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SEOKANG CHURCH
주일설교
두 개의 길, 그리고 제3의 길 위의 예수
본문말씀 : 누가복음 9:51~62
설교자 : 임태일 담임목사
날 짜 : 2022.06.26
- 관리자
- 2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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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길, 그리고 제3의 길 위의 예수”
<누가복음 9장51-62절>
1. 루쉰의 [고향] 그리고 길
지난주 설교 서두에 저는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쉰’(鲁迅, 1881-1936)의 소설 [아Q정전]과 [광인일기]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카톡으로 이 소설에 흥미를 보인 분들도 더러 계셨는데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오늘도 루쉰의 또 다른 소설 하나를 더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루쉰의 단편소설인 [고향]이라는 소설입니다<전형준 옮김, [루쉰 소설선](창비)>.
이 소설은 주인공이 고향을 떠난 지 20년 만에 ‘도지사’가 되어서 다시 고향 땅에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금의환향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고향 땅을 찾은 주인공의 마음이 좋지가 않습니다. 주인공은 “아! 이것이 내가 이십 년 동안 늘 그리워하던 고향이란 말인가?” 하면서 변해버린 고향으로 인해 슬픈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뭐가 문제였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향수가 담겨 있던 고향 풍경이 이전과는 달리 “쓸쓸하고 황량한 마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달라진 고향의 풍경도 그랬지만, 두 번째로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달라 보였던 것입니다. 특별히 주인공에게는 어린 시절 함께 뛰놀던 ‘룬투’(閏土)라는 이름의 동네 형이 하나 있었는데,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주인공의 애달픈 감정이 절정에 다다랐습니다.
룬투라는 형은 어린 시절 주인공에게 아주 신기한 것을 많이 보여주고 가르쳐주던 영웅과도 같은 형이었습니다. 그런데 20년 만에 만난 룬투는 예전에 알던 그 형이 아니었습니다. 주인공이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반갑기도 하면서도 서먹서먹하기도 해서, “룬트 형 …… 왔어요?……” 이렇게 주저하면서 불렀습니다. 그러자 쭈뼛쭈뼛하던 룬트가 주인공에게 대답하는데, 그 대답을 듣고 주인공은 충격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가 뭐라고 했을까요?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으리!……” 이 대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 대답을 들은 주인공은 어린시절 친구처럼 지냈던 ‘형과 나’ 사이에 어떤 두꺼운 장벽이 놓여있음을 느꼈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런 현실을 그냥 두고만 보려 하지는 않습니다. 주인공은 마을 사람들이 뭔가 새로운 변화의 길을 찾게 되기를 바라면서, 이 소설은 다음과 같은 마지막 문장으로 주인공의 의지를 보여주며 마칩니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서 어디선가 이 문장을 읽어보셨거나 들어보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작가 루쉰의 명언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사실은,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는데,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
이 글에 고스란히 녹아있지만, 루쉰이 이 소설을 통해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비록 우리 눈앞에 길이 없더라도, 그래서 우리 삶이 마치 길 없는 광야와 같은 막막한 삶이라 느껴지더라도, 누군가 먼저 뜻을 세우고 앞서 걷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진리라면, 그가 걷는 뱡향으로 사람들은 따라 걸을 것이며, 그리하여 그곳은 마침내 ‘선명한 길’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희망은 그저 헛된 구호에 있는 게 아니라, 이처럼 길을 걷는 사람들로 인해서 개척되고 완성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2. 길 위의 예수, 그리고 두 개의 길
여러분, 우리 삶에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며, 생명이 되신 분은 누구이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첫째로 사람들이 눈이 어두워서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를 때, 친히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을 먼저 걸으심으로 ‘길을 만들고 길을 닦아 주신 분’이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The Way-Maker, Jesus Christ, 사43:19). 둘째로 사람들이 세상에 파묻힌 채로 무엇이 진리인지 모르고, 아니, 진리가 있기나 한 것인지조차 모른 채로 살아가고 있을 때, 그들로 하여 진리를 따르도록 ‘피리를 불어주신 분’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The Whistle-Blower, Jesus Christ, 요 8:32). 그리고 셋째로 무엇보다 사망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우리의 인생을 위해서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심으로 ‘생명을 선물로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인 줄로 믿습니다(The Life-Giver, Jesus Christ, 요 20:31).
