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수난을 당하시다”

<마가복음 15:1, 21-33>

Ⅰ. 설교에 들어가며

고난주일이자 종려주일을 맞아 오늘 예배에 나오신 여러분들을 주의 이름으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예배당과 온라인으로 그리고 소예배실에서 예배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강과 사랑이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순절 기간, 믿음의 여정을 통해 역사하시고, 깨달음을 주시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주님의 은총을 한분도 빠짐없이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어제는 그리고 오늘도 비가 내립니다. 오늘 우리는 고난주일이자 종려주일로 이 자리에 모였는데요, 우리 주님이 예루살렘에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면서, 주님을 향해 흔들었던 그 종려나무 가지가, 며칠 지나지 않아, 가시 면류관으로 바뀌었고요, 또한 나무에 달려 사람들의 저주를 받아 죽으신 그 수난의 여정이 고통스럽기만 해서, 이 예배를 준비하는 마음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가 봅니다. 우리 주님의 고난을 슬퍼하는 ‘비’이기도 했고요, 또한 그런 고난을 받으신 주님을 섬기고 따른다 하면서도, 주님의 진리가 아니라 저 세속의 진리에 휩쓸려 살던 우리의 죄악된 모습을 씻으라 하시는 주님의 눈물인가 봅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 수난을 당하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하는데요, 말씀에 앞서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세이레 특별 새벽기도회”가 이제 내일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만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고난주간을 살아낸 뒤에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예배로 다음 주에 모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마음 다해 축하하기 위해서라도, 여러분, 가능한 이 고난주간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시기를 권면해드립니다. 예배당으로 나오시면 더 좋고요, 여의치 않으시면, 각 가정에서 온라인으로라도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매년 고난주간 새벽기도회를 할 때마다, 이전에 몰랐던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었음을 경험하곤 했습니다. 평소에 풀리지 않아서 붙잡고 기도하던 제목들이, 이때에만 부어주시는 하나님 은혜로 해결되는 일도 참 많았습니다. 작년과 올해, 우리 모두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매우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데요, 이 고난주간을 넘어 부활절기로 옮겨갈 때에, 지금껏 풀죽어 있고 웅크려 있던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회복되는 은혜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 서강의 성도 여러분, 어떤 식으로라도 좋으니, 이번 고난주간을 꼭 붙잡고 하루하루 사시면서, 이때가 아니고서는 받을 수 없는 우리 주님의 은혜가 충만한 시간 삼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Ⅱ. 설 교

이스라엘 역사 중에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왕이 있다면 ‘시드기야 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드기야왕은 고대 유대 왕국의 마지막 왕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조언을 끝까지 거부하다가, 끝내 예루살렘이 바벨론제국에 철저히 유린당하고 도륙 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내 자신의 눈앞에서 어린 두 아들의 목이 잘려나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고요, 시드기야왕, 자신은 두 눈이 뽑힌 신세가 되어 사슬에 묶인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버렸습니다. 그의 나이, 32살 때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유대 왕국의 멸망은 참으로 피비린내 나는 절규와 절망의 혼돈으로 점철되었습니다. ①유대의 정치 지도체제가 완전히 무너졌고요, ②다니엘이나 에스겔을 포함한 상당수의 유대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버린 상황이었기에, 언제나 고향땅에 돌아갈 수 있을까 하루하루를 눈물로 연명하던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유대 백성들은 ‘자치 지도부’를 만들어나갔습니다. 그 지도부를 통해서, 훗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꿈을 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로 신세였어도 율법을 잊지 말아야 하며, 유대 사회의 질서를, 안으로부터 회복해야 한다 믿었기에, 그들은 자치 지도부를 만들어 포로생활 중에라도 유대인으로서의 규율과 율법을 스스로 지켜나가려 했던 것입니다.

