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도마들을 위한 부활공동체”

<요한복음 20장19-31절>

1. 한스 큉, “이런 것을 정말로 기독교라 말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지난주에, 금세기 최고의 신학자인, 제가 너무나도 존경하는 한스 큉Hans Küng이라는 스위스의 신학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쇠퇴해가는 작금의 기독교와 교회의 모습을 통탄하면서 몇 해 전에 [나는 왜 아직도 기독교를 믿는가]라는 책을 저술한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신학자 한스 큉은 교회들을 향해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런 것을 정말로 기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일평생 교회를 연구해 온 학자가 던지는 물음이었기에, 제게도 커다란 울림이자 찔림으로 다가온 말이었습니다. 마치 이 세상을 떠나는 한 노구의 신학자가 제게 남겨준 유언처럼 들렸습니다. 그리고 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당신이 정말로 목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런 당신이 정말로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런 당신이 정말로 주님의 제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다니는 이런 교회가 정말로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주에 우리는 2021년 우리에게 오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기쁨을 말로 다 할 수 없어서,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행위, 곧 ‘부활절 예배’를 통해서 주님의 부활을 맞이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 역시 지난 수십 년 간 부활절 예배를 드려왔지만, 여러분들과 함께 드린 지난 부활절 예배가 제 생에 있어서 가장 감격스럽고 가슴 벅찬 예배였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곳 서강 예배당에 찾아와 주셨음을 강력하게 느낄 수 있었고요, 우리 각사람 곁에 앉아서 위로와 소망의 말씀, 곧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라” 하시면서, 어지럽고 혼탁한 우리의 영혼에 ‘정갈한 질서’를 부여해 주셨던 위대한 사건으로 지난 주 부활절 예배를 기억하게 됩니다. 그 감격스런 자리에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무한한 영광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면서 그 부활 신앙으로 살고자 다짐했던 예배를 뒤로 하고, 지난 한 주간 여러분들의 삶은 어떠하셨던가요? 마음속에서 샘솟듯이 일어나는 부활의 감격과 소망으로 한 주간을 살아오셨습니까? 아니면 다시 예전처럼, 마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처럼, 아직 문을 걸어 잠근 채로 두려움과 근심으로 한 주를 살다가 오신 것은 아니신지요? 이런 우리들에게 앞서 소개한 신학자 한스 큉은 이렇게 묻기도 할 것입니다. “이런 당신의 신앙을 정말로 부활신앙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2. 부활신앙 VS 빈무덤신앙

여러분, 이런 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분명히 구분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부활 신앙과 빈무덤 신앙”이라 이름을 붙입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확인 했던 것처럼,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의 두 제자들 모두는,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을 똑똑히 경험한 것에 반해, 두 제자들은 빈무덤 만을 확인한 채 허탄한 맘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던가요? 막달라 마리아의 영혼에는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소망과 기쁨이 넘쳐 남으로, 18절에서 말하고 있듯이 “내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노라” 전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공히 ‘예수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안타깝게도, 그리고 매우 불행하게도, 빈무덤만 확인하고 돌아갔던 제자들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을 상상해 보면, 너무나도 초라합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짐짓 공포스럽기 까지 합니다. 그들이 증언할 수 있는 말은, ‘내가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보았다’는 허망한 말 외에는 없을 것이니 말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증인이었지만, 두 제자는 빈무덤의 증인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20장18절은요, “부활 신앙과 빈무덤 신앙”이 갈등을 벌이고 있는 구절로 읽힙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가서 “내가 주를 보았다” 하며 증언할 때에, 모르긴 몰라도 제자들은 그녀에게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문을 두드리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주님이 전하라 하신 말씀을 제자들에게 알려주려 했지만, 문 안 쪽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는, “어서 돌아가시오. 우리도 아오. 우리도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똑똑히 보았단 말이오. 관원들이 그분의 시신조차 어디론가 가져가 버린 것일 테니, 이제 다음은 우리 차례일지 모르오. 더 이상 밖에서 소란피지 말고 어서 돌아가시오. 이러다 걸리면 우리 다 죽소.” 이런 공허한 말만이 굳게 닫힌 문 안쪽으로부터 흘러나오지 않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 번 묻게 됩니다. 우리들이 경험한 것은, 과연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빈무덤이었습니까? 우리가 부활 신앙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빈무덤 신앙을 갖고 있는지는, 우리 삶을 돌아보면 어렵지 않게 드러납니다. 만약 우리가, 부활의 소망과 기쁨을 전하느라 바쁘고, 부활의 주님을 더욱 신뢰하고 나가는 삶이라면, 그는 분명 부활의 신앙을 지닌 사람입니다. 반면에, 우리 삶에 근심과 걱정이 없을 수는 없겠으나, 근심이 변하여 불안이 되고, 걱정이 우리의 믿음을 가로막고 있다면, 그는 아직 빈무덤 신앙에 머문 사람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부활절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2021년 우리에게 허락하신 부활절은, 우리로 하여 빈무덤 신앙에 주저앉아 있지 말라는 뜻입니다. 부활신앙으로 뛰어 오르라는 것입니다. 지난 한주 만약 우리 가운데 여전히 빈무덤 신앙에 머무르셨다면, 오늘 이 예배가 여러분들로 하여금, 잠가두었던 빗장을 열고, 부활신앙의 바다에 첨벙 뛰어드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부활공동체: 죄인공동체, 성령공동체, 선교공동체