주님은 이처럼 위대한 구원의 길을 만드셨고, 그 길 위에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 길은 저 하늘에서 시작되어 이 땅으로 내려졌으며, 이 땅에서 완성하시고 다시 하늘로 올려진 길이었습니다. 곧 예수님의 ‘탄생과 승천’(Incarnation & Ascension)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수직적으로 놓인 길’(vertical way)이었습니다. 하늘을 오르고 내리는 사다리의 주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또한, 2천 년 전 주님은 갈릴리로부터 시작해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어느 한 곳에 머리 둘 곳 없이 늘 ‘여행자’traveller로, ‘나그네’stranger로 사시며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이것은 ‘수평적인 길’(horizontal way)이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며, 그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길을 걷자!’ 초대하셨고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켈틱 영성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믿음의 여행을 감행하는 것”(Journey of faith)이라고 정의합니다.<Paul Backholer, [Celtic Christianity and the First Christian Kings in Britain](ByFaith Media)> 우리의 인생 자체가 길 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라 그 길을 걷는 여정이 고달픈 우리의 인생길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두 개의 길을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는 수직적인 길이고, 다른 하나는 수평적인 길입니다. 아시다시피 그 두 길이 십자가로 만납니다. 이 땅에 살더라도 하늘을 향한 살아있는 소망으로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며(벧전 1:3),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음을 늘 잊지 않음으로, 삶의 가치를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두고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빌 3:20). 그러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딤후 4:7).
3. 수직적인 길, ‘승천’
오늘 우리가 나눈 본문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그 첫 번째 여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9장 51절에서 시작된 이 여행은 19장 48절에 가서야 끝마칩니다. 누가복음 전체 24장 중에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 이야기가 장장 ‘열 개의 장’에 걸쳐서 기록된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주기도문’ ‘무화과나무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 그리고 ‘구원받은 삭개오 이야기’ 등과 같은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가르침과 사건들이 모두 그 ‘길 위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다”(눅 9장51절).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구절은 제가 앞서 소개한 두 개의 길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늘을 향한 길’이고,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을 향한 길’입니다. 승천으로의 길, 곧 ‘수직적인 길’과, ‘예루살렘을 향한 길’, 곧 ‘수평적인 길’ 두 개가 이 한 구절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는 범상치 않은 특이한 표현들이 나옵니다. 첫째로 보통 예수께서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 예고하실 때, 그 기준은 ‘고난’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앞서서 9장 22절을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예수님의 고난 예고가 나옵니다. 즉 예수께서는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특이하게도 ‘고난’이 아니라, 그렇다고 ‘부활’도 아니라, 예수님의 공생애에 있어서 제일 끄트머리 있을 ‘승천’(Ascension)을 기준으로 말씀하십니다. 다시 읽어드리면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라고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늘로부터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셨더니, 이제 곧 다시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실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구절이 많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중에 하나 대표적인 것이, 사도행전 1장에서 승천하시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1:8)고 당부하며 작별하는 장면입니다. 철없는 제자들을 남겨놓고 떠나야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예수께서는 성령이 올 것이라 말씀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성경은 히브리서 4장입니다. 히브리서 4장 14-15절은 말하기를,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고 합니다. 그분은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분이시며, 우리에게 긍휼함과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라 말합니다. 