이 포로기 당시의 유대 자치 지도부의 이름을 뭐라고 불렀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 자치 지도부가 훗날 우리가 성경에서 자주 보게 되는 ‘산헤드린 공회’가 됩니다. 그러니까, 이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잡혀가 있는 동안에, 그런 중에라도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 또한 훗날 “메시야가 올 것이라” 백성들에게 가르치며 소망을 주려했고요, 그리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회복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자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강한 의지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게 웬일입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는 바로 이들에 의해 자행됩니다. 이미 마가복음 14장53절 이하에서는, 예수님을 향한 산헤드린 공회의 증오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 증오의 마음은 적개심이라든가, 멸시와 조롱 같은 것으로만 드러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또한 ‘거짓증언’도 서슴지 않고 동원됩니다. 그 사람 예수에게 죄를 씌우기 위해 산헤드린의 모든 구성원들이 총동원 됐던 것입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아픔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세우고, 이로써 저들을 구원할 메시야를 대망하던 중에 만들어진 산헤드린 공회가, 이제 저들 눈앞에 나타난 메시야를 죽이려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기사 그도 그럴 것은, 예수께서는 저들의 눈엣가시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저들이 볼 때에, ①예수의 말에는 자기들과는 다른 생생한 권위가 살아 있었고요, ②저 예수란 자는 병든 사람의 흉측한 몸에 손을 가져다 대기를 주저하지 않는 거였습니다. ③오히려 자신들이 ‘죄인’이라 낙인 찍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거였습니다. ④하여, 사람들의 칭송을 넘치도록 받았으나, 무슨 생각인지 도통 모르게도, 저 예수는 칭송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까닭에, 그냥 이러저러한 갈릴리 출신의 종교적 괴짜인줄만 알았던 예수는, 이제 산헤드린 공회의 표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제 저 가시를 뽑아버릴 때가 된 것입니다.

스스로 호랑이 굴, 예루살렘에 뒤뚱뒤뚱 나귀를 타고 들어왔으니, 서둘러 타고 빠져 나갈 짐승 하나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그 예수란 자는, 성전에 들어와 난동을 부렸다고 합니다. 참람하기 이를 데 없이, “성전을 허물라”며 도발하기를 서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 드디어 산헤드린의 때가 왔습니다. 두 눈을 뽑힌 채 감옥에서 처참히 죽어간 자신들의 왕 시드기야의 최후가 어떠했는지 똑똑히 알고 있었기에, 이 역사를 잊지 말자고, 우리를 구원할 구원자가 곧 나타날 것이라고, 우리 다같이 손 맞잡고 기쁨의 노래로 메시야를 맞이할 그날을 준비하자며 세운 산헤드린 공의회였건만, 눈 먼 시드기야 왕의 영혼이 저들의 눈을 가려버리기라도 했던 것일까요? 산헤드린 공의회는 이제 제 손으로 메시야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두 눈이 뽑힌 왕으로는 부족했던지, 자기들 앞에 서 있는 만왕의 왕의 손과 발에 못을 박고자 했던 것입니다.

오늘 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는 아주 긴박하게 돌아갑니다. 산헤드린은 예수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으나, 로마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그들은, 자신들에게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짐승처럼 예수를 끌고서는 총독 빌라도에게 데려갑니다. 로마황제 티베리우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으로, 이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압력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정치 관할구역에서 유대인들의 동요가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빌라도는 이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려 합니다. 예수를 직접 만나보아도, 십자가 형에 처할 혐의를 찾지 못합니다. 스스로 ‘유대인의 왕’을 자처하였어도, 사형대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그 의연함은 차마 경외의 대상이었습니다. 마치, 무언가를 위해 죽기를 자처한 사람인 양,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삶과 죽음을 초월한 무언가를 느꼈던 것입니다.

때마침 유월절이었기에, 빌라도는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죄수 하나를 풀어주는 전례를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선택은 예수가 아니었습니다. “바라바”였습니다. 산헤드린조차도, 살인을 저지른 바라바가 그대로 처형되기 마땅하다 여기긴 했으나, 그 증오는 예수에 비할 바 못되었습니다. 산헤드린은 백성들로 하여, 소리치게 합니다. “바라바를 놓아주라!” 빌라도의 귀에 더 잘 들리도록 다시 한 번 소리치게 합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이성을 잃고 소리치는 사람들의 함성은 빌라도의 의지를 꺾고야 말았습니다. 이에 빌라도는 예수에게 채찍질을 가하도록 명하고, 이내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자기로서는 사형에 처할 그 어떤 혐의를 찾지 못한 예수였으나,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소리치는 사람들의 살기마저 무시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여, 마태는 빌라도가 뒤를 돌아 손을 씻는 것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을 똑똑히 들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그러나 그것은 소용없는 짓이었습니다. 로마 총독이라는 정치인의 정치행위는 개인의 고백으로 물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총독 빌라도는 그가 결정한 정치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예수 십자가 처형의 ‘최종 결정권자’가 누구였는지를 물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us Pilatus 그의 본명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저는 여러분들에게 고발하려 합니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최종적으로 결정한 정치인은 바로 “폰티우스 필라투스, 곧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그는 이후로 예수-십자가-사형의 주범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그 어디에서나 기억되는 존재가 되고 말았던 것 입니다.

