를 맞아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예배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대림절은 첫째 주로 시작해서 둘째, 셋째, 넷째 주로 차례로 이어지고, 곧바로 성탄절로 연결되기 때문에, 마치 어린아이들이 생일을 기다리면서 달력에 X표를 하나씩 적는 것처럼, 그 기다림이 일정한 스케줄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림절의 기다림은 그런 스케줄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반대입니다.

대림절의 기다림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 처녀의 비유”가 말하는 것처럼, ‘반드시 오긴 오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을 기다리는 일’과 같기 때문입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가 신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섣부른 생각과 예상’에 따라 신랑을 기다렸다가는 자칫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작가 이승우 선생님은 얼마 전 출간한 그의 책에서 기다림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와야 할 날 이후’를 기다려야 한다. … 기다리는 사람은 기다림이 한없이 지연될 것을 알고 대비해야 한다. 기다림을 삶으로 받아들여야 한다.”<이승우, 『고요한 읽기』 문학동네>

문장은 군더더기 없고 참 아름답지만, 못내 견디기 어려운 말입니다. 작가의 말인즉슨, 기다리던 날이 와도 그게 끝이 아니라 오히려 그때부터 진정한 의미의 기다림이 시작된다는 말 아닙니까? 게다가 기다림이 한없이 지연될 것을 예상하고, 무한정 기다리는 게 상책이란 말 아니겠습니까? 더 나아가 ‘기다림을 삶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은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처럼 무겁게만 들립니다. 그런 기다림은 너무나도 힘들고 진 빠지는 일이고, 가혹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기다림일 것이란 생각을 감출 수 없습니다.

●가브리엘 천사

그런데 두 주 전 나누었던 누가복음 1장에 보면, 이러한 엄청난 기다림을 인내로 이겨낸 두 인물이 나옵니다. 그들은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였습니다.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성경은 이 부부를 소개하면서 “하나님 앞에 의인이며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한 사람”(6절)이라 하고, “제사장의 직무”를 성실하게 행하던 사람들이었으며(8절), 고통스러운 기다림 속에서도 하나님께 포기하지 않고 “간구하던 사람들”이라(13절)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부부의 신앙을 “말씀, 예배, 기도의 기본기를 충실히 갖춘 신앙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처럼 ‘말씀, 예배, 기도’로 평생을 살아온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어느 날 천사가 찾아가서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눅 1:13) 말하면서 아기가 태어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첫 번째 본문 누가복음 1장 18절을 보면, 사가랴는 천사에게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은데” 어떻게 후손을 얻을 수 있겠냐고 반문합니다. ‘말씀, 예배, 기도의 기본기를 충실히 갖춘 사람’조차도 그 말을 선뜻 믿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이처럼 믿지 못하고 반문하는 사가랴에게 천사는 좀 더 확신을 주려 했는지 자기 이름을 알려줍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입니다.”(I am Gabriel, I stand in the presence of God, 눅 1:19) 천사가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현존으로부터 왔습니다!’, 즉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왔다’고 말하는 것도 놀라운데, 그 이름이 무려 ‘가브리엘’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어떤 존재입니까? 구약성경 다니엘서 8장을 보면, 다니엘이 어떤 신비롭고 두려운 환상으로 인해 어안이 벙벙하여 있을 때, 그에게 환상의 비밀을 깨닫게 해준 존재가 가브리엘 천사였습니다(단 8:15-16). 가브리엘은 다니엘을 찾아가 말하기를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다!”(단 9:22)고 하면서 그가 본 환상을 해석해 줍니다. 그런데 곧이어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말하는 걸 들어보면 그가 다니엘에게 나타난 것은 단순히 환상을 해설 해주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따로 있었는데, 천사는 말하기를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9:22-23)고 합니다.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나타난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로 하여 ‘은총을 입은 자’인 것을 깨닫게 해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브리엘을 “하나님의 은총 전달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유대인 제사장으로서 사가랴는 누구보다 천사 가브리엘에 대해 잘 알았을 것이지만, 하나님의 은총 전달자인 가브리엘이 ‘네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은총을 ‘전달’하자, 사가랴는 은총을 ‘의심’합니다. 이에 본문 누가복음 1장 20절에서 ‘은총 전달자’인 가브리엘은 ‘은총 의심자’인 사가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리니 …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20절) 말인즉슨, ‘네가 은총을 믿지 못하니, 그 은총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당분간 너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천사는 말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니 사가랴는 정말 말을 못하게 되었고,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사가랴는 그저 “몸짓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말 못하는 대로 있더라”(22b)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가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될 것인지 아닌지는 은총 전달자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사가랴:하나님은 기억하신다