즉 히브리서가 말하는 승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겨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생각건대, 승천하는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무시무시한 심판의 말씀을 주실 리 만무합니다.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는 이렇게 저렇게 제자들을 책망도 하시고 꾸짖기도 하셨겠지만, 이제 세상에 남겨놓고 떠나야 하는 저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향해서 주님은 오직 긍휼과 자비의 마음만이 가득하셨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주님의 마음에 긍휼과 자비가 가장 충만했던 때가 승천하실 때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4. 수평적인 길, 예루살렘
둘째로 51절에서 “굳게 결심하셨다”는 표현에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뭔가를 결심하셨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성경에서 예수님이 뭔가를 결심했다는 표현은 이곳이 유일합니다. 이 말을 성경 원어로 보면 ‘~로 얼굴을 향하여 고정시키다’(pro,swpon evsth,risen)는 표현을 씁니다. 무언가를 바라보고, 그것에 얼굴을 고정시킨다는 것은 거기에 집중하겠다는 뜻입니다. 그 뜻을 우리말로 옮길 때, ‘결심했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51절 헬라어 원문을 제가 우리말로 직역해서 옮기면 이렇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에 오르실 때가 되자 예루살렘을 가시려고 자신의 얼굴을 예루살렘을 향해 고정하셨다”
그런데 구약성경에는 이와 같은 ‘~로 얼굴을 향하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예레미야 21장 10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으로 향함은 복을 위함이 아니요 화를 위함이라!”고 합니다. 에스겔서 20장 46절은 “인자야 너는 얼굴을 남으로 향하라 남으로 향하여 소리내어 남방들의 삼림을 쳐서 예언하라”고 합니다. 제가 성경 두 개를 인용했지만, 그밖에도 다른 본문을 찾아봐도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얼굴을 어느 방향으로 향했다는 것’은 줄곧 그 대상을 향한 ‘심판’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심판하러 가시겠다는 뜻을 똑똑히 선언하신 것입니다.
5. ‘제3의 길’에서 만난 세 부류의 사람들
그러므로 ‘승천’이라는 수직적인 길과 예루살렘을 향한 수평적인 길은 예수님의 여행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줍니다. 하나는 긍휼과 자비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심판의 길입니다. 이 둘 중에 심판의 길은 분명했습니다. 곧 ‘예루살렘’을 향한 길이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이 승천하실 때가 다 되어서 마지막으로 이 땅에서 긍휼과 자비를 베풀만한 길을 선택하셨다면, 그곳은 어디였습니까? ‘사마리아’였던 것입니다. 사마리아로의 여행은 ‘제3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사마리아는 수치와 오욕으로 점철된 땅입니다. 유대인으로부터 저주받은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이라면 마땅히 피해가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 땅을 피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사마리아를 관통해서 지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주 이례적으로, 예수께서는 사마리아를 지나시고자 몇몇 사람들을 미리 보내서 준비시킬 정도였습니다(9:52). 사마리아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지극한 배려가 느껴지는 장면입니다.
여러분, 지금껏 예수님이 어떤 지역에 들어가기 위해서 미리 사람을 보내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곳 사마리아가 유일합니다. 물론 나중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한 번 더 사람들을 보내시긴 했습니다. 그것은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시며 심판을 준비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마 21:2). 예루살렘에서는 심판을 위해, 그러나 사마리아에서는 긍휼과 자비를 위해 사람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를 단지 예루살렘을 가기 위한 경유지 쯤으로 여긴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수치와 오욕과 저주의 땅 사마리아에 긍휼과 자비의 햇살을 비추시고, 은총의 단비를 내려 주시고자 그 제3의 땅에 찾아 들어가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제3의 길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첫째로, 제3의 길에서 만난 사마리아 사람들은 주님을 오해하고 곡해합니다. 오늘 본문 53절에서 그들은 말합니다. “그래봤자, 어차피 예수 당신의 목적지는 예루살렘 아니냐?”는 거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심판을 위해 가는 길이요, 사마리아는 자비와 긍휼을 위해 선택하신 길이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들의 마음은 뒤틀려 있기만 했습니다. 예수께서 무언가 말씀하시기도 전에, 무엇을 행하시기도 전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기필코 부정적으로 바라볼테다!’ 하면서, 삐뚤어진 마음으로 예수님 일행을 쏘아붙이기만 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제3의 길을 동행하던 제자들은 어떤 모습을 보였습니까?