채찍형이 내려지자 사자 떼가 먹잇감을 물고 먹는 것 마냥, 로마의 군인들은 예수를 우악스럽게 낚아챕니다. 주먹으로 머리를 치고, 광대뼈가 함몰해 들어가도록 얼굴을 치고 또 칩니다. 두 손을 묶고 옷을 벗깁니다. 군인 서넛이 채찍을 들고 섭니다. 그 채찍의 이름하여, “Flagrum”입니다. 서너 갈래의 가죽 끈 끝에 납덩이나 양의 복사뼈를 매달아 사정없이 내리 치는 것입니다. 내리 칠 때마다 한 인간의 살점이 찢겨 도륙당합니다. 모세의 율법은, 채찍질의 형벌이 40대를 넘지 말라고 엄히 제한한 것에 반해, 로마의 법은 채찍질에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하여 일찍이 당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이 채찍질에는 정당한 규정이 있어야 한다. 이 끔찍한 채찍질로 인해, 사람들이, 가죽이 벗겨진 채로 죽고 있지 않는가!”(Satires, Horatius)라며 치를 떨었습니다. 당대 유대의 역사학자인 요세푸스는 말하기를, “채찍질에 맞은 사람들의 내장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고도 했습니다.

문득 어디선가 이사야의 통곡이 들립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 53:5>

온 몸이 피로 뒤범벅되어 쓰러진 예수에게 군인들은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웁니다. 간만에 맛보는 큰 구경거리로 인해 온 군대가 소집된 것입니다. 마가복음 15장16절이 증언하는 바,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로마 총독 빌라도의 관저 앞에는 그의 친위병 600여명의 군인들이 종과 횡을 맞추어 도열한 채로 “유대인의 왕, 만세” 하며 경례를 붙입니다. 몇몇 군인들의 입에서는, 애써 참던 웃음이 키득키득 터져 나오더니, 이내 박장대소로 바뀌어 다시금 모든 군인들이 대놓고 희롱에 가담합니다. “유대인의 왕, 만세, 유대인의 왕, 만세, 유대인의 왕, 만세”

희롱을 마친 군인들은 이제 입가에서 웃음을 거둡니다. 자색 옷을 벗겨 예수를 발가벗은 채로 놓더니, 다시금 피범벅이 된 옷을 도로 입힙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무리들이 양 갈래로 뻗어 조롱하고 멸시하는 그 길, Via Dolorosa, ‘십자가의 길’을 걷습니다.

채찍 맞아 찢어진 몸을 타고 흐르는 피가 바닥을 적셨습니다. 그를 환영하며 흔들었던 종려나무 가지는 온데 간데 없이, 사람들은 저주의 손가락만을 뻗고 흔들었습니다. 다만 저 담장 너머로 제사를 기다리고 있던 어린 양들의 울음소리만 통곡으로 들려오는 듯합니다.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계5: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사 50:6>

이제 골고다라 하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마가복음은 인류의 역사를 뒤 바꾼 이 십자가 처형을 허망하게도 24절, 한 구절에 묘사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만왕의 왕이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그 처참한 행위가, 군인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과였을 뿐이었습니다. 저들은 정말, 자기들이 무얼하는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들의 관심은 다만 “피범벅이 된 그 옷을 나눠 갖는 일”이었다고 마가복음은 허망한 마음으로 증언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밤 시작된 예수 살해 모의는 이렇게 아침 9시에 끝이 났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십자가에 붙여진 죄패에는, 저들의 조롱 레파토리, ‘유대인의 왕’을 보란 듯이 써 넣었습니다.

