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고 캄캄한 날에 우리에게 오신 목자”

<마가복음 6장30-44절>

1. 공감, 예수님의 공감

몇 해 전에 프란스 드 발Frans De Wall이라는 네덜란드의 동물학자가 쓴 [공감의 시대](감영사)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동물학자 중에서도 이분은 침팬지와 같은 영장류를 연구하는 학자인데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동물 세계가 ‘약육강식’을 비롯해서 단순한 어떤 생존본능에 의해서 유지될 것 같지만요, 저자에 의하면 동물들은 선천적으로 서로 ‘공감’empathy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공감하는 능력’이 동물세계의 특징이라고 까지 말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번역하신 분은, 한국이 자랑하는 생명과학자인 최재천교수님인데요, 최교수님은 책의 번역자 서문에서 마치 이 책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이라도 해 주듯이 이런 말을 합니다. “공감은 길러지는 게 아니라 무뎌지는 것이다.”고 말입니다. 짧은 한 문장이지만 이 말이 주는 파장과 울림이 적잖이 큽니다. 인간은 누구나 서로가 서로에게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나지만, 세상 현실에 적응해 가면서, 오히려 그 공감력이 무뎌져만 가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인간이 ‘공감’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 되게 만들어주고 유지시켜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곱씹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점에서 저는 우리 주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불쌍히 여겨 주신다는 말을 ‘공감’이라는 말로 바꾸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늘날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너무나도 쉬운 단어가 돼 버려서, 한편으로는 함부로 남용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공감’共感이라는 말은요, 한자로는 ‘함께 共, 느낄 感’자를 써서 피차 함께 느끼는 것을 뜻합니다. 이 말은 영어로는 Com-passion이라 하고요, 독일말로는 Mit-leid라는 말로 표기하는데요, 둘 다 “함께 고통을 느낀다” 이런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점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은 상대방의 고통을 내 것처럼 느끼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성공회대학교의 신익상교수님은 “공감 능력이 기독교 영성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낮은 곳에서 열리는 삶, 종교, 이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둔감하면서 사랑을 말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일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공감 능력에는 제한이 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셨고요,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오히려 그들보다 더 큰 고통으로 신음하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본문에도 나오지만,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은 복음서에 여러 번 나올 정도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감정을 나타내주는 대표적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예수님의 공감 능력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 증거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같이 자격 없는 것은 기본이고요, 죄 많고 허물투성이인 사람들을 용서해주시고 구원해 주실 리 만무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옅은 마음으로는 도무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 아니, 우리의 아픔과 어두운 마음조차도 공감해 주시고 이해해 주시며, 우리 같은 아둔한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저 위대한 하나님의 선교로 이끄시는 주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는 이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셰례 요한의 죽음과 백성들의 절망

지난주에 우리는 세례 요한의 죽음이 예수님의 선교 사역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를 잠시 나누었습니다. 여러분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례 요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비로소 자신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저 문턱 높아 들어갈 수 없는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흐르는 요단강 물에 온몸을 적시는 순간, 자신들의 죄가 사함받는 신비스런 감격과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례 요한을 하나님이 보내신 참된 선지자라고 믿었고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가 말하는 것과 그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엘리야가 살아 내려온 것이라 여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은 그 옛날 엘리야가 아합왕에 맞서서 저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을 무찔렀던 것처럼, 이제 요한은 저 간악한 헤롯 일가의 무리들을 무찌르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만방에 보여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기대감이 점점 고조되고 있을 무렵에, 우리가 지난주에 나눴던 것처럼, 세례 요한은 헤롯 안티파스와, 그의 부정한 아내였던 헤로디아와 그의 딸 살로메의 농간에 의해 끔찍하게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흥청망청 유흥을 즐기던 자리에서 목이 잘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의 최후치고는 너무나도 비참하고 수치스런 죽음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세례 요한의 소식을 접해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어땠겠습니까. 그들 삶에 유일한 나침반과도 같았던 세례 요한, 그들의 영적 문제를 해결해 줄 유일한 존재였던 세례 요한이, 엘리야처럼 하늘로 승천하기는커녕 목 베임을 당해 죽임을 당했으니, 그 비참한 심정과 낙심된 마음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3. 세례자 요한, 그리고 예수