오늘 말씀은 바로 그 공허한 빈무덤 신앙을 갖고 있던 제자들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20장은요, 1절에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졌다.”는 강력한 부활의 상징으로 시작했습니다. 우리 주님을 사망에 빠뜨리고, 칠흑 같은 흑암 속에 가둬두려 했던 돌문이 활짝 열렸던 것입니다. 돌문이 열린 것으로부터 우리는 부활을 예감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 19절은 그 신호탄에 찬물을 껴 얹는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돌문이 활짝 열려 있었던 것과는 정반대로, 19절은 말하기를,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다.”고 합니다. 이 구절을 통해서 우리는 제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했고, 초조했기에 그 집에 노박해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제자들에게 우리 주님이 찾아가 주셨습니다. 19절은 분명히 말하기를,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며, 두려움에 휩싸인 제자들을 다독여 주셨습니다. 그들이 불안해하는 모습이 어찌나 안쓰러웠는지,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두 번’이나 연거푸 평강의 인사를 전합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제 제자들을 통하여 어떤 공동체를 원하시는지를 말해 주고 계십니다. 저는 이 모습이 마치 교회 공동체가 탄생하는 장면처럼 보입니다.

첫째로, 교회는 죄인공동체입니다. 죄책감과 공포로 인해 닫힌 마음으로 살던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는 모습입니다. 죄인들을 향해서 주님이 먼저 다가가셔서 평화를 빌어 주십니다. 또한 20절에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신 것”처럼, 우리 주님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증거를 주심으로 확신과 소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교회는, 이와 같은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와서, 소망을 품고 살아가도록 돕는 ‘죄인공동체’란 말입니다.

둘째로, 교회는 성령공동체입니다. 22절에서는, 예수께서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하신 것처럼, 모든 믿는 자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신다는 겁니다. 사실, 이 장면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것”에 비견될만한, 부활 하신 주님의 ‘새창조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이와 같이 오직 성령을 따라서만 행해야 하는 ‘성령공동체’란 말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교회는 선교공동체입니다. 23절은 교회 공동체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들려주는 것입니다. 곧 예수께서는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하셨는데요, 이 말은 우리들에게 ‘죄사함’의 능력을 주셨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죄사함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으니까요. 로마서 10장14절이,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우리 주님의 복음을 듣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도록 나가서 전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전하지 않으면, 죄인들이 어떻게 죄사함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말씀인 것입니다. 곧 교회는, 저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선교공동체’란 말입니다.

이처럼, ‘죄인공동체, 성령공동체, 그리고 선교공동체‘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우리들이 일구어 나가야 하는 교회의 본질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우리 서강교회가 이와 같은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의심하는 도마, 그는 누구인가?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한 사람의 인물이 더 등장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도마’입니다. 도마는 어떤 인물인가요? 아시다시피 우리가 도마를 얘기할 때는 늘 꼬리표가 따라 붙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라고 말입니다. 아마도 그런 꼬리표가 붙은 것은 오늘 본문인 25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는 말씀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것만 두고 보면, ‘의심 많은 도마’라고 불리는 것도 억울할 게 없어 보입니다. 사실상 그는 의심했었으니까요.

이렇게 의심이 많은 사람으로 도마를 해석하는 것과 더불어, 또 다른 한편에서는요, 도마를 세상의 ‘구도자들’을 대변하는 인물처럼 해석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말하자면, 도마는 ‘아는 것은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했던 정직한 인물이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믿겠다고 하는 ‘합리적인 신앙’을 대변하는 인물이 바로 도마였다는 말입니다. 이것도 매우 타당하게 들립니다. 이런 의심과 물음을 통해서, 도마는 결국 28절에서처럼 부활하신 예수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전대미문이자 전인미답의 고백을 드린 사람이 되었으니, 이런 해석도 오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오늘 본문에서 이런 해석들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자 합니다. 여러분, 분명 도마는 방금 우리가 25절에서 본 것처럼 의심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의심은 일차적으로 ‘누구를 향한 의심’이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누구를 향한 의심이었을까요?