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향한 심판자를 자처합니다.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고자 택하신 주님의 길을 정면으로 거역한 행동이었습니다. 정작 예루살렘에 가서는 뿔뿔이 도망치게 될 겁쟁이들이면서, 사마리아 사람들 앞에서는 잔인한 허세를 부립니다. 선지자 엘리야가 사마리아의 왕 아하시야의 부하들에게 불을 내려 심판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저 놈들을 불태워 죽이고 싶다!”(54절)하는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셋째로, 그 제3의 길에서 만난 또 다른 사람들은 어땠습니까? 그들 중에는 다짜고짜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가겠습니다”(57절)하는 헛된 맹세로 주님의 속을 뒤집어 놓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를 그런 허세를 듣기에는 이미 열두 제자로도 충분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내가 따를 테니 나를 받아주시오’라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주님이 먼저 “나를 따라오라!” 초대하실 때, 그 초대에 응하는 사람만이 제자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나와 앉아있는 것도 우리가 마음먹고 나온 것 같지만, 주님의 초대가 먼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59절에 보면, 주님이 “나를 따르라!” 초대하시자, 어떤 이는 “내 아버지를 먼저 장사하고 따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61절에서 또 다른 이는 “내 가족에게 먼저 작별하고 따르겠습니다.”는 대답만이 돌아옵니다. 여러분, 이 두 사람의 대답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먼저’(first)였습니다. “먼저 아버지를 장사하고, 먼저 가족에게 작별하고” 라고 말입니다.
이 두 사람은 우선순위를 다른 데 두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아버지를 장사하겠습니다, 가족에게 작별하겠습니다.’라는 아주 그럴듯한 사유를 맨 앞에 놓고 있지만, 저들은 아버지를 장사한 뒤에는, 가족에게 작별한 뒤에는, 또 다른 이유를 만들 것입니다. 만들어서 다시 ‘먼저’를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대답하시기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62절)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운전대 잡은 사람이 앞은 안 보고 자꾸 뒤돌아보고 부산스러운 행동을 한다면, 어찌 운전대를 맡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6. 주의 마음에 합한자 되어 제3의 길을 걷다
사랑하는 서강의 성도 여러분, 이렇게 곰곰이 따지고 보니, 예수께서 제3의 길을 걸으실 때 만난 사람들의 면면이 우리와 참으로 많이 닮아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오해하고 곡해합니다. 알량한 자신의 경험을 앞세워서 부정적인 눈으로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또한, 때때로 우리는 오늘 본문의 야고보와 요한처럼, 우리 자신이 마치 하나님의 대리인이라도 된 것처럼 착각하기도 했습니다. 주님의 자비와 긍휼하심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죄인임을 잊고서, 하나님의 심판자인 양 행세하곤 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는 잘도 찾아내면서 내 눈을 가리고 있는 대들보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마 7:1-5)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잊고 사는 모습입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을 따르겠다는 말을 남용해 왔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을 마치 훈장 하나 얻는 것쯤으로 여길 때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주님이 우리를 말씀의 자리로, 예배의 자리로, 기도의 자리로 초대하며 부르실 때, 그동안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고도 다양한 ‘먼저’가 있었습니까? 먼저 아버지를 장사하겠다는데, 누가 말리겠습니까? 그것 못하게 하면 인륜을 저버린 나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먼저 가족에게 작별하고 오겠다는데,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그걸 못하게 하면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거치면서, 어쩌면 우리는 이러한 이유들을 만들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게 오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초대를 완벽하게 무기력하게 만드는 이유들’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설교 모두에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는데,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라는 루쉰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설교를 마무리하는 중에 이 문장을 다시 읽으면서 주님이 택하시고 걸으신 제3의 길, 곧 자비와 긍휼의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아졌는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혹여 여전히 주님 홀로 쓸쓸히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됩니다. 오늘 함께 예배하는 우리를 주께서 다시 부르실 때,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그 길을 따라 걷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