그런데 우리는 지난주 말씀을 통해서, 세례 요한의 죽음이 예수님의 공생애와 교차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이는 마치, 연극에서 세례 요한이 퇴장하고 막이 닫혔다가, 곧바로 예수님이 새 무대를 활짝 열고 등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어달리기로 보자면, 세례 요한의 바통이 마지막 주자인 예수님께 막 넘겨진 것처럼 보입니다. 세례 요한은 죽었으나,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비로소 본격적인 선교 여행을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의 사역은 세례 요한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욱 강력했고 웅장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사함과 구원을 선포하신 것은 물론이고, 귀신들을 내쫓으시며, 사람들이 오랫동안 앓고 있던 질병을 고쳐주시기도 했습니다. 아니, 예수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심지어 예수님의 ‘maqhth,j’ 곧 제자들까지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는 능력을 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마치 하나님의 나라가 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들어오는 모양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죽었지만, 이제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새로운 소망을 품게 된 것입니다. 아직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세례 요한보다는 훨씬 뛰어난 하나님의 선지자일 거라는 기대를 품고서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그들의 그 갈급함과 간절함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4. 이스라엘 백성들과 예수님의 만남

오늘 말씀은 선교 여행을 막 마치고 돌아온 사도들이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예수님께 선교 보고하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선교 보고에 흡족하시기도 했고요, 또한 밥먹을 겨를도 없이 너무나도 수고한 제자들이 안쓰러우셨는지 예수님께서는 31절에서 제자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요? 제자들이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서 좀 쉬려고 했더니, 33절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알아보고는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저 멀리 배가 움직이는 것을 주시하면서 해안가를 따라 달리는 사람들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얼마나 기막힌 장면인가요. “배가 저리로 간다, 아니야 이쪽이야! 아니야 저쪽이야!” 하면서 시선을 배에 붙들어 매고는, 심지어 배의 방향을 예측하면서까지 뛰어가는 사람들의 심정 말입니다. 그러더니 결국 예수님의 일행보다도 먼저 도착했다고 하니, 예수님을 간절히 만나고 싶어하는 하는 저들의 애타는 심정을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에게는 이처럼 주님을 향한 갈급함이 남아 있습니까? 혹여 우리들은 예수님 만나는 것이 익숙해지고, 능숙해져 있는 것은 아닌가요? 주님을 향한 저들의 마음과 우리들의 마음을 비교해 본다면, 과연 우리는 얼마나 주님을 간절히 찾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혹여 잠시라도 손에 없으면 불안하기만 한 핸드폰만도 못하게 주님을 대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저들의 모습에 비추어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간절함은 어떠한가고 말입니다.

5. 역사 속의 그 목자가 찾아 오시다

이제 드디어, 34절에 보시면, 모여 있던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예수님이 배에서 내리시고는 성큼 다가가십니다. 다가가셔서 그들이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셨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이 만남은 단순히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어떤 자선단체의 대표를 만나는 것 같은 얘기가 아닙니다. 이 만남은 민수기로부터 시작해서,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아모스, 그리고 스가랴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역사 속에서 손꼽아 기다려왔던 만남이었습니다. 곧 목자되신 주님을 만나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민수기 27장17절을 보면, 모세는 이제 자기를 대신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갈 후계자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는 뭐라고 기도했던가요.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모세, 그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광야를 건너는 동안, 목자가 없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참 목자되신 주님에 대한 고백은 그 옛날 모세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이 고백을 이후 이사야가 되살려내면서 40장11절에서 이르기를,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실 것”이라며 목자되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예레미야 3장15절도 말합니다. “내가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가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고 말입니다.

에스겔에 이르러서는 목자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구체적으로 고조됩니다. 에스겔서 34장11-12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증언합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고 말입니다.

이처럼 모세로부터 시작해 예언자들에게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메시야의 도래, 그 메시야는 다른 모습이 아닌 바로 흐리고 캄캄한 날에 저 광야에서 흩어진 양 떼를 찾아 모으는 목자로서 나타날 것이라 구약성경은 예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6. 두가지 기억할 것들, ‘공감하셨다, 말씀을 가르치셨다.’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말씀 속에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장 먼저 무엇을 해 주셨던가요? 우리는 두가지를 주목해서 봐야 합니다.