오늘 나눈 두 번째 본문 누가복음 1장 67절을 보면 천사 가브리엘의 예언대로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드디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게 됩니다(눅 1:57). 사가랴는 은총 전달자 가브리엘의 말을 의심했지만, 본문이 말하듯이 “기한이 차자” 그 은총은 고스란히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이 많은 엘리사벳이 뜻하지 않게 임신했다가 무사히 아기를 낳게 되었으니 이웃과 친족이 얼마나 신기하며 기뻐했겠습니까? 이에 본문 58절에서 그들은 말하기를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엘레오’, 은총, 자비, 복)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했다”고 합니다(눅 1:58). 사람들은 이 일이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엘리사벳에게 크신 은총과 자비를 베푸셔서 가능한 일이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처럼 은총 전달자의 말대로 아기가 태어나고, 그로부터 팔 일이 지나자, 친족들이 모여서 유대 전통에 따라 아기에게 할례를 주면서 아기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서 사가랴라 하자”(59절)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엘리사벳은 정색하면서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40절)고 대답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이름을 받아 이름 짓는 것을 영광이요 큰 기쁨으로 여겼습니다(토마스림). 이런 이유로 이웃과 친족들은 아기의 이름을 ‘사가랴’로 짓는 게 마땅치 않냐고 흥에 겨워 제안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 이름도 귀합니다. ‘사가랴’는 이름하여 “기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엘리사벳이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하자, 친족들은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요한)으로 이름한 자가 없다”(61절) 말하면서 짐짓 뻘쭘하여 한발 물러서더니, 옆에 서 있던 사가랴에게 몸짓을 해가며 ‘당신은 무엇으로 이름을 짓겠냐?’고 묻습니다(62절). 이에 사가랴는 ‘말’도 아니요, ‘몸짓’도 아니요, 제3의 방법으로 친족들에게 답하는데, 63절이 말하듯이 그는 “서판을 달라” 하더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씁니다. 서판에 그 이름 ‘요한’이 적힌 것을 보자 사람들은 “다 놀랍게 여기더라”(63절)고 성경은 말합니다.

바로 그때, 사가랴가 서판에 요한이라고 썼을 때, 성경은 말하기를 “사가랴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리면서 말을 하더니 하나님을 찬송했다”(64절)고 합니다. 할례받은 아기의 이름을 정하는 일인데, 그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 뭔가 범상치 않습니다. 특별히 ‘사가랴’가 아니라 ‘요한’이란 이름이 서판에 적힌 일로 인해 사람들이 모두 놀랍게 여긴 것은 무언가를 암시하는 내용처럼 보입니다.