물론 그토록 참혹하게 죽임 당하신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 자체가 믿기 어려운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을 보지 않고 믿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디 도마만 그랬던가요? 마리아조차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믿게 된 것이지요. 나머지 제자들 또한 우리가 이미 누차 살펴 본 것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는 마리아의 말을 듣고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마리아의 증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스스로 갇힌 채로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던 것 아니었겠습니까.

도마는요, 제자들의 이러한 일련의 모습들을 다 지켜봤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그들은 ‘뜻을 같이 한 배신의 동지들’이 아니었습니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벼룩 튀듯이 도망간 사람들’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초지일관 무기력하고, 줏대도 없고요, 무엇 하나 신뢰를 줄 수 없이 살아왔던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면서 호들갑을 떤다면, 그게 어디 씨알이나 먹히는 소리로 들렸겠습니까? 도마의 의심은 일차적으로 그 제자들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도마 입장에서는, 너희들이 말하는 것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못 믿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너희 양치기 소년들의 말을 백번 들어봐야 소용없고, 내 눈으로 한 번 보고 만져봐야 믿겠다는 것 아니었겠습니까.

여러분, 전하는 사람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똑같은 얘기를 전한다 해도, 전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듣는 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교회는 앞서 말씀드린 신학자 한스 큉의 말에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런 것을 정말로 기독교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5. 여드레의 시간을 보내는 부활 공동체

여러분, 우리는 황무지와 같은 선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가치관은 저마다 천차만별이고요, 기존의 권위라든가, 전통과 삶에의 방식들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오래전 이 땅에 붙여주신 선교의 촛불이 꺼질 듯 요동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또한 목회자들이 부흥을 말하고 기대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한 것이라 여기고 있는 현실입니다. 게다가 저 세상에는, 의심하는 도마들이 참 많습니다. 진리이신 주님과, 그분이 전해주신 복음에 대해 회의적이고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서 세상 사람들이 정말 못 믿겠다는 것은요, 예수님보다도, 교회를 못 믿겠다고 합니다. 예수님보다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못 믿겠다고 합니다. 오늘 도마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도 버거운 일이지만, 그것을 전하는 그 제자들의 말에서 도무지 신뢰를 찾아 볼 수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저 세상에는 다양한 익명의 도마들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주변에서 이런 도마들을 많이 만나보셨을 줄로 압니다. 때로는 그 도마들이 우리 가족 안에도 있습니다. 때로는 직장 동료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웃지간으로 매일 만나는 사람 중에서, 이런 도마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 도마들에게 복음을 전해도 잘 듣지 않으시지요? 아직 그 도마들을 교회로 인도할 어떤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셨지요? 오늘 말씀의 제자들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도마에게 아무리 말을 해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로 두 손을 싹싹 빌어가면서, “우리가 잘 못했다. 그래도 이건 진짜다. 우리에게 정말로 주님이 나타나셨다”며 간청을 해도 도마는 요지부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는 분명 도마가 변화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 변화는 우리 주님이 그에게 나타나셨을 때 일어났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지체없이 그 다음날 주님이 나타나셨으면 더 좋았겠다 싶은데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던가요? 26절은 말하기를, “여드레를 지나서”, 곧 8일이 지난 뒤에 도마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독일의 영성가인 안셀름 그륀Anselm Grün의 말에 따르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8’ 이라는 숫자는요, ‘하나님의 초월과 신비’를 뜻하는 숫자라고 합니다. 이 때는 시계로 시간을 재듯이, 인간이 계수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크로노스), 하나님 시간의 영역(카이로스)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드레를 지나서”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8일을 뜻할 수도 있겠으나, 요한복음은 이 8이라는 숫자를 통해서 그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 하셨음을 강조하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시간이 이르렀을 때에, 그런 도마에게도 우리 주님이 찾아가 주셔서, 그에게 못자국을 보여주시며 변화로 이끌어 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영적인 눈으로 봤을 때, 우리 교회도, 그리고 우리 각자도 “여드레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상황이 날로 심각해져 가고 있어서,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근심과 걱정으로 이 시간들을 보내야 할지도 모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자면, 지금 우리는 “여드레”의 시간, 곧 하나님의 역사 속에 들어와 있음을 믿습니다. 이 여드레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리는 늘 회개함으로 깨어 있으므로, 또한 그 익명의 도마들을 겸손히 초대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익명의 도마들이 우리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로 하여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하고, 그리하여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할 수 있도록 돕는 교회, 우리 교회가 이러한 부활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