그러나 그 조롱과 멸시는 거기서 끝나지가 않습니다. 29절을 보면, 어디를 가고 있던 자들인지 알 수 없으나,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흔들었다”는 해괴한 행동으로 예수를 모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소리를 칩니다.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겠다는 놈이군,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분노하셨던 그 날, 혹 이들은 그 날 그 자리에 있기라도 했던 것일까요. 혹여, 그날 성전에서 환전을 하다 쫓겨난 사람 중 한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짐승을 팔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을까요?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했다”는 이 요상한 행위는 그 어떤 신학적 해석도 불허합니다. 다만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쏟고 있는 한 인간을 목도하고 있다면,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제 뒷짐 지고 점잖게 물러나 있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슬그머니 등장합니다. 죽어가는 예수를 보며 흡족했던지, 이죽거리는 치아를 드러내며 서로에게 말합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면서도 자기는 구원할 수 없는구나.”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러니까 좋은 말로 했을 때 들었어야지. 옛말 틀린 거 하나 없어. 모난 돌이 정 맞는 거야” 끝끝내 자기들이 옳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예수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무너졌던 자신들의 권위를, 이제 죽어가는 예수님 앞에서 스스로 세워보려는 발악이었던 것입니다. 거기에 덧붙여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의 이 허탄한 말이라니요.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야,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해보라”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고난주일을 맞아 마가복음이 안내해 주는 대로, 예수님 수난의 길을 뒤따라가 보았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악의적인 결정으로부터 시작된 우리 주님 수난의 길이 결국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렇게 마감되고 있습니다.

이 수난의 여정을 뒤따라가는 중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또 물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누구의 입장을 지지하고 섰을까 말입니다. 물론 우리는 압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배신하고 모조리 자취를 감춰버렸다는 것을요. 그리하여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인 마가복음 15장은 마가복음 전체 16장 중에서 제자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유일한 장이 돼 버렸던 것입니다.

Ⅲ. 설교를 마치며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산헤드린 공회, 본디오 빌라도, 로마의 군인들,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의 행태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 중에 28절을 보시면, “없음”이라 써 있지요? 성경에는 가끔 이렇게 “없음”이라 표기 돼 있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다소 복잡한 설명을 드려야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가장 권위 있는 성경사본들에는 이 구절이 없기 때문에, “없음”이라 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를 준비하던 중에 주님께서 제게 물으십니다. “만약 그 28절에 너의 이름이 들어간다면, 너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께 무어라 말을 하겠느냐”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만일 28절이 여러분과 저를 위해 마련된 구절이라면, ①여러분들은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을 모의하는 산헤드린 공회 옆에서 그들에게 무어라 말을 하시겠습니까. ②여러분들은 십자가 처형을 결정하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무어라 충고를 하시겠습니까. ③채찍질을 가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 그저 임무 수행이며, 하루의 일상에 지나지 않았던 로마의 군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저항 하시겠습니까? ④만약 우리가 십자가에 달려 높이 세워져 있는 주님을 지나가는 길에 보았다면, 그 주님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을 품으시겠습니까? ⑤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앞에서 더욱 더 비열한 모습을 보여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요?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내일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이 우리가 그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 앞에 보다 더 정직한 영으로 이번 고난주간을 살아내는 우리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28절에 우리들의 이름이 새겨질 때에, 마가복음 15장을 지배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저주와 모욕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이름들로 남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성자 예수께서 달리신 십자가에서 그 고통을 봅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당하신 그 처참한 십자가의 고통은, 비단 육신의 고통뿐만이 아니라, 마치 주님의 영혼에 칼을 들이대는 것처럼 혹독한 영혼의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정직한 영으로 주님께 고백하는 것은, 우리 주님은 2천 년 전만이 아니라 여전히 고통 중에 계십니다. 2천 년 전 사람들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쳤던 게 아니라, 우리들 또한 우리 삶 속에서 주님을 배신함으로,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늘 주님께 떠넘기고만 있습니다. 주님 이런 우리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일로 시작되는 고난주간은 주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참회와 회개의 시간인 줄로 믿습니다. 주님, 마가복음 15장28절을 기억합니다. 우리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면, 비록 작은 행동이라 할지라도, 주님 곁을 떠나지 않는 이름으로 남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