●요한: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앞서 ‘사가랴’는 “기억하시는 하나님”(God remembers)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보통 무엇을 기억하는 분이십니까? 창세기 9장에 보면 하나님은 대홍수를 통해 백성들을 심판하신 뒤 노아에게 ‘무지개 언약’을 베푸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라”(창 9:15)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어떤 때에도 변함이 없으시고, 신실하심으로 언약을 기억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것이 사가랴의 이름에 담긴 의미입니다. 실로 사가랴는 그 이름에 합당하게 이름값 하며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면 ‘요한’이란 이름은 어떤 뜻일까요? 요한이라는 이름은 구약성경에 ‘요하난’(Jochanan)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곳에 나옵니다(왕하 25:23, 느 12:23). 이름하여 “은혜로우신 하나님, 하나님의 은총”(God is gracious, God shows us favor)을 뜻합니다. 가히 은총의 전달자가 알려준 이름답습니다. 그러므로 두 이름을 비교하면 이렇게 됩니다. <사가랴: 언약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vs 요한: 은혜의 하나님, 인자하신 하나님> 사가랴가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일평생 다하도록 기다렸던 인물이었다면, 이제 요한은 하나님의 은혜를 넝쿨 채 몰고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그분이 오실 길을 준비하는 인물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은총의 전달자 가브리엘이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눅 1:13) 했던 것이고, 그런 이유로 엘리사벳은 사람들이 ‘사가랴’로 이름 짓자 할 때 “아니라! 요한이라!” 했던 것이며, 그런 이유로 사가랴는 그 옛날 시내산 하나님이 돌판에 율법을 새기셨던 것처럼, 그 이름 요한을 서판에 적어 ‘이제 요한은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그의 길을 준비하며 꿋꿋이 살아갈 것’이라 선포한 것입니다. 그것이 은총 입은 자의 삶인 것을 본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를 알아보지 못한 요한

이런 이유로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은총 입은 자들의 미래”라고 정했는데, 그렇다면 이후로 은총 입은 자, 요한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요한이라고 해도, 그의 삶은 여러 이유로 힘들고 지친 삶이었습니다.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 사는 일이 누가 알아주는 일도 아니고, 반대로 사람들의 표적이 되기 딱 좋은 삶이었습니다. 무엇 하나 보장된 삶을 산 것도 아니고 오히려 외롭고 쓸쓸한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이런 것만으로 힘들었다면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1장에 보면, 요한이 옥에 갇혔을 때, 그는 자신의 제자를 예수께 보내서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3)라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요한이 예수님을 의심한 것입니다. 그토록 확신에 차서 기다리던 주님이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 예수가 내가 기다리던 주님이 맞나?’ 싶었던 것입니다. 앞서 작가 이승우 선생님이 했던 말, “기다리는 사람은 ‘와야 할 날 이후’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빗대서 생각해 보면, 요한은 이 일에 실패한 것입니다. 자기 손으로 세례까지 주었던 예수님이었지만, 그는 예수님을 온전히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일평생 예수를 믿고 사는데, 만약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불행하겠습니까? 평생을 기도하고 예배하고 동행한다 하면서 예수님을 믿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예수가 누군가? 예수가 정말 세상을 구원할 주님이 맞나?’라는 식의 생각이 들어서 믿음이 식고 은혜마저 증발한 시간을 맞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불행하고 끔찍한 일 아니겠습니까?

●장예모 감독의 영화 [5일의 마중]