첫째로, 여러분, 34절을 다시 보시면,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가장 먼저 해주신 것은 ‘불쌍히 여기신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은 “공감하셨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박한 현실을 바라보시면서, 예수님께서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실 정도로 공감하셨다는 뜻입니다. 사실 “불쌍히 여기다”는 성경 원어 표현 자체가 “내장이 터질 것 같다.”는 의미이기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요한복음 10장11절이 보다 더 명확히 알려주는 것처럼,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릴” 정도로 양들을 사랑하는 목자로 우리에게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목자 되신 우리 주님은 우리의 불안하고도 안타까운 상황을 못본 척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슬픔과 상처를 얼르고 싸매시며 우리의 속사정까지 일일이 헤아려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여러분,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결국 해 주신 일은 무엇이었던가요? 아마도 많은 분들의 대답이 ‘오병이어의 기적’이라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34절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기를,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고 합니다. 많은 것을 말씀으로 가르쳐 주셨던 일, 그것이 목자 되신 주님이 양무리를 위해 가장 먼저 해 주신 일이었습니다. 곧 ‘말씀 사역’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오병이어의 급식 기적은 이처럼 오랫동안 말씀을 가르치신 뒤에 덤으로 주어진 은혜에 불과한 것이지 그것이 말씀 사역에 앞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6장3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입니다.

옳습니다.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 삶에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까? 그 문제를 놓고 씨름하기 전에 먼저 주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주님의 말씀 앞에 먼저 정직하십시오. 다른 어떤 것보다 주님의 말씀을 먼저 먹으십시오. 우리의 삶이 비록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 같다 할지라도, 주님의 말씀은 우리 발을 환히 비추는 등불이 되어 줄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 빈들, 그리고 푸른초장

여러분 사실이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배경은 ‘광야’였습니다. 그것은 35절에서 빈정대는 제자들의 입을 통해서 알려집니다. 제자들은 말하기를 “이곳은 빈들”이라 했습니다. 번역을 ‘빈들’이라 했지만, 이 말은 성경 원어로 e;rhmoj, 곧 ‘광야’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곳은 아무것 없이 황량하기만 한 그저 텅 빈 벌판에 지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퀭한 눈으로 그 광야에 힘없이 흩어져 앉아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39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어디에 앉게 하셨다고 말하지요?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제자들은 이곳을 뭐라 지칭했다고요? “빈들” 곧 “광야”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목자로 오셨고, 목자 되신 주님이 “앉으라” 명령하시자, 그 광야는 푸른 초장이었던 것입니다. 목자를 따라가는 양들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한 삶의 자리요, 이리와 승냥이로부터 가장 안전한 곳이라 명명됩니다. 곧 푸른 초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디가 빈들이고, 어디가 푸른 초장입니까? 그곳이 어디이든, 목자 되신 주님과 함께 하는 곳은, 그 어디나 푸른 초장이고요, 그렇지 않다면 그 어디나 빈들일 뿐입니다. 감리교 목사님이자 시인인 고진하는 이렇게 <빈들>을 노래했습니다.

“늦가을 바람에 / 마른 수숫대만 서걱이는 빈들입니다 / 희망이 없는 빈들입니다

사람이 없는 빈들입니다 / 내일이 없는 빈들입니다 / 아니, 그런데 / 당신은 누구입니까 / 아무도 들려 하지 않는 빈들/ 빈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당신은”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민음사>

목자 되신 주님 외에, 누가 저 빈들을 채우고 있겠습니까?

여러분 마지막으로 40절을 한번 봐 주십시오. 40절은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았다”며 마치 뭉개구름처럼 모여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줍니다. 곧 양무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저절로 시편 23편이 떠오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상황과 조건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리석은 제자들의 말마따나, “빈들”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흐리고 캄캄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목자 되신 우리 주님이 그들에게 오셨고, 그들에게 앉으라 명령하셨던 것뿐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곳은 푸른 초장이라 명명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전 지구적인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해서,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도 우리의 삶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흐리고 캄캄한 날의 연속입니다. 지금 이 서강의 예배당은 예배 임사자들이 앉아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습니다. 마치 오늘 말씀의 빈들과도 같습니다. 이것이 언제나 끝날지, 언제쯤이면 우리가 얼싸안고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 주님의 거룩한 영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이 텅 빈 예배당 구석구석까지 가득 채우고 있음을 말입니다. 여기만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예배하고 있는 그 자리에도 친히 찾아가 주셔서, 상한 우리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말씀으로 치유해 주십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가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이, 결코 빈들의 시간이 아님을 일깨워 주십니다. 목자 되신 주님과 함께 하면, 그곳이 어디든 푸른 초장인줄로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니 오히려, 이러한 흐리고 캄캄한 빈들의 시간이야 말로, 우리가 목자 되신 주님을 만날 은혜의 시간임을 깨닫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