이러한 요한의 모습을 묵상하던 중에 저는 중국 영화의 거장인 장예모 감독이 지난 2014년에 내놓은 [5일의 마중](归来, Coming Home)이라는 아주 감동적인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영화에는 ‘루옌스’라는 남편과 ‘펑완위’라는 부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남편이 당국으로부터 정치범으로 몰려서 억울한 감옥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남편 ‘루’와 아내 ‘펑’은 오랜 시간 떨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당국 경찰들에게 잡혀가기 직전에 아내에게 “5일이 되면 돌아오겠다”는 쪽지를 남겼기 때문에, 아내는 매월 5일이 되면 어김없이 기차역으로 나가서 남편을 온종일 기다리는데, 그래서 영화 제목이 [5일의 마중]입니다. 그렇게 매월 5일마다 하염없이 남편을 기다리던 시간이 일 년이 되고, 이 년이 되고, 쌓이고 쌓여 이십 년이 지나서 드디어 남편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내가 “심인성 기억상실증”, 즉 심각한 스트레스와 충격으로 인해 남편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을 향한 그리움으로 사무쳤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남편은 오지 않는다’는 현실이 기정사실처럼 굳어졌습니다. “5일이 되면 돌아오겠다”는 남편의 말에 희망을 걸었던 20년이었지만, 그때마다 ‘남편은 오지 않는다’는 차가운 현실만 확인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 시간으로 인해 아내의 마음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기억상실증’이란 병을 얻게 된 것입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아내에게 ‘내가 당신의 남편!’이라고 말하면서 확인시켜 주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을 외간 남자 취급을 합니다. 하는 수 없이 남편은 집이 아니라 근처에 허름한 방을 얻어서 생활하는데, 이후로도 남편은 의사의 자문을 얻어서 포기하지 않고 아내의 기억을 되살려 주려고 노력합니다. 아내에게 찾아와 정기적으로 책을 읽어 주고, 과거에 아내와 함께했던 일을 연출해서 아내가 기억을 회복할 수 있도록 애를 썼던 것입니다.

어느 정도 노력하지 효험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아내가 다시 5일이 되어서 기차역에 나가 남편을 기다립니다. 남편 보라고 큼지막하게 남편 이름을 적은 푯말을 들고 서 있습니다. 저 멀리서 남편이 옵니다. 남편은 아내가 자기를 알아볼 것을 기대하면서 계단을 타고 내려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내 ‘펑’은 남편 ‘루’를 알아보지 못하고 서로 서성이기만 합니다.

이후로 두 사람은 아주 친밀한 이웃이 되긴 하지만, 남편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의 병은 회복될 기미가 전혀 없습니다. 끝내 남편을 남편으로 기억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자 남편은 ‘이제 더는 아내가 기억을 되찾도록 돕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습니다. 대신에 남편은 아내의 남은 생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하려 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편은,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는 아내 옆에서, 자기 이름 ‘루옌위’라는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힌 푯말을 아내 대신 들고 서서, 아내가 기다리는 남편을 기다리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은총 입은 자들의 현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은총 전달자 가브리엘에 의해 태어난 아기가 ‘요한’이라는 이름을 받게 된 경위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그 아기의 이름 요한은 ‘은총의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그는 실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태어나 오시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던 은총의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요한조차도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주님을 의심했습니다. 그리하여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리이까?”라는 참담한 질문을 던지기까지 했습니다. 방금 소개한 영화에서처럼, 20년을 기다린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 ‘평’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이미 남편은 돌아왔는데, 5일이 될 때마다 남편을 기다리러 마중 나가는 더없이 안타까운 모습처럼 말입니다.

때때로 우리도 이미 우리에게 오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하여 ‘이미 은총 입은 자’로 살고 있으면서도, 마치 ‘아직 은총이 임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삶 곳곳에, 모든 순간마다 ‘이미’ 은총투성이인데, 우리의 눈이 가려져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평화는 ‘이미’ 우리 영혼 그윽이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나오고, 하늘 위로부터 내리는데, 우리는 멍하니 다른 곳만 쳐다보기도 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우리도 기차역에 나가 ‘이미 오신 주님’을 여전히 기다릴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미 우리에게 오신 주님을 기다릴 때, 혹시 주님이 그 옆에 서서 큼지막한 푯말을 우리 대신 들고 서 계신 것은 아닙니까? 고개를 돌려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설교 제목을 “은총 입은 자들의 미래”라고 정했지만, 은총 입은 자들의 미래는 없습니다. 오직 은총 입은 자의 현재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아직 오지 않은 주님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이미 오신 주님을 매일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만나고 모시기 위함일 뿐입니다. 그것이 은총 입은 자의 삶인 줄로 믿습니다. 날마다 주야로 주님과 함께 있어서 참 기쁨과 평안을 ‘지금’ 누리는, 참으로 은총 입은 자로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